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19.09.16 05:00

변호사 유사직역 확대 안되면 지방 로스쿨부터 '빨간 불'

차의과학대학교.(사진=차 의과대학교 홍보동영상 캡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같은 의도로 생겨났다.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먼저 태어난 의전원은 사실 '임신' 시절부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참여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상당수의 의과대학들은 의전원 전환을 주저했다. 정부는 향후 로스쿨을 유치하는 데 참고한다는 유인책을 내세워 로스쿨 신설을 희망한 대학들이 사실상 강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그렇지만 대학들은 영리했다. 의대와 의전원을 ‘투 트랙(Two-Track)’으로 운영하면서 의전원에서 의대로 회귀할 수 있는 통로를 닫지 않았다.

교육계는 "의전원 체제는 이미 무너진 셈"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대부분 대학은 의전원에서 의대로 회귀했다. 현재 의전원 학제를 유지하는 곳은 5개 대학교 뿐이다. 더구나 의전원을 계속 운영한다는 뜻을 밝힌 곳은 건국대와 차의과대 2개뿐이다. 

반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완전히 정착했다. 신설되기 전부터 법학과를 폐지해야만 로스쿨을 설치할 수 있다는 '필수 조건'을 이행해야했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도록 퇴로가 끊긴 채 탄생했기에 사법시험 존치 노력에도 불구, 법조인 유일 양성기관으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현직 변호사들 피켓 시위.(사진=MBC 뉴스 캡처)

로스쿨이 도입되고나서 지난 10년 동안 매년 약 1500명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다. 변호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연히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2022년까지 변호사가 3만 명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반해 의전원은 학생 수를 보존하는 것도 힘겹다. 이미 의대 전환을 예상해 학사편입학으로 학생을 보충하고 있다. 지난 8일 교육부는 "의전원이 의대로 전환되면서 학사편입학은 올해 마지막으로 선발된다"고 밝혔다. 강원대의 의대 전환이 확정되는 2021학년에는 의전원 모집정원은 80여 명 정도로 2011학년에 1687명이었던 모집정원에 비해 학생 수가 약 95% 감소할 전망이다.

의전원의 한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졸업생 중 기초의학을 하려는 학생은 거의 없고 모두가 임상의학으로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 소속감이 강한 의대생과 달리 의전원 학생의 경우 대부분 수도권에서 학사 학위를 따고 입학하기 때문에 의사 면허증만 지방에서 따고 서울로 올라가 지역 의료인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며 "대학 입장에선 부작용이 심각해 의전원을 폐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잡은 로스쿨도 장밋빛 미래만을 그릴 순 없는 처지다.

한국보다 앞서 로스쿨을 실시한 일본을 보면 한국의 로스쿨에게 닥칠 미래를 어느정도 전망할 수 있다. 장기 경제침체 여파로  로스쿨 지원자는 도입 시기와 비교하면 현재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저하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다보니 지난해 로스쿨 지원자는 2004년의 10%인 8058명에 불과했다. 매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일본 로스쿨 변호사 오타신지(사진출처=YTN뉴스 캡처)
일본 로스쿨 변호사 오타신지(사진출처=YTN뉴스 캡처)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취직난이 심각한 수준인데다 심지어 경제적 결핍상태에 빠진 변호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장 변호사를 늘릴 수도 없다는 것이 일본의 고민이다. 이미 변호사의 위상 약화로 노키벤(軒弁:사무실을 같이 쓰지만 책상만 빌릴 뿐 월급을 받지 않고 독립채산제로 일하는 변호사)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서울지방변호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변호사 1명당 한 달 평균 사건수임 건수는 2011년 2.83건에서 1.2건으로 줄었다.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수임료도 전반적으로 하락한 상태다. 수임료가 낮아지면 예전과 같은 변호사의 직업적 인기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등 법조 유사직역도 변호사 고유 업무인 소송대리업무 진출을 모색 중이다. 더불어 변호사의 질적 차이도 심해지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확대될 전망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제2 국제이사인 서상윤 변호사는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수준 이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유사직역을 통폐합해 변호사제도로 일원화하고 변호사시험 자격화는 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출처=JTBC뉴스 캡처)
(사진출처=JTBC뉴스 캡처)

