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10.09 04:25
일제강점기때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담겨져 있는 건축양식의 안내소 건물. (사진= 원성훈 기자)
일제강점기때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담겨져 있는 건축양식의 안내소 건물.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 장소로 널리 알려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 역사와 예술을 함께 담은 곳으로 재탄생했다. 삼례문화예술촌이 그 곳이다.

맑고 푸른하늘만큼이나 상큼했던 지난 9월 29일, 예술의 본향 삼례를 방문했다.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서 문화·예술로 다시 피어나 초현대적 디지털아트까지 동시에 느끼도록 새롭게 조성된 '삼례'에서의 하루는 멋스러웠다.

일제강점기때 양곡창고에서 시작해 이후 <b>농협</b>창고로 쓰이다가 모모미술관으로 개장했다. 굴곡진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녹슨 함석문이 아픈 역사의 기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사진= 원성훈 기자)
일제강점기때 양곡창고에서 시작해 이후 농협창고로 쓰이다가 모모미술관으로 개장했다. 굴곡진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녹슨 함석문이 아픈 역사의 기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사진=원성훈 기자)

◆ 양곡수탈의 중심지에서 예술촌으로

삼례는 만경강 상류에 위치해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만경평야의 일원을 이루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수탈의 중심지였다.

삼례양곡창고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설립한 이엽사농장 창고로 추정된다. 완주지방의 식민 농업 회사인 전북농장, 조선농장, 공축농원과 함께 수탈의 전위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1914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삼례역 철도를 이용해 군산으로 양곡을 이출하는 기지역할을 담당했으며 이와 더불어 군산 일대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만조시에 삼례 비비정마을까지 바닷물이 유입돼 들어오면 선박으로도 양곡을 수탈했다고 전해진다.

삼례 양곡창고는 1920년대 신축돼 2010년까지 양곡창고로 사용되다가 2013년 6월 5일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담은 삼례 문화예술촌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도착하자마자, 가로 축이 다소 긴 격자 무늬의 고동색 벽체와 중간에 유리창을 낸 일본풍의 안내소 건물이 눈길을 끈다. 바로 그 옆에 위치한 모모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중 양곡창고로 쓰였는데, 목재가 기본구조인 이 건물이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랜 세월동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목재를 감싼 함석 덕택이었다고 한다. 함석은 온몸으로 비바람을 막아내느라 붉게 녹슬었지만, 그 덕택에 내부의 목재는 썩지 않고 100여년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양곡창고 속의 양곡이 변질되지 않도록 천정고를 높게 하고, 공기가 잘 통할수 있도록 천정에 환기구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면서도 햇볕이 잘 들수 있도록 한 기묘한 기법이 도입됐다. 현재는 주로 갤러리의 기능으로 사용하므로 환기구를 막아놨다고 한다. (사진= 원성훈 기자)
양곡창고 속의 양곡이 변질되지 않도록 천정고를 높게 하고, 공기가 잘 통할수 있도록 천정에 환기구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면서도 햇볕이 잘 들수 있도록 한 기묘한 기법이 도입됐다. 현재는 주로 갤러리의 기능으로 사용하므로 환기구를 막아놨다고 한다. (사진= 원성훈 기자)

모모미술관 내부는 이제는 각종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금속레일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이동식 벽체가 있고 그 벽면에 예술작품을 걸어서 전시한다.

특이한 것은 건물 내부의 구조다. 양곡 저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기둥을 사용하지 않는 건물 구조가 필요했고, 따라서 지붕을 삼각형과 역삼각형으로 구성해 하중을 분산시키도록 설계했다. 또한, 양곡이 변질되지 않도록 천정고를 높게 하고, 공기가 잘 통할수 있도록 천정에 환기구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면서도 햇볕이 잘 들수 있도록 한 기묘한 기법이 도입됐다. 지금도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이 곳을 견학장소로 삼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과학적 설계 때문이라고 해설사는 귀뜸해줬다.

◆ 문화 카페 '뜨레'…시간 멈춘 것 같은 예술문화의 공간

모모미술관을 나서서 '뜨레'라는 이름의 문화 카페로 들어서자 마자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띈다. 천정은 모모미술관과 마찬가지 구조인데 이 곳의 입구쪽은 그랜드 피아노를 위시해 커피 로스팅 기계들을 전시해놓았다. 나머지 공간은 여유있는 카페 공간으로 세팅해놨다.

진한 커피향이 오래된 목조건물 특유의 향기와 어우러져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페의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돼있고 그 바로 바깥에는 연못을 조성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연못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멈춰진 시간속에서 예술 문화의 공간 속에 머물고 있는 예술가가 된듯한 착각속에 빠져든다.

◆ 삼례 책마을, '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

책공방 북아트센터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인쇄기였던 활판인쇄기를 비롯해 제단기 등이 전시돼있고 '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는 글귀가 크게 씌여져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책공방 북아트센터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인쇄기였던 활판인쇄기를 비롯해 제단기 등이 전시돼있고 '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는 글귀가 크게 씌여져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이곳 역시 건물의 외관은 일제강점기 양곡창고의 모습 그대로이다. 내부는 고서점과 북카페로 이뤄진 북하우스를 중심으로 한국학 아카이브, 전시와 강연시설을 갖춘 북갤러리 등의 시설을 갖춰놨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인쇄기였던 활판인쇄기를 비롯해 제단기 등이 전시돼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 곳에 크게 씌여져 있는 '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는 글귀가 마음을 숙연케 한다. 한때 신문과 잡지를 만들어 내는데 실제로 사용됐던 골동품에 가까운 기계장치들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비교적 짧은 시기동안 눈부시게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이곳에선 이미 지나가버린 70~80년대 산업화 시절의 향수에 젖어드는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디지털아트관, VR 동작인식 기술 체험의 즐거움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되는 환상적인 꽃과 나비는 마치 무릉도원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끔 한다. (사진= 원성훈 기자)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되는 환상적인 꽃과 나비는 마치 무릉도원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끔 한다. (사진= 원성훈 기자)

예술작품으로 이뤄진 상상 속 세상을 가상공간으로 구현하는 예술과 과학, 상상과 감성, 교육이 결합된 체험형 영상관이다.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되는 환상적인 꽃과 나비속에서 무릉도원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VR(가상현실)로 구현된 청룡열차 체험은 가상현실 기술수준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두 명이 함께 모니터 화면위에 손을 동시에 얹어 화면속에 붉은 빛의 점으로 표시되는 점으로서 서로의 기(氣)의 세기를 겨뤄보는 체험 코너 등을 통해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곳에선 생생한 입체로 구현되는 디지털 영상 기술발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 삼례 성당,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네

삼례문화예술촌과 삼례성당 간의 경계 부분에는 대추나무가 무성하고 바로 그곳에서 담장이 없는 삼례성당을 향해 진입할 수 있게 해놨다. 삼례성당의 모습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사진= 원성훈 기자)
삼례문화예술촌과 삼례성당 간의 경계 부분에는 대추나무가 무성하고 바로 그 곳에서 담장이 없는 삼례성당을 향해 진입할 수 있게 해놨다. 삼례성당의 모습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사진= 원성훈 기자)

삼례문화예술촌과 삼례성당 간의 경계에는 담장이 없다. 담장이 있어야할 그 자리에는 대추나무가 무성할 뿐이다. 담장 대신에 삼례읍 측에서 멋진 조형물을 만들어, 삼례성당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준 성당 측에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삼례문화예술촌과 삼례성당 사이에 있는 대추나무에는 분명 '사랑'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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