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10.08 15:58

지성우 교수 "선거법 개정안에 각 정당의 '비례대표 선출 방식' 규정 전무"
"다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주권주의·직접 선거·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나"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 (사진제공= 박완수 의원실)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 (사진제공= 박완수 의원실)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지난 4월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 헌법학회 부회장)에게 의뢰해 받은 연구용역 자료를 8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주의 원칙·직접 선거 원칙 및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독일 만하임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딴 지성우 교수는 이번 선거제 개정안의 모델로 꼽히는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예로 들며 현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었다. 아래는 지성우 교수가 지적한 주요 내용이다.

선거법 개정안국민주권주의 원칙에 위배

지 교수는 "국민주권주의 원칙대로라면 국민 모두가 주권적 의사를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되는 사람 즉,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과 국민주권주의 원칙은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는 현재의 선거제도 보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28석 증가하여 총 의석수의 1/4이나 비례대표로 선출하게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를 어떤 방식으로 선출하는 지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미 국민들은 현행 47석의 비례대표 선출에 대해서도 후보자 선정에 있어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것에 이미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며 "바로 이 부분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국민주권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독일, 주별로 정당 명부 입후보에 관한 기준 상세히 규정

지 교수는 "이번 선거법 개정안으로 인해 비례대표 의석이 28석 늘어남에도 선거법 개정안에는 각 정당이 비례대표를 어떤 방식으로 선출해야 하는지 전혀 규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지 교수는 또 "우리나라 정당의 당헌·당규에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에 대한 규정이 없고 전적으로 해당 정당에 위임하고 있다"며 "이런 깜깜이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선 주권자의 투표가 왜곡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선 주(州)별로 정당 명부 입후보에 관한 기준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고 당원 총회 또는 전체 대의원회의에서 비밀투표로 선출된 자만 비례대표 의원 후보자로 지명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후보자 명부와 함께 장소, 시간, 참석 당원 수를 포함한 의사록 사본도 제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석 고정은 평등선거 원칙 위배"

지 교수는 이어 "이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지역구 의석(225석)과 비례대표 의석(75석)을 고정해 놓은 것이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더해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선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의석수에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개정안은 이를 인위적으로 고정해 보정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계속해서 그는 "반면, 독일의 경우 평등선거 원칙을 지키기 위해 2013년 선거법을 개정해 의석수 보정작업을 거칠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실제 독일 연방의회의 의원 정수는 598명이지만 2017년 선거에선 보정작업으로 111석이 추가돼 709석이 최종 확정됐다.

지 교수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연동형이란 단어가 한국 정치권에서 마치 신성한 것으로 오인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다"며 "선진국의 하나인 '독일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독일식'도 '연동형'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가운데, 박완수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안이 이미 2015년 2월 24일에 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했던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에 나와 있다"면서 "더욱이 이번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의 내용이 2015년 선관위의 개정의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선관위 개정의견이 국회에 제출되고 난 이후인 2016년 5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다른 사건의 판결문에서 비례대표제도에 대해 "비례대표제가 국민의 진정한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중략) 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 선정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의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비례대표제는 정치현실에서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경우 오히려 국민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하고 정당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등 역기능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의 위헌소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선관위 차원에서 선거법 개정안의 위헌 소지가 있으니 보완책 마련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선거법 개정 자체의 전면 재검토하라는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채 선거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는 얘기다.

이에 박 의원은 "이번 선거법 개정안은 우리 헌법이 지키고자 하는 국민주권주의 원칙, 직접선거 원칙,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학계의 의견이 있는 만큼, 향후 본회의 과정에서 이 문제가 충분히 논의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또한, "선관위는 2015년 선거법 개정의견과 2016년 헌재판결문을 통해 위헌소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텐데도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행여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선관위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위헌 소지가 다분한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한국당을 포함하는 여·야 모두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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