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정은 기자
  • 입력 2019.10.05 07:10

[뉴스웍스=이정은 기자] 지난 1일 서울시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사 앞에서 DLS, DLF 손실 사태를 규탄하는 피해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억대 금액의 투자금을 날린 피해자들은 쌈짓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 듯 오열했다. 자칫하면 큰 손실을 낳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은행의 설명 부족과 피해자를 위한 법적 보호망이 없는 실태가 낳은 '비극'이었다. 

은행권의 소비자 보호 실패는 10여년 전에도 있었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닥쳐온 ‘키코’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판매된 키코(KIKO) 상품은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특정 범위에 들어가야만 이익을 볼 수 있고, 범위를 넘어서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고, 결국 키코 투자자들은 총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큰 손실을 입었다.

이에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돼 해당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한 은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대법원은 “키코는 불공정거래에 해당하지 않는 ‘정상 판매’된 상품이다”라고 판결했다. 이번 DLF 사태를 키코 사태와 비교하면 주요 피해자가 기업에서 개인으로 바뀐 것 뿐이라는 자조적인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묻히나 했던 키코 사태가 지난해 5월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부임하고 ‘키코 사태 재조사’를 선언하며 재부상되는 듯 했다. 금감원은 그가 부임한 바로 다음달인 6월, 키코 사태 재조사 및 몇몇 회사가 은행을 상대로 낸 키코 관련 분쟁조정을 시작했다. 조사 결과 금감원은 키코를 판매한 은행 쪽에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금감원은 해당 조정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해 몇몇 회사에 피해 보상을 하게 되면, 다른 키코 피해 기업에서도 줄줄이 보상을 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감사 역할에는 충실했지만 문제를 개선하진 못했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금감원은 29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미스터리 쇼핑(암행 감찰)’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하나은행은 최저 수준인 ‘저조’ 우리은행은 그 윗 단계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이들 금융사들은 금융상품 판매 시 고령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하지만 금감원은 해당 금융사들에게 통보, 정정 요구 등의 소극적 해결방식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실제 금융사들의 개선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섰다면 이번 손실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감독 당국에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시민단체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피해자를 위한 소송 등을 펼치며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금융소비자원은 DLS, DLF 사태 피해자들을 대리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및 관계자들을 상대로 지난 9월 25일 민사, 10월 1일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키코사태, 동양사태, 저축은행 사태 등 지금까지 여러 금융 사고가 있었지만, 정부 및 금융 당국은 조사만 해놓고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적어도 조사한 내용은 공개해야 피해자들이 소송 등을 진행할 텐데, 정보가 적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가 없어 피해를 입어도 대책이 없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나마도 순탄치 않은 모양이다. 조 원장은 “예전 동양사태 때 피해자들을 대리해 법무법인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려고 서초동을 찾았더니, 변호사들 사이에서 ‘어떤 이상한 단체서 찾아와 소송하자고 하더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3년 일어난 동양그룹 부도사태 및 금융피해자 발생 건에 대해서도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했는데, 이 일과 관련해 5년 넘게 ‘목적이 무엇이냐’는 식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이러한 소송으로 모종의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지난 9월 24일 열린 DLF 피해 사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 이후로는 웬만하면 이런 소비자소송을 안 맡으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지속적으로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금융 감독기관의 역할은 아직도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4일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출시했을 때 내부 심의를 받는 비율이 1%도 되지 않았다”며 “금융 당국이 감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은행권의 DLF 상황 전반을 검토 중이고 지난 1일 중간결과를 발표했다"며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9윌 부임한 은 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성공할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은 위원장이 과연 '가재는 게 편'이란 속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배짱, 지혜를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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