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0.07 15:10
김홍구 부산외대 동남아학부 교수

지난 8월17일 방콕 도심의 랏차쁘라쏭 네거리에 있는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내∙외국인 20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다쳤다. 테러의 배후에 대한 설들이 무성한 가운데 며칠 전 태국 경찰은 중국 소수종족인 무슬림 위구르족이 연루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위구르족 강제 송환에 대한 보복성 테러가 아니고 위구르족의 밀입국을 주선하던 브로커들이 태국이 이들의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에 테러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태국정부는 제 3국으로 가기 위해 자국에 불법 입국한 위구르족 100여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바 있다.

폭탄테러 현장인 에라완 사원은 이제 평온을 회복하고 많은 참배객들로 다시 붐비고 있다. 이 사원은 1956년에 만들어졌다. 원래 이름은 ‘싼타우마하프롬’ 즉 ‘대 브라흐마신의 사당’이다. 브라흐마신은 창조의 신으로 불리는 힌두신이다. 일반적으로 에라완 사원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 옆에 에라완 호텔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에라완 사원은 호텔이 세워지고 만들었다. 호텔을 처음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난히 사고가 많이 발생하자 브라흐마 신의 가호를 빌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통했던지 한동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다가 50년만인 2006년 한 젊은이가 에라완 사원의 브라흐마 상을 망치로 부수다 행인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 그는 정신이상자였다. 수도 방콕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는 브라흐마 상이 훼손된다는 것은 사실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이런 사고가 일어난 이유는 탁씬 친나왓 정권의 부덕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있었다. 물론 반탁씬 세력의 정치공세였다. 2003년 발생한 사스(SARS), 조류독감, 2004년 인도양을 강타한 쓰나미 사건도 이와 함께 탁씬 정권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소재가 되었던 것들이다.

반탁씬 옐로셔츠를 이끌던 지도자 쏜티 림텅꾼은 “브라흐마 상 파괴는 탁씬 총리의 사주에 의한 것이며, 사악한 마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반 탁씬 색채를 뚜렷이 띤 태국 영자 일간지 네이션지에서는 “탐욕스런 자본주의와 경제성장으로 특징지어지는 탁씬 통치시대는 흉조로 괴롭힘을 당해 왔으며…지도자가 선행을 행하지 않는다면 태국사회는 위기로 치달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에라완 사원은 랏차쁘라쏭 네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은 탁씬을 지지하는 레드셔츠가 2010년 민주당 아피씻 웻차치와 총리에 대해서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반정부 시위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시위 당시 군의 진압작전으로 90명 이상이 숨져 태국 현대 정치사에 손꼽히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폭탄테러 희생자 수는 외국인도 다수가 포함된 전례 없는 대규모 수준이다. 태국에는 그 동안 다양한 폭발물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번 같이 피해가 심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에라완 사원과 그 주변은 근래 태국 정치위기의 중심지가 되어 온 셈이다. 이번 폭탄테러의 경우도 그러하다. 태국은 작년 5월 쿠데타로 잉락 친나왓 정부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군사정권의 헌법개정작업을 둘러싸고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쿠데타 이후 사실상 최고권력 기구인 군부주도의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의 명에 따라서 헌법초안위원회가 만든 개정안은 한마디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강화해 탁씬 전 총리 세력의 재집권을 무력화시키거나 봉쇄시키겠다는 것이었지만 얼마 전 국가개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결되었다. 폭탄 테러발생 직전에는 헌법개정안을 놓고 탁씬과 군사정권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사건 초 테러 용의자가 위구르족 출신일 수 있다는 추정을 일축하며 뚜렷한 증거 제시도 없이 친탁씬계 레드셔츠 쪽을 의심하는 발언을 계속해 왔다. 이 사건을 국내 정치적 사건으로 일찌감치 규정하고 정적 탄압구실로 삼으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행태다. 굳이 위구르족 연루설을 부인한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정부의 비 인도주의 정책이 부각될 것을 우려하고 중국측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무엇보다 군사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개정작업이다. 현재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새로운 헌법초안위원회가 구성돼 180일 이내에 헌법초안을 만들어야 하며, 총선은 2017년 중반기에나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헌법개정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벌써부터 개정안 거부가 반복됨으로써 정치위기는 한동안 지속되고 정국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우연일지 몰라도 2006년 이후 정치적 위기 시마다 에라완 사원과 주변에서는 큰 사건이 터졌다. 단∙중기적 정국상황이 암울해 보이는 가운데 에라완 사원을 둘러싸고 또 다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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