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명수 기자
  • 입력 2019.10.15 18:05
독일 도이체방크 본사 전경.(사진=도이체방크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박명수 기자]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중국에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저질렀던 불법 로비 행위들이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상세히 드러났다. 도이체방크의 ’관리 대상’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 일가, 류윈산(劉雲山)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국영기업 고위 임원 등이 다수 포함됐다.

NYT는 14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을 통해 도이체방크의 중국 시장 진출 과정을 보여주는 15년 간의 자료를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내부조사 보고서와 이메일, 고위 임원 인터뷰 등으로 구성된 자료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지난 2000년 후발 주자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가족과 친척을 100명 넘게 고용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성실하거나 업무 능력이 부족했지만 도이체방크가 원했던 것은 고위층과의 인맥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공산당 선전부장이었던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또 이 은행은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근무하던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딸을 스카우트했고, 2006년에는 아예 채용추천제를 도입해 원자바오 전 총리의 사위와 며느리 등이 추천한 인사를 고용했다.

이들은 은행 매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난 2017년 도이체방크가 고용한 외부 변호사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고용된 중국 고위층 친척 중 19명이 2006년 중국 국영은행 기업공개(IPO) 수주 등과 관련해 1억8900만 달러(약 224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또 도이체방크는 2003∼2008년 중국 고위층과 가족, 친지들에게 20만 달러(약 2억3000만원) 이상의 선물과 향응도 함께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세프 애커만 당시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호랑이 띠인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크리스털 호랑이상 등 1만8000 달러(약 2100만원) 상당의 선물을 건넸고,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도 당시 도이체방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중국의 한 개국공신의 아들인 국영은행 고위 관계자에게는 그가 태어난 연도와 같은 1945년산 샤토 라피트 로칠트 와인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 와인은 4254 달러(약 504만원)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다.

NYT는 또 도이체방크가 원자바오 전 총리 일가와 손을 잡고 여러 차례 현지사업 수주를 시도했으며, 원 전 총리의 아들에게 미 라스베가스 등 해외여행 기회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NYT는 이번에 드러난 로비 행각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도이체방크는 지난 8월 중국과 러시아에서 부패한 수단을 사용해 사업을 진행했다는 의혹으로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를 받았으며 1600만 달러(약 190억원)의 과징금을 내는 선에서 SEC와 합의했다.

애커만 전 CEO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건 그 나라에선 사업 활동의 일부였다. 당시엔 그게 일을 하는 방법이었다"면서 "(중국은) 관계의 나라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길렀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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