로스쿨의 양극화 역시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유명 로스쿨은 합격률이 높아 계속해서 지원자들이 몰린다. 일본 로스쿨의 경우 합격률 상위 7개 대학은 지원자가 많지만 나머지 대학은 학생 모집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지방 소재 로스쿨 간 합격률 격차가 커지고 있다. 서울대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80%를 넘겼지만 지방대 상당수는 20~30% 수준을 전전하고 있다.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시장 자체가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로스쿨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변호사 합격자 수를 늘리면 일본처럼 변호사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지원자 수가 줄어들면 오히려 로스쿨 존립 자체가 위기를 맞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면 의전원 제도는 사멸단계를 겪고 있다. 다만 차의전원·건대의전원은 틈새시장을 노리며 다양한 학부에서 전인적 지식 소양을 갖춘 인력을 뽑고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미 의전원 전환에 노력을 많이 들인 상황에서 오히려 차별성을 가져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국대 의전원 관계자는 "의전원 체제로 신입생을 선발한 지 15년이 됐고 학제 정리에도 14년이 걸렸다"며 "학제를 전환하고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학제 전환은 매우 신중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또 건대의전원도 학제전환도 검토했지만 다시 되돌리는 것도 많은 혼선을 일으키기 때문에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내부적으로 염려의 시각이 있지만 특수한 상황이 발생되지 않는 한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다"고 밝혔다. 

게다가 의전원은 강한 의대에 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의사가 꿈인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올해 초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인 동국대학교 전산원 졸업생이 의전원에 들어가면서 많은 학생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동국대 전산원 입학처는 "의대 학사편입은 2020년이면 의무 선발이 종료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전원에 진학하는 방법만 남는다"며 "앞으로 의전원으로 진학 가능한 곳은 건국대, 강원대, 차의과대만 남은 상태다"고 전했다.

공공보건의료대학원(사진출처=KBS뉴스 캡처)
공공보건의료대학원 부지(사진출처=KBS뉴스 캡처)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의전원 신설이 추진 중이다.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은 4년제 의전원 형태로 개설될 예정이다. 2018년 3월 폐교된 서남대학교 정원을 재배정받는다. 학비와 생활비가 무료인 대신 10년간 의료취약지 근무가 강제되는 형태의 공공의사를 배출하는 대학원이다.

이같은 의전원 신설에 의료계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고 실효성조차 의심된다"며 "의무복무의사에게 10년의 의무복무를 강제하는 등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개인 인격권이 침해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부에선 공공 의대 설립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 6년제 의대 학부 모집보다 교육 기간이 짧아 비용절감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학업 성적만이 아닌 공공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진 인재를 육성해 고질적인 의과대학의 학벌주의, 서열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보건복지부 입장이다. 모 의과대학 교수는 "미국의 경우 다양한 전공 출신의 의사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수능시험 점수 등에 연계된 '대학 서열주의'로 인해 의전원이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의료인을 양성하는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의 인재가 배출돼야 하는 만큼 의전원 학제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같은 의도로 태어난 두 전문대학원 형제는 현재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도입 당시 좋은 취지와는 무색하게 특성화와 다양성은 잊힌 지 오래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사진=서울대 홍보책자 캡처)

되돌아보면 형제는 용감했지만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형은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이라는 카드로 명맥을 이어갈 기회를 맞았다고 하지만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아우는 탄생 10주년을 맞으며 문과에선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변호사 수준 문제, 로스쿨 양극화, SKY(서울대·고려대·연대)캐슬 논란에 부딪혀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

의대 체제로 사실상 되돌아간 형이 그간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의료인의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동생의 경우 스펙관리 열풍 조장과 부유층 자제를 위한 전당이라는 '악평'에서 벗어나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도록 장학금을 확대하고 입학전형과정도 혁신해 로스쿨 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을지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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