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9.04 20:16

5개 요구조건중 하나만 받아들여…사태 악화 막기 위한 '진정제 투입'이란 평가

캐리 람 행정장관이 페이스북 동영상을 통해 송환법 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캐리 람 페이스북)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거리시위가 14주째 계속된 가운데 마침내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오후 정부 관계자들과 회동을 갖고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다. 람 행정장관은 지난 6월 15일 송환법 처리를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발표하고, 7월 9일에는 "재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시민들은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 벌여왔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을 공식 철회함에 따라 홍콩의 반중시위는 첫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2014년 79일에 걸친 우산혁명 시위를 벌였지만 어떤 요구도 관철시키지 못했던 바 있다. 

람 장관은 이날 오후 4시께(현지시간) 공관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뒤 오후 6시 미리 중국어와 영어로 제작한 약 8분 짜리 동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정부는 대중의 우려를 완전히 진정시키기 위해 송환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한다"며 "입법회의가 재개되면 규칙에 따라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요구와 관련, 람 장관은 "법률 위반"이라며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는 최근 시위로 홍콩이 익숙하지 않은 곳이 되었고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고 언급한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폭력을 멈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들은 그간 홍콩 정부에 ▲송환법의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해왔다. 

송환법에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대만 등의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월 초부터 법안 저지를 위한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했고, 한때 200만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를 점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이 일제히 체포되는 등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격화됐다. 

하지만 람 장관은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 하나만 받아들인 것이어서 홍콩을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던 최근 사태가 다소 완화되겠지만 시위는 당분간 계속된 가능성이 적지않다는 것이 현지 전망이다. 홍콩정부의 발표가 더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진정제 투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위 주최측은 이미 오는 10월 1일 신중국 정부 수립 70주년 때까지 시위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한 바 있다.

지난 2일 람 장관이 기업인들과 비공개 회동에서 송환법 추진이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이라고 토로한 발언이 담긴 녹취가 공개됐다. 람 장관은 이후 공개적으로 부인했지만 '자작 유출'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이런 사건이 중국 정부가 '송환법 철회'를 받아들일 명분을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람 장관의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나온 직후 홍콩 항셍지수는 장중 한때 4.4% 이상 급등했다가 전날보다 3.9% 오른 2만 6523포인트로 마감했다. 직원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찍힌' 홍콩 거점 영국계 국제항공사 캐세이 퍼시픽의 주가는 7% 넘게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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