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19.09.15 05:00

법학전문대학원, 사시제도 폐지로 법조인 유일 양성기관 지위 확보
메디컬스쿨, 의대와 '불편한 동거'에 굴복… 비싼 학비·순혈주의도 한몫

학제를 유지하기로 한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현재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학교는 건국대와 차의과대 뿐이다. (사진=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페이스북)
학제를 유지하기로 한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현재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학교는 건국대와 차의과대 뿐이다. (사진=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페이스북)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은 핏줄이 같다. 문민정부(고 김영삼 대통령)에서 교육부 차원의 구체적 정책으로 논의하며 잉태된 2개 대학원 제도는 참여정부(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형' 뻘인 의전원은 지난 2005년 처음 신입생을 받았고, '아우' 격인 로스쿨은 참여정부에서 도입이 결정돼 2009년 출범했다. 그래서일까, 둘은 태생 배경과 이를 둘러싼 찬반양론, 시행 과정에서의 문제점까지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로스쿨은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절차'로 자리 잡았지만 메디컬스쿨은 대부분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두 전문대학원 형제가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로는 '학제의 법제화' 유무가 첫 손에 꼽힌다. 도입 맥락에서는 유사성을 갖고 있지만 로스쿨은 도입과 동시에 기존 법학과를 없애면서 법시험 폐지 방침을 천명했다. 반면 의전원은 학교 재량에 맡겨 운영하고 향후 정책평가를 통해 도입 여부를 다시 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상 다음 정부에 결정을 떠넘긴 셈이다.

경쟁자 제거하고 입지 다진 로스쿨

로스쿨 도입의 가장 큰 목표는 사법시험 폐지였다. 지난 1963년 도입된 사법시험은 학력, 나이, 성별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법조인 등용문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폐단을 불러왔다. 특히 취업 등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수년간 사법시험에만 매달리는 '사시낭인'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더해 법조비리의 근원으로 지탄받는 사법연구원 기수제도와 전관예우 등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로스쿨 제도는 이러한 사법시험 관련 폐단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강력히 추진됐다. 

사법시험 제도 변천사. 사법시험은 2017년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폐지됐다. (사진=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사법시험 제도 변천사. 사법시험은 2017년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폐지됐다. (사진=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따라서 지난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순간 사법시험 폐지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국회는 변호사시험법을 제정해 사시 정원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였고 2017년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전면 폐지했다.

가라앉는 배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서울 지역 주요 대학들과 로스쿨 유치로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지방 국립대와 사립대들은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법조인을 꿈꾸는 상위권 학생들도 법학과를 고집하지 않았다. 전공에 상관없이 명문 대학에 진학한 뒤 스펙을 쌓고 로스쿨에 지원한다는 입시전략을 너나없이 받아들였다.  

고려대 해송법학도서관과 신법학관(사진=고려대 법학전문대학교 국문브로셔 캡처)

사법시험이라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리 잡는 데 성공한 로스쿨은 도입 후 매년 1500명 안팎의 변호사를 배출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 등록된 변호사 수가 처음 2만명을 넘겼고 올해 2월 2만5880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열린 '2019 대한변협 대의원 선거'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새로운 주류'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대의원에 당선된 375명 중 로스쿨 출신은 286명으로 전체의 76.2%를 차지했다. 총회 소집과 회칙 개정, 예·결산 승인, 감사 선출 등에 로스쿨 출신의 입김이 갈수록 세질 것은 자명하다. 로스쿨 도입 10년, 로스쿨 제도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의대·의전원, 불편한 동행의 여파 

이와 달리 의전원은 맥을 못 췄다. 무엇보다 의사 양성과정에서 '투 트랙(Two-Track)'으로 운영된 이유가 크다.

정부는 의전원 전환 시 각종 재정지원과 로스쿨 유치 등 유인책을 내세웠지만 반(反)의전원 기류에는 변화가 없었다. 2009년 기준 전국 41개 대학 중 14개 대학은 의대를 고수하고, 나머지 27개 대학이 의전원 체제를 도입했다. 27개 대학 중 13곳은 한 대학 내에서 정원의 절반은 의대로, 나머지 절반은 의전원으로 뽑는 어정쩡한 선택을 했다. 

대학 입장에서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 수능 고득점자가 몰려 '입시 커트라인'을 올리는 의대를 결코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의전원 도입 후 두드러진 '이공계 황폐화' 현상도 문제였다. 각 대학에서 이공계 우수 학생들이 전공 공부를 등한시하며 의전원 준비에 몰두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지난 2010년 박영아 전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2008년 사이 4년제 대학 생물학과 졸업생 800명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는 당시 전체 의전원 입학생의 35%에 해당하는 수치다.

학생 입장에서도 의전원을 반길 이유가 없었다. 의대·의전원 간 교육과정은 거의 같은데 의전원의 등록금은 2배 가까이 비쌌다. 반면 졸업 후 응시하는 의사 국가시험과 합격 후 받는 면허는 동일했다.

당장 의대에 입학할 실력을 갖춘 학생은 굳이 의전원 입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특정 의대 간판을 따지는 등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보수적인 의료계를 고려하면 의전원의 매력은 한층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학전문대학원 현황. 표에 나온<br>​​​​​​​ 의전원 유지 대학 중 동국대, 제주대, 강원대도 의대로 전환할 예정이다. (사진=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현황. 표에 나온
의전원 유지 대학 중 동국대, 제주대, 강원대도 의대로 전환할 예정이다. (사진=경북대학교)

의대와 의전원의 불편한 동행은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고 막을 내렸다. 지난 2009년 구성된 '의·치의학교육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대학이 자율적으로 의전원과 의대 중 원하는 학제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그동안 의대 복귀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대학의 손을 들어준 결정이라 대부분 대학이 의전원 폐지 수순을 밟았다. 

지난 8월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의·치의학전문대학원 학제선택 현황'에 따르면 현재 의과대를 보유한 전국 40개 대학교 중 의전원 학제를 유지하는 대학은 강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제주대학교, 차의과대학교 총 5곳이다. 이 중 동국대는 2020년, 제주대는 2021년에 의전원을 없애고 의대로 전면 전환키로 했다. 강원대 역시 지난 3월 교육부에 의대로 전환하겠다고 학제 전환을 신청한 상태다. 참여정부가 예산 지원과 로스쿨 유치 등을 약속하며 한때 27곳에 이르는 대학이 의전원을 운영했으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대학은 건국대와 차의과대뿐이다.

의료계는 제도 도입에 실패한 이유를 "고찰 없이 졸속으로 시행한 정부의 탓"으로 본다. 의전원 도입은 일부 교수가 연구·검토하고 의료계가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 '무소통'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연세대 로스쿨 광복관 건물. (사진출처=연세대 로스쿨브로셔)

이와 반대로 로스쿨은 지난 2003년 대법원 주최 공개토론회를 시작으로 2006년 공청회까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제도를 가다듬었다.

의과대학 체제로 복귀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 둔 의전원과 달리 로스쿨은 '직진'을 택했고, 이는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옛말이 이번에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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