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31 05:00
이틀 전에 처음 만났던 중국인 서(徐)서방 정보 덕분에 짧은 밤을 보내고 8월 17일 새벽 5시40분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자 아직도 칠흙 같은 밤, 앞서 가는 스페인 부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항상 느꼈던 점이지만 유럽인들은 대개 보폭이 크고 걸음도 빠르다. 배낭무게 탓도 있겠지만 따라가기가 항상 버겁다. 따라서 따라 갈 이유도 없었는데 오늘 마음이 바빠진 것은 엊저녁 서서방이 전해 준 숙소정보가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엊저녁 잠들기 직전 서 서방이 나를 베란다로 은밀히 끌더니 인터넷을 검색해 얻은 자기 나름의 '핫 정보'를 내게 들려줬다. 오늘 가야하는 목적지 오 카다보 O Cadavo에 있는 알베르게 2곳이 이미 예약이 다 찼고 호텔은 40유로, 그리고 21유로짜리 한 곳은 전화조차 안 받는다며 조급해했다.
그러더니 자기들은 오늘 묵는 6유로 폰사그라다 알베르게에 하루 더 머물다 루고까지 길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 갈 것이라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공립 알베르게는 선착순이지만 나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는 유럽사람 못 쫓아갈테니 걱정된다며 나름 전해준 고급정보였다.
그러니 젊은 유럽인들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게 버스를 이용하라며 방법까지 가르쳐 줬다. 게다가 앞으로 프린세스 까미노 사람들과 합류하게 될 멜리데 Melide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지나 온 34일, 앞으로 남은 6일...여기가 까미노 길인데 무엇이 크게 다를 것인가? 물론 숙소 잡기에 좀 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나에겐 텐트가 있잖은가?
“정보 전해 줘 고맙지만 나에겐 텐트가 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34일 동안 예약 한 번 없이 잘 걸어 왔으니 걱정하시지 말라. 내일도 난 계속 걸어 갈 것이다”
인사를 하고 침대에 누웠으나 남은 6일 동안 여정의 뭔가가 머릿 속을 맴돌았던 것 같다.
우리들은 관계 속에서 즐겁기도 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이런 쾌감과 불쾌감은 동전의 양면, 이틀간 한 숙소에 머물며 함께 즐거웠던 시간이 이들의 현실적 지혜로움 때문에 순례길의 고요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질 뻔 했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어 준 중국인 염려 덕분에 12시경, 이곳 오 카다보 O Cadavo 공립 알베르게에 여유있게 머물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순례길보다는 여행길이 목적이었던 그들 부부 덕분에 나는 까미노 길에서 역시 큰 친절을 선물 받았다. Thank you, a nice Chinese couple!
이제 남은 거리 128.870㎞, 남은 사간 약 5일 동안 또 어떤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걱정하던 이곳 오 카다보의 오후 햇볕은 오늘도 변함없이 따겁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A Fonsagrada→Paradavella→O Cádavo, Albergue de Peregrinos O Cádavo(Baleira) 25㎞, 37,901걸음, 6시간 30분 (까미노 참고용 : A Fonsagrada→O Cádavo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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