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30 05:00
오늘(8월 16일)은 갈 길이 멀어 새벽 6시30분 서둘러 살리메 숙소를 나왔다. 밖은 깜깜하고 숙소 앞에 늘 있던 방향표시도 없다. 큰 길 따라 걸어가는데 마침 지나가던 자동차 기사가 뭐라고 소리친다. 그 방향이 아니라는 것 같다. 뭔가 심란해면서 잠시 멈춰섰다. 뒤에 올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하자.
옛날 일찍이 속이 깊어 헤아리기 힘든 선(善)을 행하는 사람, 고지선위사자(古之善爲士者)는 그럴 때 이렇게 했다고 노자는 전한다.
‘숙능탁이정지서청(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안이구동지서생(孰能安以久動之徐生)’
‘마음이 심란하고 탁해질 때 무심 고요함으로 서서히 본래 맑음을 능히 얻었고, 몸이 편안하여 나태해질 때 부지런히 다시 움직임으로써 서서히 새롭게 생명력을 회복했다. 어느 누가 능히 그리 할 수 있겠는가? ’
지혜로운 사람, 달관한 사람, 득도한 사람들은 무심 고요함으로 혼탁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달랬고, 또 편안함으로 나태해지면 또 다시 움직임으로써 몸과 마음을 새롭게 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인,모두 후대를 향해 일종의 선(善)을 행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선위사자(善爲士者)들이다. 성공은 일종의 득도, 이미 길을 얻은 자들이다. 정치길에서 권력을 잡은 자, 경제길에서 부를 얻은 자, 사회길에서 지도자가 된 자, 모두 원하는 길에서 바라는 것을 얻은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이 덜 된 자들은 종종 초심을 잊는다. 타인에게서 신뢰, 존경을 받고 권위만 내세우려 하지 더 이상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려 들지 않는다. 세습하는 독재자, 세습하는 재벌, 세습하는 목회자, 모두 탐욕에 초심을 잃은 권력자 들이다. 모두 타인에게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상대를 주시하는 눈만 있지 자신을 향한 성찰의 눈은 멀었다.
특히 사랑의 결핍, 물질결핍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람일수록 하나의 성취를 토대로 교만해지고 권위적이어서 불편하기만 한데 그런 자들일수록 정심성의(正心誠義)에는 관심이 없고 대개 제가치국(齊家治國)평천하(平天下)하려고 덤빈다. 모두가 수신(修身)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현대사회에서도 수신은 변함없이 갈고 닦어야 하는 심재(心齋)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숙능안이구동서생(孰能安以久動之徐生)’, 누가 능히 편안하게 안주하는 가운데 그것을 나태함으로 보고 반성하며 수신함으로써 서서히 초심을 되찾으려 할 것인가?
아~ 득도는 한 번의 체험이 아니다. 득도는 끊임없이 마음을 허정한 상태로 비워내는 심재의 수신행위일 것이다. 우리들은 평소 걷고 살면서 꿈을 꾸다가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또 자신이 꿈꾸던 것을 얻고 난 뒤 자신을 위태롭게 할 경우도 많다. 초심으로 근신하던 몸과 마음이 나태해지기 때문이다. 산행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발을 삐끗 디뎌 골절상을 입는 경우 대부분은 오를 때보다 내려 올 때 많이 생긴다. 정상등극 후 초심을 잃어서 그렇다. 이럴 땐 우선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응시하면서 고요하게 침잠하라고 옛날 스승, 선위사자가 권하고 있다.
어느새 마지막 아스투리아 지역을 벗어나 갈리시아(Galicia)지방에 들어섰고 첫 Asebo Bar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마지막 네 번째 지방인 갈리시아에 들어선 것이다.
프리미티보 길은 말 그대로 크게 개발되지 않은 원시길이다. 9세기 경 까미노의 시원이 되었다 해서 시원길, 원시길로 부른다. 우리는 까미노 길의 원조로 생각해서 자주 원조길로 부르기도 한다. 이 까미노 길의 특징은 개발이 안된 자연 그대로 오지지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따라서 걷다보면 사람길, 소길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늘 길에 소똥이 덩어리째 떨어져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오르는 산길에도 거친 자갈길이 많고 게다가 대체로 밤과 새벽엔 고원지대라 춥다.
원시길은 이렇게 불편하다. 미끄러지기 쉬운 자갈길, 오르고 내리는 경사도 만만치 않다. 여기저기 소도 많고 소똥도 길 위에 넘쳐난다. 그 불편함을 우리는 원시생명의 시원이라고 부른다. 먹는 것조차 대체로 거칠다. 초행길의 결론으로 까미노 프리미티보는 고독한 수행길인 것 같다.
아~ 프리미티보 길 대부분의 레스토란테에서는 오후 7시부터 순례자(Peregrino)를 위한 특별 디너를 12유로에 서비스하고 있다. 내 취향은 시래기국 닮은 전채 뽀띠 Pote이거나 야채 샐러드, 그리고 메인으로서 비프스테크였다. 비노 레드와인과 식후 디저트는 기본... 오늘도 에너지를 만족하게 충전했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Granadas de Salime→Albergue de Peregrinos Casa Pasarin A Fonsagrada 28㎞, 41,763걸음, 9시간 10분 (까미노 참고용 : Granadas de Salime→A Fonsagrada 26km)
관련기사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㉜] "갈리시아에 오면 화이트 와인을 마시라"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㉛] 바(Bar)에 순례객 들어오면 주민들이 자리 비켜줘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㉚] 까미노 프리미티보는 무위한 덕자(德者)의 산속 수행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㉙] 지금 걷고 있는 내 길이 바로 순례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㉘] 모르면 묻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또 물어라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㉗] 부산 해운대 같은 히혼 바닷가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㉖] 만나면 반갑고 어려우면 도움 주려하는 까미노 사람들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㉕] 오늘도 '시드라' 마시며 '락락락(樂樂樂)'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㉔] 갈 길 멀지만 걷다보면 앞산이 뒷산 될 것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㉓] 이곳은 모든 길에서 사람이 우선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 ㉒] 2~3시간 기다려도 정보센터 활용하라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㉑] 백패커는 순례길에서 언제나 '느긋'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⑳] 걷는 모든 길은 내 삶 형성시키는 인연의 순례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⑲] 캠핑은 자유롭지만 독행(獨行)…알베르게는 부자유스럽지만 동행(同行)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⑱]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본성대로 자유롭다
- [박인기의 산티아도 몽유도⑰] 요양병상 아닌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열망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⑯] 밝고 명랑하고 거침없는 스페인 아이들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⑮] 내 나이 70살, 걷는 길이 곧 사는 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⑭] 일요일, 해변에서 지친 몸도 회복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⑬] 8살 소년이 준 떨림과 울림이란 선물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㉟] 100년도 못사는 인생길에선 우린 왜 그리 심각한가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㉞] 삶은 소고기, 감자튀김, 와인으로 심신 충전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㉝]1박 30유로…'하늘동네' 베르두세도의 상술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 ㊴] 와인도 물처럼 '서비스'로 제공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㊵] 기도실로 오해한 자연저장고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㊳] 뒷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㊶] 하루 두 번 이상 스탬프 찍혀야 '인정'…북적이는 순례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㊷] 하늘과 나무, 들판과 바람, 사람들과 교감하며 걷는 길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㊸] 생긴 모습들은 다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모두 하나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㊹] 까미노 807㎞ 증명서 받고 ‘부엔 까미노~ 그라시아스!’
-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㊺·끝] 꿈꾸며 즐기는 인생길은 '어메이징 그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