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11.03 05:35

수소전기차 R&D 지원은 성공사례…국책기술과제에서 대기업 배제는 '편협'
중소기업 R&D의 90%는 '나 홀로 개발'…산업 연관성·효율성 떨어져
독일 프라운호퍼 예산편성 도입할만…연구 자율성과 책임성 높여야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R&D 투자국이다. 사진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현장 모습(사진=쌍용자동차)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R&D 투자국이다. 사진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현장 모습(사진=쌍용자동차)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일부 연구개발비는 현장수요와 동떨어진 기술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않다”며 “정부의 R&D 지원금은 ‘기업 안정자금’으로 불릴 만큼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3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재·부품·장비 관련 3개 R&D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은 기업 전체 674개사 중 73개사는 2015~2017년 3개 회계연도 연속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 1 미만인 '한계기업'이었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1 미만이라면 기업이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는 뜻이다. 세칭 '좀비기업'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정부 R&D 지원 대상에 좀비기업이 계속 포함되고 있으며 몇몇 기업은 동종의 기술로 여러번 지원받는 등 문제점이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 혈세에서 나온 정부 R&D 지원금에 의존해 연명하는 기업이 더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R&D 투자는 2007-2017년간 연평균증가율 9.7%, 10년간 2.5배 증가했다. (자료 출처=산업통산자원부)
국내 R&D 투자는 2007-2017년간 연평균증가율 9.7%, 10년간 2.5배 증가했다. (자료 출처=산업통산자원부)

◆국내 R&D 투자 세계 5위 수준…낮은 연구 성과는 개선 필요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R&D 투자가 너무 적다는 불평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통계는 딴 판이다.  산업통산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은 세계 5위의 R&D 투자국이다.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비중은 2013년부터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개발비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다. 저조한 연구 결과로 인해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변화되고 있고 국가 전반의 R&D 투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국내 R&D 체계는 '과거 추격형 성장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의 R&D 투자는 여전히 하향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대부분의 정부 R&D 지원 사업이 전문연구관리기관이 기획해 공고하면 이를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응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R&D를 관리해도 연구 자체가 현장 수요와 동떨어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기획해 공고하는 방식은 업계가 필요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하라고 정부가 도와주는 모양새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GDP 대비 R&D 투자비중이 4.55%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중 한다. (자료 출처=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GDP 대비 R&D 투자비중이 4.55%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자료 출처=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의하면 국내 R&D 투자액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증가율이 9.7%에 달했다. 2017년 78조8000억으로 GDP 대비 4.55%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R&D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성과는 신통하지않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기업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기술무역수지도 지속적으로 적자를 유지하고 있어 성과가 투입(연구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R&D 생산성은 투입(연구비)에 대한 산출 즉 논문, 특허, 기술무역, 기술수준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저조하거나 뚜렷한 개선이 없는 상황이다.

2017년 공학계 국제학술논문 점유율은 3.5%로 세계 12위에 불과하다. 2009년 이후 순위변동도 없는 상태다. 더욱이 논문 1편당 피인용수도 5.8회로 독일(8.3회) 등 선진권 뿐만 아니라 중국(6회)보다도 낮다. 

단순 특허 출원 건수는 세계 4위에 이르지만 특허경쟁력의 기준이 되는 미국특허청(USPTO), 일본특허청(JPO), 유럽특허청(EPO)에 모두 등록돼 있는 삼극특허(Triad Patent Families) 점유율은 4.6%에 그친다. 미국(25.4%), 일본(31%)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록 낮은 수준이다. 

연구개발비 100만달러당 특허건수도 0.034건으로 세계 12위 수준으로 매우 저조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기술무역수지비(기술수출액/기술도입액)는 2012년 0.48에서 2017년 0.72로 소폭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50억 달러 가량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경쟁력이 취약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밀제어모터 등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이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무역수지비는 0.72으로 전년대비 0.09 향상됐으며, 기술무역수지는 전년보다 18억4600만 달러 감소한 41억5500만 달러의 적자가 발생했다. (자료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무역 통계조사')
기술무역수지비는 0.72으로 전년대비 0.09 향상됐으며, 기술무역수지는 전년보다 18억4600만 달러 감소한 41억5500만 달러의 적자가 발생했다. (자료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무역 통계조사')

◆정부의 나눠주기식 자금 지원…R&D 지원 브로커에 좌우

정부는 지난 10년 간 중소기업 R&D에 106조1509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R&D 사업화 성공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R&D 성과가 부진한 것은 정부 R&D 자금이 중소기업 위주로 나눠주기 식으로 배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료주의적인 연구관리와 감사관행으로 인해 출연연구소조차 연구성과 보다는 절차적 합리성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서류상 요건만 충족하면 R&D 지원금을 지급한다. 정부가 요구하는 지원서류 구비는 일반 중소기업 대표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전문가가 필요할 정도다. 이런 실정이기에 지원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는  ‘R&D 브로커’가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지원금의 5~10%를 성공보수로 받는다. 지난해 R&D 컨설팅업체 44곳이 브로커 역할을 하다 적발됐고, 14곳이 수사 의뢰를 받았다.
 
