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24 05:00
필자가 친 텐트. (사진=박인기)

프리미티보 첫 밤을 알베르게 앞 공원에 친 텐트 속에서 비몽사몽 보냈다. 8시 반쯤 도착한 빌라 드 가르도(Villa de Gardo)알베르게에는 이미 여석이 없었고 그리하여 공원에 텐트를 친 것이다.

(사진=박인기)

잠을 설친 실제 이유는 청소년들에게 있다. 금요일 밤은 고등학생쯤 보이는 가르도 남녀 청소년 들에게도 불금인 게 분명하다. 텐트 앞에 어둠과 함께 하나 둘씩 모여들어 새벽 2시까지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괴성이 어우러졌던 불타는 금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진=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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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설쳐 힘든 8월 10일 아침, 텐트 두드리는 소리에 깨보니 알베르게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아침 8시 알베르게 투숙객은 이미 다 떠났고, 곧 문닫으려고 하니 샤워하라며 나를 깨워준 것이다. 청년 덕분에 프리미티보 첫 날 기억이 훈훈하게 환하게 밝았다. 뒤로 텅 빈 알베르게, 앞으로 텅 빈 공원, 그 위로 아침 햇살이 밀려온다. 빈 공간에 이미 새벽 공기는 꽉 들어찼다. 내 심신에 에너지가 넘친다. 아~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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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을 벗어나는 코너에 바(Bar)가 하나 있다. 출입문 옆 벽 알림판에는 무수히 박힌 스테플러 자국이 남아있다. 그 남아 있는 알 자국이 너무 많고 반복해 겹쳐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명멸한 무수한 삶을 알린 고지의 흔적, 바로 교회에서 치를 장례일을 알리는 부고안내장이 붙었던 흔적들이었다. 그들도 분명 바에 출입하던 단골 손님들이었겠지.... 지금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 분, 이 아침에 새로 붙여 놓은 알림장을 확인하고 다시 차를 몰고 떠난다. 인생무상을 확인하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천지 만물은 모두 무상하다. 

(사진=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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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길, 사는 길에는 존재 자체가 삶에 기쁨을 주는 살아 있는 꽃, 존재 자체가 또 다른 삶에 그루터기가 되는 죽은 나무, 존재 자체가 페레그리노(peregrino:순례자)에게 힘을 주는 친절한 알베르게 청년... 모두 걷는 길, 사는 길, 까미노가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삶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천년동안 이 프리미티보 길에서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는 동일한 울림일 터이다. ‘만물여아위일(萬物與我爲)一’,  세상만물이 사는 방식은 너나 할 것없이 더불어 하나처럼 동일하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색채만으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앞서 젊은 한 여성과 남성 셋이 함께 걸어간다. 그 중 남성 한 사람은 눈에 띄는 패션이스트다. 빨간 천 두건에 파란색 상의 그리고 빨간 색 양말을 신고 산길을 오른다. 그는 내게 빨간색으로 기쁨을 주었다. 그 특별함에 매료되어 쫓아가 말을 걸었다. 자기소개를 하다보니 그 젊은이도 디자인을 공부했고 지금은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8년 동안 애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본래 프랑스인이라고 말한다. 역시 패션감각이 남다르다고 '엄지 척~' 표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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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옆 친구들도 기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들이란다. 신입생들에게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또 다른 교수, 키 큰 또 다른 친구는 수의학을 전공한 박사지만 지금은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한다. 산길에서 만난 즐거운 사람들...모두 고마운 존재들이다.

필자와의 사진촬영에 응해준 현지인들. (사진=박인기)

나는 타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니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답은 길 위에 있다. 마침 길 옆에 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이 도란도란 소리내며 흐르고 있다. 

(사진=박인기)

산골 마을에서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젊은 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남은 노인들은 밭에 나갔으리라. 지난 28일 동안 걸었던 바스크 길, 칸타브리아 길, 지금 아스투리아 길 모두에서 느끼는 공통적인 점이다. 비록 빈 집이지만 낡았지만 매일 아침 쓸고 닦으며  한결같이 깨끗하게 다듬어 놓고 있다. 

존재는 변함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것, 나 또한 뫼비우스 띠처럼 영원히 살 것 같은 고정관념의 착각을 버리고 즐거운 본연의 모습으로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자. 길 가 뫼비우스 띠 닮은 표시가 주는 화살표의 상징적 울림이 크다.

(사진=박인기)

그리고 화단, 벽, 창문에는 기쁨 주는 꽃들을 물 주고 가꾸어 예쁘게 장식해서 길옆에 내놓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없어도 있는 듯 있어도 없는 듯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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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가 일깨워 준 자연무위의 삶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은둔, 혹은 나태하고 무력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왕성한 활동과 깊은 사유를 병행하며 욕심을 버리고 즐거운 삶을 누리라는 주체적 삶에 대한 조언이었다.

(사진=박인기0

자연은 무위하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유위(有爲)한 존재다. 다만 유위함이 지나쳐 욕심으로 나가지 말라는 충심의 고언이다. 욕심은 경쟁으로 인해 분열하고 분쟁한다. 따라서 욕심을 향한 에너지, 곧 원인이 되는 지식조차 부정하며 무지무욕(無知無欲)을 강조했다. 무지무욕무쟁(無爭)하라고 권고했다. 지나치게 차별하고 경쟁하는 탐(貪) 진(瞋) 치(癡)에 빠지지 말라는 무위 생명정신을 사람들은 종종 무력감으로 호도하곤 했었다.

