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9 14:40
입과 혀는 재앙을 부르는 통로다. 세 치 혀 잘못 놀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는 참 많다. 우리 정치인의 가벼운 입놀림은 그래도 늘 그치지 않는다.

입이 있고, 목구멍의 혀가 있으며, 날숨이 있어 사람의 말은 사회적 형태를 띠며 꾸준하게 나온다. 생각과 관념은 머리에서 뭉쳐졌다가 발음 기관의 편의에 힘입어 말로 나와 다른 이에게 전해진다. 그럼에도 입이 있고, 목구멍의 혀가 있으며, 날숨이 있다고 해서 말을 마구 하면 곤란하다.

말이 일으키는 재앙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남의 감정을 해치고, 다른 이의 마음을 뒤집는다. 급기야 조그맣게는 주먹다툼, 크게는 총칼로 상대를 없애는 지경에까지 닿는다. 그러니 생활에서 말을 쏟아내는 행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옳다.

요즘은 자세히 나누지 않으나 사람의 말을 가리키는 言語(언어)라는 낱말의 각 글자는 원래 쓰임새가 조금씩 달랐다. 言(언)은 직접 내뱉는 말, 語(어)는 상대의 물음을 향한 답변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주동적으로 구사하는 말이 言(언), 남의 언변에 대꾸하는 일을 語(어)라고 풀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의 분류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은 많이 섞여 쓰인다. 아무튼 말을 뱉는 입과 그 안을 이루는 혀가 문제를 일으킬 때가 많다. 보통은 구설(口舌)로 적는다. 물길을 매달아 놓은 폭포처럼 말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경우는 현하(懸河) 또는 현하지변(懸河之辯)이라고 적는다. 비교적 잘 알려진 표현이다.

내리막길에 굴리는 구슬은 어떨까. 우리의 쓰임은 거의 없으나 중국 성어에는 下阪走丸(하판주환)이라는 말이 있다. 내리막길을 마구 굴러 내려가는 구슬처럼 말이 막힘없이 쏟아지는 사람의 모습을 형용한다. 구급(口給)이라는 표현도 있다.

여기서 給(급)은 ‘충분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口給(구급)으로 적으면 말이 충분할 정도를 넘어 계속 이어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給口(급구)라고 적어도 맥락은 같다. 단지 말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입을 더 가리키는 모양새다. 말 잘 하는 이를 능언(能言)으로 적을 때도 있다.

‘구라’라는 말은 요즘도 퍽 유행이다. 어원은 잘 모르겠다. ‘이야기’ 또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소개하고 있다. ‘하늘 구라’ 정도로 옮겨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天口(천구)라는 한자 표현이 흥미를 끈다. 포탄을 쏘아 올려 하늘을 울리는 ‘대포’ 정도의 구라일 테다. 利口(리구)도 마찬가지 맥락의 낱말이다.

쓸 데 없는 말 자꾸 하면 요설(饒舌)이라는 지적을 듣는다. 혀를 마구 놀리는 사람이다. 장설(長舌)은 말이 많아 수다스러운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반순(反脣)은 ‘입술을 뒤집다’로 풀 수도 있는데, 사전적인 정의는 입술을 비쭉거리며 비웃는다는 의미란다. 중국에서는 말대꾸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입과 혀를 잘 놀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줄을 잇는다. 실구(失口)와 실언(失言)을 막으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결구(結口)를 중시했고, 아예 입을 닫으라는 두구(杜口)라는 말도 만들었다. 실로 입을 봉하라는 함구(緘口)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자유를 속박하는 뜻으로 쓰는 겸구(箝口)도 원래는 입에 재갈을 물리듯 말을 않는다는 의미다.

여당의 중진 의원이 자신이 속한 당 대표를 공천심사과정에서 탈락시키라는 뜻으로 “죽여 버려”라고 해 설화(舌禍)를 빚었다. 우리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지만, 민의의 대표라는 이 사람들의 정체를 새삼 다시 생각한다. 거의 ‘구라’ 수준의 한국 정치인들 입과 혀 놀림이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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