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준영 기자
  • 입력 2019.10.25 12:3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고등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YTN 뉴스 캡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고등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YTN 뉴스 캡처)

[뉴스웍스=박준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의견을 밝혀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내부 준법감시체계 작동, 혁신경제 기여, 기업총수로서 자세 등을 주문했다.

정준영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부장판사는 공판을 마무리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라며 "삼성그룹 내부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최순실) 씨도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기업 내부 준법감시체계를 강조했다.

이어 "지금도 삼성그룹 내부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같은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며 "준법감시제도는 하급 직원 비리방지만이 아니라 고위직, 기업총수 비리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과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 사건은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며 "재벌 체제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 현상과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아 우리 국가경제가 혁신형 경제모델로 도약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내외 각종 도전에 직면한 엄중한 시기에 총수는 재벌 체제의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라며 "혁신기업의 메카로 불리는 이스라엘 기업의 최근 경영을 참고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업 총수로서의 당당한 자세도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총수로서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본 심리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 기간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며 "1993년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의 의견에 공감하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 없이 응시하기만 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 씨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석방됐으나, 8월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항소심을 뒤집으면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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