 

(사진=박인기)

노자 장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전쟁이 일상인, 백성의 주검을 전쟁터의 흙 먼지 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하던 고대 중국 동주(東周)시기를 관통하는 약 500년간의 유위무력(有爲武力)의 시대였다. 통치철학으로 논리화시키며 백성들 삶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교화한 것에 앞장섰던 것이 당시 유가(儒家)의 유위(有爲)사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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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도가(道家)의 무위(無爲)는 춘추전국 시대의 참상을 목도하고 무위의 생명성을 역설하며 당시 위정자, 소위 지식인들에게 토로한 피 맺힌 절규였다. 무위는 인간이 곧 자연이라는 통찰에서 나왔다. 무위는 욕심을 버리라는, 욕심이 지나치면 죽음을 낳는다는 생명존중 사상이다. 인간의 삶은 지식으로 만든 권력의 불쏘시개가 결코 아니다. 대신 인간이 가야 할 처세방법으로 자검후(慈儉後)를 얘기했다. 이 또한 식자들은 종종 소극적인 기회주의적 삶의 방식이라고 폄하하곤 한다. 유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노자의 도는 물과 같다고 했다. 상선약수, 물은 만물에 도움을 주고 다투지 아니하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자검후는 물 같이 살라는 가르침이다. 자는 사랑하라는 말이다. 사랑은 나를 버리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다. 검(儉)은 다투지 말라는 말이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롱, 오미영인구상(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이라고 했다. 지나친 색 소리 맛은 눈 귀 입맛을 망쳐 버릴 수 있다는 지나침에 대한 경고다. 지나침은 경쟁이다. 경쟁은 다툼이다. 다투지 않는다는 물의 상선의 이치가 검 속에 들어 있다.

지식은 자칫 이념화되고 권력이 된다. 예술 또한 제도화되고 권력이 된다. 그 외 대부분의 분야가 경쟁을 쫓아 결국 권력이 되어 삶을 위태롭게 한다. 검은 이것에 대한 경고다.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 곧 후()의 의미는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라는 말이다.

(사진=박인기)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차근차근 천천히 끝까지 흘러가는 물의 특성을 소극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무력한 입세간(入世間)쯤의 처세술로 보이는가?

노자의 처세술은 유위한 입세술이 아니라 무위함으로 생명을 보전하라는 삶의 출세술을 말하는 생명철학인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것의 우선을 생명존중에 두고 사랑하고 검소하며 겸손하라. 그래야 샘물처럼 도움을 주며 다투지 않고 기쁨을 주는 즐거운 삶, 자연을 닮은 무위한 인간 삶이 된다는 것이다.

도의 의미는 요즘으로 말하면 순례길의 의미다. 순례길은 말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순례길은 희언자연(希言自然), 도와 닮았다. 인간의 길은 다양한 질감으로 드러나지만 모두 인간이 걸어가고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인생 길, 즐거운 순례길, 도의 길이다. 2,500년 전에 노자 장자가 무위로써 말하고, 1,500년 지나 순례길이 그걸 증명한다.

(사진=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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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스로 향하는 까미노가 바로 그런 길임을 오늘도 실증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쇠락한 폐허 성당을 거치며 순례길을 만들어 놓고 종교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깊은 속 뜻의 천 년 기독교 정신인 지 모르겠다.

반면 도가(道家)의 무위(無爲)는 춘추전국 시대의 참상을 목도하고 무위의 생명성을 역설하며 당시 위정자, 소위 지식인들에게 토로한 피 맺힌 절규였다. 무위는 인간이 곧 자연이라는 통찰에서 나왔다. 무위는 욕심을 버리라는, 욕심이 지나치면 죽음을 낳는다는 생명존중 사상이다. 인간의 삶은 지식으로 만든 권력의 불쏘시개가 결코 아니다. 대신 인간이 가야 할 처세방법으로 자검후(慈儉後)를 얘기했다. 이 또한 식자들은 종종 소극적인 기회주의적 삶의 방식이라고 폄하하곤 한다. 유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지나쳐 온 까미노 댈 노르테가 유위한 지자(智者)의 해안 길이었다면 이곳 까미노 프리미티보는 무위한 덕자(德者)의 산속 수행길이다. 아스투리아 지방, 특히 산골마을에는 집집마다 전통구조물 파내라(Panera)와 오래오(hórreos)가 있다. 지붕 꼭지점 솟음머리가 하나인 정사각형 구조물은 오래오, 솟음용머리가 둘인 직사각형 구조물은 파내라라고 한단다.

(사진=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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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람 많은 산골에서 곡식들을 말리고 저장하는 창고로 쓰고 그 아래는 바람 잘 통하는 그늘 쉼터 등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담긴 전통적인 시설물이다.

Albergue de Peregrinos Salas, 오후 7시 도착, 소파에서 잘 수 있는 마지막 손님이다. 이태리에서 온 마누앨, 재미있는 친구였다. 끊임없이 말하고 끊임없이 어리숙하게 말하며 사교적이고 따듯한, 어릿광대 같은 매력을 주는 물과 같은 친구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306㎞ 남았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Grau/ Gardo→San Juan→La Venta→Casas Del Puente→Llamas→Quintana→La Debesa→Mallecin, Albergue de Peregrinos de Godan→Salas, Albergue de Petegrinos de Salas 24㎞, 35,423걸음, 9시간 24분  (까미노 참고용 : Grau/Gardo→Salas 22.3㎞, 5시간0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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