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재갑기자
  • 입력 2015.10.08 11:37

정부와 새누리당이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과서 발행체제 논란이 하반기 정국의 최대 뇌관으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사실상 결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그동안 내년 4월 총선 공천권을 두고 대립했던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의 힘겨루기는 휴전상태에 접어들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해 서청원, 이인제 최고위원 등이 모두 한목소리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8일에도 국정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그 필요성을 역설하며 반대하는 야당에 공세를 펼쳤다. 

김 대표는 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 역사교과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서 엄선된 집필진에 의해 쓰여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현행 8종 역사교과서 중 6종이 1948년에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북한은 국가수립이라 표현하고 있다"며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자 여전히 이념 대립의 상처가 남아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균형있는 시각으로 바라본 올바른 국가관 확립은 더없이 중요하다"며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한 국가는 공유된 역사라는 하나의 DNA에 의해 세워지는데 그 DNA가 오염돼 서술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민족도 하나의 국가도 아니게 된다"고 주장했다.
 
서 최고위원은 "역사교과서 편찬 과정이 곧 국민 통합의 과정이 돼야 한다"면서 "이러한 책무는 어떤 학자, 어떤 출판사, 어떤 정치집단이 홀로 감당할 수 없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내년 4월 공천 룰 문제로 지도부간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역사교과서 통합화'에는 한목소리를 내며 정부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야당과 진보진영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8일 열린 최고 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유신독재의 향수를 느끼는 유신 잠재세력으로 규정짓고 저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역사 교과서의 정책적 헤드인 장관조차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뜻이었음에도 그 위에 있는 절대자의 강력한 뜻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

또한 전국 470여 단체로 구성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역시 이날 전국 동시 시민선언을 발표하고 “박근혜정부는 역사교육 통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는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후 본격화 됐다.

특히 현행 검정체제에서 발행되고 있는 8종의 역사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는 물론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어 '좌편향'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여당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 왔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정국의 뇌관으로 부상하자 정부여당에서는 국정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국정'이라는 용어 대신 '통합 교과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선 교과서를 국정·검정·인정 도서로만 구분하고 있을 뿐 ‘통합 교과서’는 현행 교과서 관련 법규에 없는 용어다. 정부여당이 '통합 교과서'라는 용어를 들고 나온 것은 여론이 불리하다는 점을 그만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등 일각에서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위한 시기를 놓쳤기 대문에 국정화 대신 국정화에 준하는 검정기준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이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대 역사학과 교수인 A씨는 "지금 단계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폭풍이 예상보다 거셀 것"이라며 "발행체제의 형식적인 면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교과서에 기술할 것인지에 대한 집필기준과 심사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경기 안양의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 L씨는 "국정화보다는 통합적 내용을 담은 단일 교과서를 택하는 쪽으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단일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기술 내용을 합의하는 건 불가능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정부·여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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