- 입력 2019.08.21 05:00
원래 히혼에서 이틀쯤 쉬다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약 5㎞ 전 Deva Camping Site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변한다. 감정은 쉬고 싶은데 이성이 이끌거나 이성은 쉬어야 한다는 데 감정은 떠나고 싶어 한다. 축축한 데바? 히혼?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 때문이다. 오다 그쳤다 하는 빗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냥 자자. 내일 또 해가 뜨려니…
8월 7일 아침 해가 쨍 빛났다. 히혼 바닷가에 Camping Gijon이 하나 더 있다. 텐트 말리고 나서 오늘은 그곳으로 옮겨 가 원래 계획대로 하루종일 시내 관광을 하자.
걷는 도중 눈에 띄는 라보랄(Laboral) 유니버시티의 시계탑과 건물의 위용이 상식을 넘는다. 히혼의 자존심과 전통성을 짐작케 하는 거대한 인상이다.
그리고 엘 모리노 경기장 또한 형태적 감각과 위용이 예술적 차원에서도 압도적이다.
마침 바로 옆에 자동차, 오토바이, 주거용품 등을 전시한 생활제품박람회도 열리고 있다.
나는 계속 걷고 있다. 걷다보니 드디어 마주하는 칸타브리아 바다의 또 하나 산 로렌조 비치가 여기가 히혼이라는 점을 알리며 끝없이 펼쳐졌다.
마치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그 끝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련하다. 비치 따라 바다를 향해 늘어선 건물 또한 관광객들에게는 크게 어필할 수 있는 호텔 및 각종 편의시설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나는 부산 해운대 동백섬,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 쯤에 자리한 Camping Gijon에 오후 1시 10.46유로 짜리 스위트 홈 텐트를 만들었다. 앞은 시원한 칸타브리아 바다, 어쩌면 ‘까미노 데 산티아고’ 갈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될 바다가 될 것이다. 아~ 그런데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여긴 강릉으로 비유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좌측엔 내일 걸어 넘어 갈 대관령 고개 같은 게 멀리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형적으로나 규모적으로나 느낌이 강릉과 비슷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까지 부산 경상남도의 바스크 지방, 포항 경상북도의 칸타브리아의 지방, 그리고 삼척 동해 강릉, 어쩌면 양양쯤의 강원도 아스투리아 지방에 도착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좌측의 백두대간까지 눈앞에 두고 있는 듯 하니 말이다.
아직 칸타브리아 바다 해산물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늘 저녁 히혼의 밤을 바다 맛과 함께 해야되지 않겠나?
지금은 오후 3시, 시간이 많지 않다. 시내로 가자. 가볍게 냅색 하나 달랑 들고 푸른 시내로 가자.
구 도시를 돌며 고개 정상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칸타브라아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상징물을 바라보았다. 로마시대에서 부터 이곳은 영토를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것 같다. 바다를 향해 진지를 구축하고 대포를 설치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또 하나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미지의 바다를 향해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정신을 불태우던 상징적 전진기지이기도 했던 곳 같다.
지금도 여기저기 젊은 남녀가 바다를 향해 누워서 무엇인가 꿈을 꾸고 있다.
구도심의 입구에는 로마시대의 성벽 앞에 이글레시아 드 산 패드로 성당이 버티고 있다.15세기에 지어졌던 St. Peter’s Church 자리에 1945~55년에 새로 지어진 아글레시아 성당은 히혼을 대표할 수 있도록 로마네스크 이전 교회양식으로 고풍스럽게 지어졌다고 한다.
까미노 프리미타보에서 숙소 찾기가 어려우면 농가주택에 들어 가서 보여주라며 샘과 마누 부부가 써 준 스페인어 문장이다. 유용하다.
1. Es possible la libre acampada pie aqui? 2. Estoy haciendo el Camino de Santiago y necesito descansar. 3. Donde puedo acampar?
집 옆에 텐트치고 되느냐? 난 순례객인데 프리텐트 쳐도 되느냐? 어디에 쳐야 되느냐? 대충 그런 내용이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Deva, Camping Deva→Gijon/Xixon, Camping Gijon 6㎞, 10,000걸음, 2시간 00분 (까미노 참고용 : Deva, Camping Deva→Gijon→Ovied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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