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3.08 11:05

 

멱살국회, 의장석 점거, 그리고 난투극 등이 이제는 꽤나 먼 과거의 일이 됐다. 지난 19대만큼 ‘신사적인’ 국회는 우리 역사상 없었다. 192시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라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기도 했고, 양당 대표간의 협상과 회동도 끊임없이 있었다. 이처럼 폭력 대신 대화와 토론이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국회선진화법’의 성과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법안의 통과율은 12.5%를 기록해 역대 가장 낮은 성적표를 보여줬고, 자동 폐기법안만 모두 1만여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500일이 넘게 국회를 떠도는 서비스산업발전법, 정부·여당이 국정 과제로 추진하는 노동개혁 4대입법, 그리고 각종 경제 활성화 관련 쟁점법안도 모두 자동 폐기 위기에 놓여 있다. 이른바 ‘식물국회’가 우려된다던 국회선진화법 반대론자들의 예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국회선진화법은 끊임없이 위헌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다수결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국회법은 위헌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만큼 신속하고 강도 높은 개혁이 요구 돼, 국회법이 걸림돌이 된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19대 국회가 20대 국회에 의사당을 넘겨주기 전에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최장 330일 심사기간...전혀 신속하지 못한 ‘신속 안건 처리제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은 소관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 등이다. 제출된 순서에 따라서 법안을 논의하게 돼 있어, 만약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국회법 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를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안건 신속 처리제도의 그 이름과 걸맞지 않게, 심사 기간은 최장 330일에 달하다. 상임위원회 최대 심사기간이 180일이고,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기간이 최대 90일, 그리고 본회의로의 부의 기한이 60일이어서 모두 합치면 330일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이 마저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요구하게 돼 있어, 한 정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면 법안 통과가 아예 불가능하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우를 ▲ 천재지변의 경우 ▲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직권상정도 대부분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통과해도 마지막 필리버스터의 관문이 남아있다. 발언의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무제한 토론을 이용하면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다. 물론 체력에 한계가 있어 토론이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5분의 3 이상의 동의로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지 않는 한 법안통과를 ‘영원히’ 막을 수 있도록 돼 있다. 

◆ 취지 살리되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정의화 중재안' 해답 될 수도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소수당에 대한 존중이다. 다수당의 ‘날치기 통과’, ‘기습 직권상정’ 등이 문제가 돼 온 만큼, 선진화법의 취지는 여전히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국회법이 지나치게 소수당에 유리하게 돼 있어 ‘국회 마비’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또한 과반보다 더 강한 찬성 요건을 규정하는 이른바 ‘특별정족수’ 규정은 대개 헌법을 통해 명시하게 돼 있는만큼, 법률이 자의적으로 5분의 3 규정을 두는 것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여러 비판을 고려, 국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많다. 새누리당은 이미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권한쟁의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해 놓은 상황이며,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허용 범위를 ‘재적의원 과반수가 요구하는 경우’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편 야당은 국회법 개정에 대해서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소수당의 목소리가 설 자리가 없다며 국회법 개정은 사실상 ‘다수당 독재 법안’이라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적정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의장은 신속안건처리제도로 상정하는 요건을 과반으로 낮추고 상임위 심사기간 180일을 75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다만 필리버스터 제도에 대해서는 기존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야당의 입장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국회선진화법이 과감한 구조개혁과 국정과제 추진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며 "지난 18대 국회가 마지막 5월 임시국회에서 선진화법을 통과시켰듯, 19대 국회도 5월 국회에서 선진화법 수정을 논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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