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7 15:58
서양 서커스에 자주 등장하는 어릿광대의 인형 모습. 우스개를 위해 혀를 놀리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람과 세상을 희롱하는 역할자가 광대다.

요즘 이 희롱(戱弄)이라는 말 자주 등장한다. 앞에 ‘성(性)’이 붙은 상태에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다 등장한다.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현상이다. 주로 계급이 높거나 권력이 있는 남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에게 성적인 언어나 행위로 모욕감을 주는 행위다. 심한 경우에는 몸짓으로 직접 성행위에 준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여성에게 피해를 입힌다. 희롱은 그 중의 한 행위다. 재미 삼아(戱) 상대를 가지고 노는(弄) 일이다.

이 글자 弄의 대표적인 새김은 따라서 ‘희롱하다’다. 단어 앞에 놓일 때는 ‘농’, 뒤에 올 때는 ‘롱’으로 발음한다. 앞에 놓일 때의 대표적인 단어가 농담(弄談)이고, 뒤에 놓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어가 조롱(嘲弄)이다. 농담의 뜻은 모를 사람이 없다. 우스개로 건네는 말이다. 조롱도 마찬가지다. 남을 비웃으며 놀리는 일이다.

우롱(愚弄)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남을 어리석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일, 또는 남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다. 대상을 즐기면서 노는 일이 완농(玩弄)이다. 玩은 ‘즐기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희롱’의 뜻에 가깝다. 사전은 ‘장난감이나 놀림감처럼 희롱함’으로 풀었다.

매롱(賣弄)이라는 단어도 있다. 뇌물 등을 받고 권리를 파는 행위다. 마치 남의 약을 올릴 때 쓰는 “매롱~”과 분위기가 닮아 있는 단어다. 아예 남을 속이면서 장난치는 행위는 기롱(欺弄)이다. “남을 기롱하다”는 식으로 썼던 단어다.

재롱(才弄)은 그에 비해 중립적이다. ‘어린아이의 재미있는 말과 귀여운 행동’이다. 그런 재롱이 많은 신하가 농신(弄臣)이다. 임금 옆에서 재주를 부려 환심을 사는 신하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해박한 지식으로 황제를 즐겁게 했던 동방삭(東方朔)이 대표적이다.

‘희롱하다’의 새김 말고 이 글자의 또 다른 대표적 뜻은 영어로 do다. ‘~을(를) 하다’의 의미다. 우리가 아주 흔히 쓰는 말이 농간(弄奸)이다. ‘간사(奸邪)한 짓을 하다’는 의미다. “농간을 부리다” 식으로 쓴다. 권력을 가지고 노는 일은 농권(弄權)이다. 제가 지닌 힘을 방자하게 사용하는 경우다.

‘감상하다’, 또는 ‘대상을 즐기며 놀다’라는 뜻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음풍농월(吟風弄月)이다. 바람을 읊으며 달을 즐긴다는 뜻이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노는 행위다. 간혹 ‘거저 놀기만 하는 일’ 정도로 쓰일 때도 있다. 무문농필(舞文弄筆)도 가끔 사용하는 성어다. 문장과 붓을 함부로 놀리는 짓이다.

비슷한 쓰임이어서 弄이 들어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드는 단어가 농락(籠絡)이다. “국민을 농락하다” 등으로 쓸 때 등장하는 단어다. 籠은 대나무로 만든 그릇, 絡은 그물 종류의 물건이다.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좋은 물건이다. 국어사전에는 ‘새집과 고삐’로 풀었다. 따라서 단어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씌워서 데리고 놀리거나 멋대로 이용함’의 뜻이다.

현대 한국어에서의 쓰임은 거의 없지만 옛 한문에 자주 등장했던 말이 농장(弄璋)과 농와(弄瓦)다. 璋은 ‘옥구슬’이고, 瓦는 ‘기와’의 새김이 우선이나 여기서는 질그릇으로 만든 ‘실패’다. 아들 낳으면 옥구슬 줘서 놀게 했고, 딸을 낳으면 실패를 주고 놀게 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弄璋은 아들 낳은 경우, 弄瓦는 딸 얻은 사람을 일컬었다.

아들에게 옥구슬을 줬던 의미는 옥처럼 고결하게 커서 높은 지위에 오르라는 뜻이었다고 하는데, 딸에게 쥐어줬다는 실패가 영 마음에 걸린다. 남성을 높이, 여성을 낮춰 보는 시선이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 전통이 아직 남아 우리사회에 성희롱이 잦을까. 씁쓸하게 이어지는 弄의 행렬이다.

 

<한자 풀이>

戱(희롱할 희): 희롱하다. 놀다, 놀이. 연극.

嘲(비웃을 조): 비웃다, 조롱하다. 지저귀다.

籠(대바구니 롱, 농):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또는 그릇. 새장.

絡(이을 락, 낙/ 얽을 락, 낙): 잇다, 두르다, 얽다, 얽히다, 묶다.

璋(홀 장): 홀(笏), 구슬.

 

<중국어&성어>

弄假成真(眞) nòng jiǎ chéng zhēn: 처음에는 가짜로 했는데 결국 진짜로 이어진 상황. 가볍게 건드렸다가 일이 진짜 벌이지는 경우. 자주 사용하는 성어다.

班门(門)弄斧 bān mén nòng fǔ: 춘추시대 전설적인 목수(木手)였던 ‘노반(魯班)의 문 앞에서 도끼질하다(弄斧)’는 뜻이다. 고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경우.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는 식이다. 아주 자주 쓴다.

弄巧成拙 nòng qiǎo chéng zhuō: 멋있게(巧) 해보려다(弄) 거꾸로 열악한 결과(拙)로 나타남(成). 잔꾀 등을 부려 멋지게 장식했으나 결과는 그 반대로 나오는 경우다.

弄璋之喜 nòng zhāng zhī xǐ: 아들을 낳은 기쁨.

弄瓦之喜 nòng wǎ zhī xǐ: 딸을 낳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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