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07 14:58
웬만한 사람들은 다 선망하는 오토바이 명품 두가티. 우리 주변에는 명품으로 자신의 스펙을 감싸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제 고성능 오토바이 듀카티를 타고 철가방에게 추월당하는 기분은 어떨까? 포르쉐를 몰고 기분 내다 현대 벨로스터에게 발린 사람의 심정은?

이렇게 자기의 운용능력보다 더 강한 성능을 갖춰야 안심하며 심지어는 궁극의 스펙을 위해 은행 대출창구의 문을 두드리는 친구들을 ‘오버스펙 마니아’라고 한다. 주변에 친한 몇 명이 그런 부류이다. 히말라야를 등반할 가능성은 고사하고 겨울 설악산에도 갈 것 같지도 않은데 마련하고 있는 캠핑장비나 패딩으로 보면 이미 에베레스트를 공략중이다.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오버스펙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 스쿠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슬슬 토해낸다. 비슷해 보이지만 속도와 기능이 다른 스쿠터 2대가 더 있다고 한다. 깜짝 놀라는 척하며 “만세를 부르면서 타는 진정한 남자의 로망인 할리”에 대해 운을 떼니 이미 구입했다고 바로 이실직고를 한다.

‘아이고, 두야!’ 여기서 물러날 수 없어서 역시 바이크는 스피드의 추구일진대, 너답지 않게 할리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다음 단계인 이탈리아제 고성능 바이크 듀카티가 등장한다. 이러다가는 복장으로 화제를 돌리고 튜닝으로 넘어가면 또 끝없이 광활한 남자만의 로망이 아로 새겨진 세계가 펼쳐진다. 친구와 헤어지고 오는 길에 말은 언제 살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은근히 승마만이 갖는 거부할 수 없는 로망을 부추길 예정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부자는 아니다. 그저 집에서는 직장이 때마다 보너스를 듬뿍 듬뿍 주지 않는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친구가 예전에 꽤나 멀었던 집과 직장 사이를 자전거로 다녔던 사실을 기억한다. 당시에 그는 자전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제는 그 거리를 스쿠터 베스파로 오간다. 만약 승마에 빠진다면 출근은…?

취미로 즐기기 위한 장비를 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급이 나뉜다. 표준장비, 명품 그리고 프로 장비가 그것이다. 초보 장비는? 말을 아끼고 싶다.

취미로 즐기기 적당한 표준 장비란 어딘가에 족보를 올리면서 모두의 동의를 얻을만한 기본을 말한다. ‘표준’이란 ‘측은’해하며 ‘동정’하거나 “나중에 서서히 올리지요!”라고 위로받으며 깍두기 노릇하는 불쌍한 초보가 아니다. 바로 동등하게 봐주겠다는 의미이다. 이 단계는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통용되는 단계로서 가진 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하수와 고수가 갈린다.

다음은 확실하게 명품을 장만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이다. 없을 때야 붓을 가리지 않지만 있을 때 명필은 붓을 더 잘 고를 뿐 아니라 최고품이 갖는 품격과 가능성을 낱낱이 가려낸다. 혹 고수가 표준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취미의 세계마다 운용은 어렵지만, 잘 이용하면 천상의 효과를 낸다는 전설의 명기들이 표준에 많다. 일전에 무술 합계 30단쯤 하시는 분께 어느 무술이 가장 강한가를 물은 적이 있다. 빙그레 웃으며 “가장 강한 무술은 없고 가장 강한 무술가는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최고는 기기가 아니라 터득한 고수이기에 운용의 묘가 생명이고 바로 자기완성이다.

마지막은 프로장비이다. 조금 짜증나는 분야인데, 민생용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프로장비는 허접해 보인다. 튼튼하지만 디자인부터 투박하고 무겁고 전천후로 확실한 작동을 위해 질적인 측면을 희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소니(Sony)처럼 민생용 표준과 다른 케이블이나 필터 그리고 단자를 사용하는 제품은 호환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마치 F1머신의 좌석이나 경주차 실내는 좋은 스포츠카 실내나 좌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좁고 불편하듯 프로용 기기는 성능 외엔 취미에서 즐거움을 배려하지 않는다.

오버스펙 마니아는 표준장비를 뛰어넘어 명품의 단계로 시작하는 초보를 말한다. 한 마디로 타조 흉내 내려다 가랑이 찢어진 참새들이다. 보통의 명품은 아날로그적인 측면이 많아 세팅을 많이 탄다. 슈퍼마켓용 모닝 같은 차에 7단 팁트로닉에 질소부스터를 달 필요가 없지만 드래그나 랠리를 위해서는 절적한 기어변속과 부스팅은 필요하다.

똑딱이와 달리 DSLR카메라는 화이트밸런스나 감도, 노출을 세팅해줘야 ‘똑딱이 정도’ 사진이 나온다. 좋은 오디오일수록 케이블과 전원극성, 수평 및 진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세팅의 차이가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초보가 세팅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고급 장비를 사용하면 적절히 조작도 못하고 스피드감에 익숙하지 못해 듀카티로 철가방에 따이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수 천 만원 투자한 오디오에서 ‘라디오 소리’가 나오는 결과가 생긴다. 문제는 이런 명품은 조금 세팅한다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문제 하나를 잡으면 다른 부분 때문에 밸런스에 문제가 생긴다. 하나하나 잡아나가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지치고, 장비 빨이 동호회에 올린 사진 빨로 끝나면 결국 방출된다. 그래서 오버스펙 마니아에 ‘바꿈질 왕’이 많다.

그러나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면 비록 닭은 남아나지 않겠지만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 떨리게 즐겼기기에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들에게 최적을 조언해주고 중용(中庸)으로 충고해도 이들은 자기 꿈의 최고에 이르고 싶어 한다. 낮은 스피드에도 부르르 떨고, 조그마한 소리의 변화에도 한밤중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전화하고, 조금 밸런스 잡힌 사진이 나오면 현상해서 친구들에게 돌리지 못해 안달한다.

공자의 제자 중 자유(子遊)도 오버스펙마니아였던 것 같다. “공자께서 무성(武城)에 가서 현악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다.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割鷄焉用牛刀)?’고 하였다. 자유가 대답하기를 ‘전에 제가 선생님께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아끼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하니, 공자는 ‘애들아, 언(偃)이 말이 맞다. 내가 먼저 한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다.”라고 한다.

친구 중에 혹시 오버스펙 마니아가 있다면 공자를 벤치마킹해서 이전의 핀잔은 농담이었다고 사과해보라. 친구는 마음을 열고 자기가 느꼈던 성공과 실패의 즐거움을 생생히 드러낼 것이고 이로서 우리를 즐거움도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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