2017년 산업부 R&D 자금 중 중소기업 지원 비중이 44.3%를 차지한 반면 대기업은 4.6%를 기록했다. 과제 선정에서도 공정성에 따른 배분과 합법성 위주의 감사관행으로 인해 출연연과 중소기업이 수행하는 R&D 생산성이 매우 저조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2012년 이후 정부사업에서 완성차 회사 등 대기업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되면서 수많은 소재·부품간의 긴밀한 기술개발 네트워크가 필수적인 R&D 분야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될 여지가 커졌다. 실제로도 투자대비 연구 성과에서 부실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7년 자동차부문 R&D 자금의 1.2%만 대기업에 지원됐다. 중소기업 43.2%에 배분되고  출연연 등에 24.8%가 배정됐다.

2017년 기준 주요국 GDP 대비 기업 정부 대학 연구개발비 비중에서 한국이 가장 높다(자료 출처=Kiat산업기술통계 2019 )
2017년 기준 주요국 GDP 대비 기업 정부 대학 연구개발비 비중에서 한국이 가장 높다(자료 출처=Kiat산업기술통계 2019 )

최근 주목받고 있는 수소전기차의 정부 R&D의 경우에도 367억원 규모의 자금 중 대기업에는 4.4% 지원에 그쳤다. 이로인해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늦어지면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기술 개발 지원이 대부분 산업계 전반보다 개별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단위 지원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단독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내 중소기업 R&D의 90%는 이른바 '나 홀로 개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개별 기업 특화 기술은 산업 전반으로 반영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R&D 지원…현금 혹은 세액공제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에 따라 R&D 지원금이 부실한 연구기관과 중소기업의 연구소에 집중 지원되고 있지만 제대로 쓰여졌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일부 기업은 '회사 운영비’ 등과 같이 본 목적이 아닌 곳에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R&D 과제의 높은 성공률도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017년 기준 중소벤처기업부 R&D 최종평가 과제 4651건 중 4317건이 성공 판정을 받아 성공률이 92.8%에 달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관계자는 “전체 중소기업 연구소의 76.8%가 학사 이하 학위 소지자이고, 연구원 10명 이하인 곳도 95.9%”라며 “이러한 연구환경에서 90% 넘는 연구 성공률은 비상식적인 수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기술통계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중소기업이 지난해 세계 최초 신기술 개발에 뛰어든 사례는 2.4% 밖에 안 된다. 나머지 연구는 76.5%가 보편화된 기술을 다시 연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즉, 중소기업 연구소들은 이미 보편화된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금을 타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부의 연구개발예산 지원 비중의 변화(자료 출처=산업부)
산업부의 연구개발예산 지원 비중의 변화(자료 출처=산업부)

최근 일본과의 무역분쟁에서도 나타났듯이 핵심부품의 원가개선, 소재 국산화, 내구성 제고 등에 지속적인 R&D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중소기업에 지원한 R&D 중에는 이를 해결할 결과를 보인 곳을 찾기 힘들다는데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대부분의 대기업(완성차)에 대한 R&D 투자를 배제하고 있다. 이에앞서 지난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정부·현대자동차·연구소 간의 수소전기차에 대한 성공적인 R&D 사례는 곱씹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 덕분에 국내 150여개 소재·부품사, 완성차, 연구기관 등으로 구성된 수소차 생태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R&D 지원을 집중한뒤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더이상 찾기 어렵다.

정부의 R&D 자금 지원에서 대기업을 제외하는 것에 대해 한 투자 전문가는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부품기술에서 나오는 만큼에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국책기술과제에 배제하는 것은 편협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중심의 산업 발전으로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책으로 현재의 R&D 지원을 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는 완성차를 중심으로 부품소재기업이 긴밀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는 상생협력 모델이 되도록 지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금의 R&D 지원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업의 자발적 R&D 투자를 증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현금지원방식의 정부 R&D 사업을 기업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국가 R&D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자의 권한과 책임성을 높이고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출연연구소의 예산방식과 연구체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처럼 기업과제 1/3 유치시 정부 출연금 1/3 제공, 나머지 1/3은 PBS(정부 과제 예산)으로 지원하는 예산편성 방식 개편도 좋은 방식 중 하나”라며 “과제 감사를 최소화하거나 폐지해야하고, 기업과제의 경우 예산 집행 세부내역 제출을 제외함으로써 연구 자율성과 책임성 중심으로 연구관리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주요 경쟁국처럼 투자비의 20~30%, 설비투자 공제는 10% 이상으로 상향하는 R&D 지원을 세액공제로 변경하면 기업의 연구개발 착수 시점 금융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별도의 연구개발 전용 대출펀드를 조성하는 등 기술금융 확대방안도 함께 검토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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