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3 16:40
오늘날 안양시의 이름은 이곳에 있는 유서 깊은 절 안양사에서 나왔다. 눈 내린 안양사의 관내에 있는 거대 미륵불상이다. <사진=안양시청 홈페이지>

서울로 진입하는 중요한 목에 있는 곳이 안양이다. 동쪽에 과천과 의왕이 있고, 서쪽으로는 시흥과 붙어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즐문토기 등 신석기 유물로 볼 때 그렇다. 조금 높은 산과 낮은 구릉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양천 등 다수의 물길이 지나가는 평원 지역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이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던 듯하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상서면(上西面)과 하서면(下西面)의 두 면을 합치면서 서이면(西二面)으로 불렸다가, 1941년에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왜 당시 그런 이름을 얻었는가에 관해서는 이곳에 있는 유서 깊은 절 안양사(安養寺)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양사는 조선왕조실록에 일찌감치 등장한다. 특히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들렀던 기록이 나온다. 이로 볼 때 안양사의 역사는 꽤 유장함을 알 수 있다. 절에 그런 이름, 즉 安養(안양)이 붙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安養(안양)은 불교 용어로서는 극락(極樂)을 뜻한다.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시켜(安心) 제 몸을 편안하게 돌볼 수(養身) 있어, 법을 들으며(聞法) 도를 닦을 수(修道)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 한자를 붙여 세우면 ‘安心養身, 聞法修道(안심양신, 문법수도)’다. 불교가 이상으로 그리는 곳의 개념이다.

安(안)이라는 한자는 유심히 들여다보면 의미가 직접적으로 와 닿는 글자다. ‘집’을 뜻하는 부수 갓머리 ‘宀’ 안에 여인을 뜻하는 ‘女(여)’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꼴이다. 집 안에 있는 여인, 아마 평안하고 따뜻한 스위트홈(sweet home)을 가리키는 글자일 것이다. 여성이 집 안에 머물고 있음은 평안과 평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자는 ‘편안함’이라는 대표 새김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우선 떠오르는 단어가 안전(安全)이다. 위협적인 요소가 없어(安)서 어느 것이라도 잃지 않는(全 모두, 온전하다) 상태다. 평안(平安)도 마찬가지다. 평안하시냐, 아니면 어디가 편찮으시냐를 물을 때 등장하는 안부(安否)라는 말도 있다. 요즘은 우리가 “안부를 묻다” 식의 인사 용어로 자주 쓴다. 평안하며 건강한 상태를 뜻하는 게 안강(安康)이다.

평안해서 흔들림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안정(安定)이다. 상황이 요동치지 않으며 평화롭게 이어지는 모습이다. ‘어디에 잘 놓아두다’라는 뜻도 있다. 이 경우에 등장하는 단어가 안치(安置)다. 돌아가신 분을 묫자리 등에 잘 모시는 일이 안장(安葬)이다. TV 등을 정해진 곳에 잘 설치하는 일은 안장(安裝)이라고 적는다. 경찰이 범죄의 요인들을 잘 제거해 사회가 평안해지도록 하는 일은 치안(治安)이다.

사람들의 소망이 몰리는 글자가 바로 이 安(안)이다. 평화와 안정, 번영까지 다 품은 뜻이니 그렇다. 그래서 숙어나 성어도 많다. 안신입명(安身立命)이 우선이다. 몸을 편안하게 기댈 곳이 있고, 정신적으로 의탁할 곳이 있는 경우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도 적는다.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이 편안하면 그게 바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이다.

한반도에 비해 전란이 잦았던 중국에서는 안전한 상태에서도 그 다음을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거안사위(居安思危)다. 평안(安)한 시절이나 장소에 머물더라도(居) 늘 위험(危)을 생각하라(思)는 말이다. 그 다음 말도 이어진다. 사즉유비(思則有備)인데, 그렇게 평안한 곳에서도 위기를 생각(思)한다면 곧(則) 준비를 할 수 있다(有備)는 말이다.

그 다음 말이 우리에게는 매우 유명하다. 바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그렇게 해서 준비함(備)이 있으면(有) 걱정거리(患)가 없어진다(無)는 것이다. 평화로운 시절에 미리 닥칠 여러 위협적인 요소에 대비를 잘 하면 커다란 화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때 정치적인 구호로도 이 ‘有備無患(유비무환)’은 아주 많이 쓰였다.

安養(안양)의 다음 글자 養(양)은 기르거나 돌본다의 뜻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가 바로 양로(養老)다. 나이 드신 노인네들을 잘 돌보는 행위다. 그런 노인네를 모시는 곳이 바로 양로원(養老院)이고 동네나 아파트 등에 노인들을 머물 수 있도록 만든 곳이 양로당(養老堂)이다. 무엇인가를 정성들여 가꾸거나 기르면 양성(養成)이다.

그러나 제 몸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고른 음식물 섭취와 꾸준한 건강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 양생(養生)이다. 그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양 고전에는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는 그를 가리켜 양생술(養生術)이라고 적는다. 혹은 그를 조금 더 높은 차원의 방법으로 이야기할 때는 양생지도(養生之道)라고 한다. 쉬면서 자신을 돌보는 일이 휴양(休養), 음식물에 든 좋은 성분을 말할 때는 영양(營養)이다. 영양을 품고 있는 요소를 영양분(營養分)이라고 한다.

중국의 외교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자주 내세운다. 빛(光)을 감추고(韜), 어둠(晦)을 키우라(養)고 풀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빛이라는 것은 자신이 드러낼 수 있는 장점에 해당한다. 가능한 한 그런 장점은 상대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라는 게 韜光(도광)이다. 그 다음의 養晦(양회)는 자신의 단점에 해당하는 어두운 곳, 또는 어둠이라는 뜻의 晦(회)를 잘 돌보면서 보완하라는 뜻이다.

어두운 곳에서 눈을 내밀어 상대를 살피는 중국 사람들의 시선이 잘 읽힌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좀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다. 살벌한 전쟁이 많았던 곳이라서 그런 문화적 바탕을 키웠으리라 보인다. 그런 것은 전략(戰略)의 시선이다. 다른 말로 모략(謀略)이자, 책략(策略)이기도 하다. 단순하지 않으면서 뭔가 복잡한 속내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저러나 安養(안양)은 사람들이 편히 쉬며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주 좋다. 더할 나위가 없어서 극락세계(極樂世界)를 다른 말로 안양세계(安養世界)라고 적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으면서, 또는 서로에 의지하면서 오순도순 사는 세상을 만든다면 그 땅이 바로 천당(天堂)이요 파라다이스(paradise) 아니겠는가.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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