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9.03 04:00

SUV, 토요타 21개에 비해 현대·기아 15개 불과…수소차 핵심부품도 일본에 의존
전기차 배터리 제조소재 핵심기술, 선진국의 30~40% 수준
수소의 생성·운반 과정 등 새로운 벨류체인 형성 위해 R&D 지원 필요

북경현대공장에 출고를 대기하고 있는 차들의 모습(사진=ARRON)
북경현대공장에서 출고 대기 중인 차들의 모습(사진=ARRON)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국내 자동차 산업은 중·소형 승용차 판매에 기대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며 높은 실적을 올려왔다. 하지만 SUV 개발을 등한시했던 우리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 트렌드를 놓치는 잘못을 범해 자동차 생산국 5위에서 7위로 떨어지는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업체들은 겨우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는 SUV 라인업을 보완해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지만, 매출액 대비 현저히 낮은 R&D 투자로 미래차로 급속히 변화 중인 자동차 산업 흐름을 또 다시 놓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60년 역사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도 어려웠고, 올해 및 내년에도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 동력의 미래자동차 시대로 진입하면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기업은 본격적인 경쟁력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기술 혁신과 경쟁력 제고 및 글로벌 트렌드 변화에 민첩한 대응을 위한 R&D 투자 확대를 통해 미래차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2018년도 주요 자동차그룹의 경영실적 비교(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2018년도 주요 자동차그룹의 경영실적 비교(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대응력 부족

국내 자동차 업체는 세계시장 변화에 대한 기술 및 제품 대응력 부족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중·소형 세단 중심의 라인업 구성과 차량 개발로 201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SUV, 미니밴 등 RV 차량에 대한 시장 대응이 다소 늦었기 때문이다.

한국 브랜드는 RV 차량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C세그먼트 이하의 소형차급 비중이 높았다. 특히, 2017년 현대·기아차와 세계시장의 RV 판매비중 차이는 8.7%로 가장 큰 격차를 나타냈으며, 2017년 이후 공격적으로 SUV 신차를 출시하기 시작해 2018년 5.3%로 격차를 축소했다.

SUV 모델 수에서도 20개 전후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토요타와 격차가 크며 현대·기아차는 2016년 이후 본격적인 SUV 시장 대응으로 라인업을 확대했음에도 2018년 기준 토요타 21개, 현대·기아 15개 모델로 경쟁사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2018년 기준 미국시장의 16.5%를 차지하는 픽업트럭 모델은 아예 없다. 2016년에야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론칭하는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마켓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반해 일본 토요타는 3개의 픽업트럭 모델을 보유하고 있고, 1989년 이미 렉서스를 내놓으면서 고급브랜드를 시장에 안착 시키는데 성공했다.

국산 업체들의 내연기관 기술은 선진국업체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친환경차 핵심기술 등 첨단 기술에서는 여전히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율은 2% 수준에 불과하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장부품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50% 수준에 달한다. 이 중 핵심 고가부품인 차량용 반도체는 거의 100% 외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기술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소재 핵심 기술은 선진국 대비 30~40% 수준이다. 전기차 핵심요소 기술인 모터(영구자석, 레졸버 센서), 인버터(전력반도체, 제어보드), 배터리(배터리 셀, 모듈팩, 제어기) 등 소재핵심 기술의 상당부분도 해외 업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수소차는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는 등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연료전지스택(전해질말, 기체확산층), 수소저장장치(탄소섬유복합재, 고압실링소재), 수소공급장치(에어필터, 수소농도센서, 이온필터) 등 핵심부품은 일본 업체 제품을 사용 중이다.

신차 초기 품질 및 내구성 조사 순위(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0
신차 초기 품질 및 내구성 조사 순위(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0

◆품질·가격·기술 경쟁력 확보위해 R&D 투자 필요

국산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차의 초기 품질 수준 상승으로 다양한 소비자 조사에서 연속적으로 상위에 포함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내구성 품질은 아직 미흡한 면이 적지않다. 내구성 관련 조사에서는 상위에 랭크되는 경우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차 품질은 일본·독일·미국에 앞설 정도로 향상됐지만 브랜드 이미지·중고차 가격 등에 반영되는 내구성 평가는 여전히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JD파워의 신차품질지수(IQS)는 2015년 이후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으나 내구성조사(VDS)는 줄곳 18~28위의 하위권에 머물다가 지난해에야 기아 5위, 현대 7위로 향상됐다.

