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5일 오전 7시30분 출발했다. 새벽 안개로 둘러쌓인 라 메싸 산골마을은 깊고 적막하다. 숙소를 뒤로하고 바람의 언덕을 넘어 내려 오는 길, 안개가 피어오르는 저 아래 속세바다 또한 헤아릴 길 없이 깊고 고요하다. 그 고요한 세상을 등 뒤에서 떠오르는 해가 서서히 여명의 안개를 걷어내고 있다. 세상천지가 비로소 하나로 기운 생동하기 시작한다.

그 고요를 흔들어 보면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길에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다. 호주 멜번의 딸내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고, 휴가를 떠났던 아들 내외는 지금쯤 방콕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 중에 있을 것이다. 또 나의 사랑하는 40년 반려자 가인은 아마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있겠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북적대고 있을 거대도시 서울, 그 안에 살고 있는 또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광화문 광장에서 그들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들의 신념대로...생각해보면 이 다양한 모든 것이 정말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 고마움에 더해 신념과 이념의 날카로움을 부드러운 새벽 안개처럼 화해의 바다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지(智)의 길, 덕(德)의 길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 내는 칸타부리아 천년바다 생명의 길처럼 응당 다름을 당연히 존중하고 배려하며 역지사지 책임을 다해보자. 그렇게 다른 신념이 하나로 화합한다면, 70년 살아 온 나의 서울길이 아마도 700년, 7,000년 너머 이어지는 평화의 서울순례길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산길에서 기도해본다..

세 시간 산길을 내려 와 Pincho de Tortilla 3유로, 맥주 한 잔 1.7유로, 저수지룰 끼고 있는 호텔 Las Grandas 바에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점심시간이 지날 즈음 목적지 Salime의 Albergue de Peregrinos de El Salvador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작은 산골마을이다. 게다가 공휴일까지 끼어 마켓 등 가게 대부분이 휴업이다.

산골마을에도 사람들이 찾는다. 동네 입구에 박물관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아스투리아스 전통 생활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생활사 박물관이다.

산골지방에 필요했을 사냥 총, 덫 등의 수렵도구와 갖가지 집안 살림도구, 병원, 이발관, 양조장 모습도 연출해 놓았다. 그리고 의복 신발 등등도 전시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나무를 깍아 만든 신발 모형이 생각보다 엄청 많고 다양하다. 까미노를 통해 걸어왔던 바스크, 칸타부리아, 아스투리아 지방별로 비교 가눙하도록 시기도 나누어 분류전시해 놓있다.
옛부터 걷는 게 사는 것이었나 보다. 신발은 걷는 길, 사는 길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생활철학이 이곳 살리미 지방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그 점에 100% 동감한다.

알베르게에서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徐志剛(Xu Zhigang), 余敏亚(Yu Minya)씨가 그들인데 3개월 일정으로 이태리, 모로코, 포르투갈, 스페인 등을 2개월째 여행 중이란다. 60일 일정의 내 얘기, 3개월 일정의 그들 얘기로 오랜 시간 즐겁게 보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도 천년 순례길에선 이렇게 즐겁다.
그런데 100년도 못사는 인생길에선 우리 모두 왜 그렇게 심각한가? 걷는 길, 사는 길, 다 똑같은 길이건만...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La Mesa→Albergue de Peregrinos de El Salvador en Granadas de Salime 18.6㎞, 28,643걸음, 5시간 10분 (까미노 참고용 : La Mesa→Granadas de Salime 14.7㎞,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