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19.11.04 04:15

'포노 사피엔스·호모 솔리타리우스·호모 탕진재머'가 주도
'다이소 털이범'에서 2만 명 이상 회원이 탕진잼 만끽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지금 대한민국은 신인류의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는 몇 주 째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

기성세대는 종잡을 수 없게 진화한 신인류인 90년생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리다고 치부하고 배제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굵어진데다 호주머니도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며 청와대 전 직원에게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다. 가히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기업들도 신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느새 경제력을 갖춘 그들이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전경련국제경영원 CEO 조찬경연에서 '새로운 문명의 축, 포노 사피엔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경련)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전경련국제경영원 CEO 조찬경연에서 '새로운 문명의 축, 포노 사피엔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경련)

"스마트폰 없이 못 산다"…'포노 사피엔스'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 10월 16일 주최한 ‘제4차 미래전략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를 '포노 사피엔스' 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포노 사피엔스는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스마트폰을 합친 말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세대를 뜻한다. 지난 2015년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러한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들은 소비시장에서 가공할 위력을 보이고 있다.

유튜브가 대표적인 사례다. 구글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1월 기준 국내 유튜브 이용자 수는 3100만명을 넘겼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지난 2014년 기준 약 3800만명)의 대다수가 한 번 이상 유튜브에 접속한 셈이다. 국내 이용 시간만 한 달에 317억 분이다. 

단적으로 올해 6살인 이보람양의 유튜브 채널 '보람튜브'는 월 40억원에 달하는 광고 소득을 올렸고, 서울 청담동에 약 95억원대 건물을 매입하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같이 높은 수익률에 지난 7월 26일 MBC 노동조합은 자조적인 성명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노조는 "7월 25일 MBC 광고 매출은 1억 4000만원"이라며 "불과 10명 안팎의 스태프를 보유한 보람튜브와 임직원 1700여 명이 근무하는 MBC의 광고 수익이 비슷해졌다. MBC의 생존 위기"라고 우려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하다고 평가받는 아이돌그룹 BTS를 키운 것도 포노 사피엔스들이다. 경쟁자보다 자본력이 부족했던 BTS는 SNS 마케팅을 선택했다. 기존 유통망의 도움 없이 팬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다는 전략은 주효했다. 자신을 '아미'라고 칭하는 BTS의 팬클럽은 스스로 SNS 마케팅 전략을 짜 국가별로 활동하며 BTS를 알렸다. 

BTS는 포노 사피엔스의 위력을 알리는 상징적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이제는 오직 온라인 유통과 마케팅만으로도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홈코노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 메인 페이지. 호모 솔리타리우스를 위한 '1인분' 코너를 제일 처음 배치했다. (사진=배달의민족 앱 캡처)
'홈코노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 메인 페이지. 호모 솔리타리우스를 위한 '1인분' 코너를 제일 처음 배치했다. (사진=배달의민족 앱 캡처)

"혼자가 편한 사람들"…'호모 솔리타리우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대한민국 1인 가구수는 584만 8594가구로 전체의 29.3%에 달한다.

뭐든 혼자 하는 외로운 인간을 뜻하는 신인류 '호모 솔리타리우스'는 1인 가구가 '대세'로 떠오른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인간형이다. 이들은 '혼밥(혼자 밥 먹기)'이 편하고, 주말에는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하거나 1인 콘솔게임을 즐긴다. 퇴근 후 맛있는 안주를 놓고 '혼술(혼자 술 먹기)'하기도 한다.   

산업연구원은 1인 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이 지난 2010년 8.7%에서 오는 2020년 15.9%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30년에는 194조원(20%)으로 4인 가구 소비지출 총액인 178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1인 가구가 주를 이루며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다양한 경제 활동을 하는 '홈코노미'가 시장의 트렌드가 됐다.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은 이런 흐름에 탑승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난 2014년 월 주문 300만 건을 기록한 배달의민족은 2017년 1000만 건, 2018년에는 2000만 건을 넘어섰다. 

금융업계도 호모 솔리타리우스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올포미(All For Me)' 정기적금은 '나홀로족'이 선호하는 여행, 숙박, 체험형 프로그램의 부가서비스가 적금액에 따라 제공된다. 국민은행의 '1코노미 스타트 적금'은 1인 가구를 위한 우대이율 조건을 내걸었다. 이러한 금융상품은 이자 수익을 바라는 고객보다 특정 소비나 생활을 바라는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구성됐다. 

호모 솔리타리우스들이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 시장도 매년 성장세다. 컴앤스테이가 발표한 '셰어하우스 트렌드리포트 2019'에 따르면 셰어하우스 시장 규모는 지난 2017년 100억원에서 2018년 200억을 돌파했다. 컴앤스테이는 2019년 말에는 5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이소 '탕진잼' 인증샷.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다이소 '탕진잼' 인증샷.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인생은 한 번뿐"…'호모 탕진재머'

소비생활뿐 아니라 기존 인류와 '삶의 방식' 대부분이 달라진 포노 사피엔스·호모 솔리타리우스랑 다르게 '호모 탕진재머'는 소비생활에 국한된, 다소 좁은 범위의 신인류로 볼 수 있다. 

호모 탕진재머는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재미를 위해 돈을 탕진한다는 뜻인 '탕진잼'을 합성한 말이다. 

이들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인 '욜로(YOLO)'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을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용어로,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그간 '가성비' 마케팅이 강타했던 소비시장의 트렌드도 이들에 맞춰 움직이는 추세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내가 좋다면 가격을 따지지 않는 '나심비',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인 '가심비'가 화두로 떠올랐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마케팅 전문 컨설팅업체 '이노션월드와이드'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탕진해 버리는 호모 탕진재머가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1년간 주요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수집한 6만 건의 소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가격보다 지갑을 열었을 때의 행복감을 원하는 신인류를 공략한 마케팅 사례로 '인스타그래머블'을 들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것이라는 뜻의 신조어로 최근 젊은 소비자 사이 유행이다. 인스타그램이 국내 SNS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최근 1~2년 사이 친숙해진 용어다. 

이러한 인스타그래머블 마케팅의 대표 격은 일명 '탕진잼'의 성지로 불리는 다이소다. 저가 상품 위주라서 적은 돈으로 마음껏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호모 탕진재머에게 어필했다. 다이소도 이점에 착안해 만화 캐릭터 상품 등 '인증샷'용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SNS에서 다이소의 인기는 뜨겁다. 신인류들은 SNS에 탕진잼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다이소에서 구입한 제품 사진을 찍어 공유한다. 네이버 밴드 '다이소 털이범'에서는 2만 명 이상의 회원이 탕진잼을 만끽하는 중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SNS에 올라오는 구매 후기나 인증샷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며 "사진이 잘 찍히는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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