국내 업체는 각종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중국업체(지리)가 한국차와 경합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인터브랜드의 ‘2018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의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벤츠는 7위, 토요타는 8위, BMW는 13위, 포드는 35위를 기록했다. 이에비해 현대는 36위, 기아는 71위로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영국 브랜드 평가 기업 브랜드파이낸스의 ‘2018 세계자동차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1위에서 10위는 벤츠, 토요타, BMW, 폭스바겐, 혼다, 닛산, 포르쉐, 포드, 아우디, 쉐보레 순이다. 현대는 13위, 중국 지리자동차는 18위, 기아는 20위에 랭크되어 있다.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특히 부품경쟁력이 유독 취약하다. 국내 산업 환경에서 제조업을 키우기보다 무시하고 강제하거나 대기업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해온 여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글로벌 100대 부품업체 중 일본 26개사, 미국과 독일은 19개사인 반면, 한국은 7개사에 불과해 기술력 있는 대형 부품업체가 열세다. 국내 업체로 현대 모비스, 현대위아, 만도, 한온시스템, 파워텍, 다이모스, 케피코 7개사고, 중국은 양펭, BHAP, CITIC, 존슨일렉트릭, 울링인터스트리, 민스사 6개사로 바로 턱 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최근 국내 부품업계는 매출 위축뿐만 아니라 영업이익 급감으로 소수 업체를 제외하면 R&D 투자여력을 상실한 상태다.

부품업계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2015년 2.2%, 2016년 2.4%, 2017년 2.6%까지 증가했으나, 지난해 기준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현대모비스 2.4%, 만도 5.6%에 그친다. 이에비해 보쉬는 7.6%, 덴소는 8.8%, 콘티넨탈는 10.3%에 이른다. 절대적인 매출이 작은데다 연구개발 비중마저 낮은 상태에서 선진 업체를 과연 따라잡을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노동유연성 확보와 정부규제 개선 절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 항목 중 하나인 가격 경쟁력을 제일 먼저 확보해야한다. 이를 위해 노동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사내하도급 제한, 전환배치, 파견제 불가로 인해 유휴 인력이 발생해도 활용할 수 없고, 신차 투입시기 및 물량 조정 등도 노조 동의하에 가능하다"며 "이처럼 경직된 근로 유연성으로 인해 급박하게 변하는 시장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능한 유연한 근로체계를 갖춰 시장의 변화에 신속한 대응이 되도록 변경해야 우리 자동차 산업의 생산 증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파업이 가능한 규정과 파업 시 대체 근로 불가 등 노동관련 현행 법령과 제도가 노조에 우월한 힘을 보장해 노·사간 교섭력을 불균형하게 만들어 놓은 상황을 개선해야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와 도입요건 완화와 파견허용 대상 범위 및 기간확대가 필요하다. 전환 배치는 회사 경영 판단 사항으로 인정해야하고, 노조 파업 시 대체근무 허용과 교섭주기를 1년에서 3년 이상 중·장기화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할 수 있는 조건이다. 여기에 파업요건을 50%에서 65% 이상으로 상향해 쟁의행위 절차에 대한 엄격성을 부여해 글로벌 표준에 맞는 노동 유연성을 제고해야한다.

미국시장에서 한·일 주요 경쟁모델의 가격 변화(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미국시장에서 한·일 주요 경쟁모델의 가격 변화. (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과도한 정부 규제 개선도 절실하다. 정부는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 특화된 규제의 무분별한 도입을 지양하고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이 공통으로 채택하는 규제에 대해 국내 산업 및 시장 특성을 고려해 도입해야한다.

정부의 잘못된 규제는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규제로 인한 부품의 추가 장착, R&D 투자 여력이 없는 업체의 비용부담 증가 등으로 원가 상승을 유발해 수입차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정책 로드맵에 따라 10년 단위의 장기 기준을 제시해 자동차 생산업체가 준비할 수 있도록 규제의 예측 가능성 확보가 필요하다.

정부가 현재 진행중인 친환경차 보급 정책은 유지하되 산업발전을 고려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장은 내연기관 대비 높은 가격, 충전인프라 부족 등 아직 자생적인 시장이 완성되지 않은 단계로 세제 지원과 보조금 지원이 필요한 단계다. 다만 현행 보조금 정책은 중국 전기차 등 일부 수입차 급증을 유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지자체별 상이한 지원책을 통합하고 산업 발전을 고려한 보조금 정책으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소전기차에 대한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 수소차 핵심부품 개발 및 시장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은 필수 조건이 된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의 양산에 성공해 빠른 기술개발 속도와 능력을 갖추었으나, 지난해 수소차 판매는 현대 1710대, 토요타 2393대, 혼다 624대로 오히려 일본산 수소차의 판매가 많다. 국가 차원의 보급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 정책이 부진한 사이 토요타 등 일본 브랜드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최근 중국도 전기차 위주에서 수소차 중심의 기술개발 및 보급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차량 개발 및 출시를 앞두고 있어 수소차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수소차 시장 선점의 성패는 결국 규모의 경제를 조기 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가 차원의 인프라 구축과 수요확대를 위한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정책을 통해 한국이 수소차의 테스트베드로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

미국, 중국 등에서 전기차에 대한 지원규모가 축소 또는 폐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수소차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정책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수소차는 전후방 생태계에 미치는 효과가 기존 내연기관과 비슷하게 광범위하며, 수소의 생성 및 운반 과정 등에서 새로운 벨류체인이 형성될 수 있어 R&D 지원의 필요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외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융합형 인재 육성이 필요하고,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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