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9.02 05:00
(사진=박인기)

8월 19일 새벽 일찍 알베르게를 나서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루고(Lugo)성곽으로 올라가 잠시 영화 속 장면에 등장했던 로마제국 시대의 생활상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진 성곽의 형태 안팍으로 현대식 건물과 집들이 바짝 붙어 있어 연상이 어려웠다.

(사진=박인기)

갈리시아 지방 주도 루고에서 좀 더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쩌랴...아침 7시50분 출발! 

소득도 있다. 엊저녁 은인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유럽인들, 즉 프랑스인 부부와 스페니쉬 아마데우가 우연 속에서도 친숙했던 듯 저녁만남을 이어가는 그들 일상적 생활문화를 잠깐 경험해 본 것은 큰 배움의 기회였다. 우연한 까미노 길에서도 결국 개인사 디테일이 궁금한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든 솔직한 얘기를 통해 그것이 서로 공감되지 않으면... 글쎄? 메마른 대화만 오가는 형식적인 예의관계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먼저 나를 드러내야 상대방도 속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 모두에게 해당되는 당연한 얘기지만 길 위에서 직접 경험한 생생한 가르침이었다. 아마데우, 프랑스여사 모두 먼저 다가가 나를 소개하며 대화를 청했던 것이 배움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사진=박인기)

특히 친절함과 상냥함이 넘치는 프랑스인 테레사 여사는 오늘 행선지를 내가 예정한 로토르다(Rotorda)보다 7㎞ 더 전진하여 훼레이라(Ferreira)에 여장 풀 것을 권고했다. 숙소 잡기도 더 쉬울 것이고 다음날 여정을 감안해 좀 더 걸어가라는 충언이었다.

필자. (사진=박인기)

덕분에 약 7㎞ 더 운행해야 했지만 내일 그만큼 가벼운 발걸음이 시작되리라. 이렇듯 먼저 겸손한 자세로 솔직하게 자신부터 드러내는 적극적인 관계맺음이 상대방으로부터  지혜로움을 얻게되는 지름길임은 분명하다.  

(사진=박인기)

배움의 기회는 하나 더 있었다. 약 26㎞를 쉬지 않고 걸어와 텐트사이트가 가능한 사설 Albergue A Nave에 텐트 설치 여부를 문의했다. 여기도 사전예약으로 침대는 이미 역시 다 찼다고 한다. 옆 공터에 알아서 텐트를 치란다. 단 건물 안에 있는 샤워실 사용은 안 된다며 바깥 수도호스를 이용해 샤워를 하고 화장실 사용만 하란다.

그리고 만찬 메뉴를 들이민다. 오후 7시45분 만찬식과 내일 아침 간편식은 미리 예약해야 가능하단다. 그렇게 또 12유로짜리 스테이크 메뉴를 예약주문했다. 하나 더 선택 가능 메뉴에 대해선 아이디어가 전혀 없으니 쉽게 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

(사진=박인기)

텐트부터 설치하고 밖에 있는 유일한 바(Bar) Cantina Ferreira에서 배가 고파 점심을 시켰다. 역시 여기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란다. 가격은 10유로...목이 칼칼해 주문한 메뉴에 들어 있던 비노(포도주)를 기다리는 데 옆 사람 것은 가져오고 내 것은 아직...?   ‘아, 와인이 한 좌석에 물과 함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로구나~’  

(사진=박인기)

함께 합석했던 이태리 청년들의 설명으로 내 언짢아 하는 부름에 의아해 하던 종업원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성장과정에선 언감생심, 요즘도 큰 맘 먹고 사마시는 포도주가 이곳에선 그냥 테이블 마다 놓여지는 물과 같은 서비스 품목이란다. 하기야 마트에서 본 포도주 가격은 1유로짜리에서 10유로까지 천차만별, 우리네 소주값 보다 싼 느낌이었었지만 그래도 식당에서까지...? 

암튼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지만, 하늘 아래 세상이 이렇게 제각각 넘쳐나거나 허덕이고 있다는 현실을 또 다시 확인했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Lugo→San Vicente di Burgo→Santa Eulalia de Bóveda→Bacurin→San Román da Rotorda San Romao→Ferreira, Albergue A Nave 26.35㎞, 38,384걸음, 7시간 20분 (까미노 참고용 : Lugo→San Romao da Rotorda 19.7㎞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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