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9 15:44
군포시의 명산, 수리산에서 바라본 군포시의 전경이다. 문화와 역사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고장이다. <사진=군포시청 홈페이지>

이름이 아리송하다. 군포시청의 홈페이지에 가서 찾아봐도 여러 설만 있을 뿐이다. 왜 지명에 군사(軍事)를 지칭하는 軍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는지 딱히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시청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여러 설이 있는데, 우선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쫓겨 온 조선 병사들을 주민들이 배불리 먹여 싸움에 나서 이기게 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군사(軍)를 배불리 먹였다(飽)고 해서 軍飽(군포)로 적었고, 나중에 지금의 軍浦(군포)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안양천과 함께 이곳을 흐르는 군포천(軍浦川)에서 지명이 나왔다는 설, 청일(淸日)전쟁 때 청나라 군사들이 군함을 타고 이곳까지 올라와 머물렀다는 설, 인근의 군웅산(軍雄山)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 등 내용이 다양하다.

그래서 이름의 유래는 따지지 말기로 하자. 정설이 없으니 우선은 각자 알아서 생각하기로 하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글자는 軍(군)과 浦(포)다. 軍(군)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글자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초석,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웬만한 결격이 아닌 바에야 꼭 거쳐야 하는 곳이 군대(軍隊)이기 때문이다.

이 軍(군)이라는 한자는 우선 전쟁을 위한 병력을 의미한다. 때로는 병기(兵器), 나아가 군사(軍事) 일반을 총칭하는 병(兵)이라는 글자와도 통한다. 병법(兵法)의 대가인 손자(孫子)는 이 兵(병)을 “죽음과 삶을 가르는 곳, 남느냐 망하느냐를 가르는 길(死生之地, 存亡之道)”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런 영역이 곧 兵(병)이자 軍(군)이다.

옛 동양의 군대 편제에는 사(師)와 여(旅)가 등장한다. 군대의 편제를 일컫는 글자들인데, 그 규모를 여기서 특정하기는 어렵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 규모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師(사)라는 글자는 우선 새김이 ‘스승’이기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군대의 병력을 가리켰다. 그래서 군사(軍師)라고 적으면 군대의 높은 지휘관, 또는 군대를 지칭했다.

이 글자는 우리 대한민국의 군대에서도 쓰고 있다. 사단(師團)이 그 경우다. 독자적으로 일반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기초 역량이다. 이 사단을 이끄는 지휘관이 바로 사단장(師團長)으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대개가 별 둘의 소장(少將) 계급이다.

그 사단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부대가 여단(旅團)이다. 사단의 하급 부대인 연대(聯隊)보다는 크고 사단보다는 작은 부대다. 보통은 별 하나인 준장(准將)이 여단장을 맡는다. 사단과 여단의 앞 글자를 떼서 같이 붙이면 ‘사려(師旅)’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예전에는 이 師旅(사려)가 군대를 일컬었다.

우리가 지금 흔히 사용하는 軍隊(군대)라는 단어보다 훨씬 앞서서 등장한 단어다. 師旅(사려)는 군대라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을 가리키기도 했다. 군려(軍旅)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역시 군대를 의미하는 단어다. 아울러 군대와 관련이 있는 모종의 상황, 또는 그런 일, 나아가 전쟁까지 가리켰던 말이다.

聯隊(연대) 밑에는 중대(中隊), 소대(小隊), 분대(分隊)가 있다. 이들 하급 부대를 합친 게 바로 聯隊(연대)다. 중대와 소대, 그리고 분대 등을 ‘합치다’, ‘연결하다’ 등의 새김인 聯(연)이라는 글자로 묶은 이름이다. 과거 한자 세계에서는 그런 군대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師團(사단) 위에는 군단(軍團)이 있고, 그 위에는 軍(군)이 있다. 다시 그 위에는 육군(陸軍)과 해군(海軍), 공군(空軍)의 참모본부와 그를 지휘하는 각 군 참모총장이 있다. 이런 군의 각급 부대를 일컫는 말이 제대(梯隊)다. 앞 글자 梯(제)는 ‘사다리’를 의미한다. 또 사다리의 각 계단을 지칭하는데, 梯隊(제대)라고 쓰면 사다리의 각 계단처럼 존재하는 각급의 부대라는 뜻이다.

浦(포)라는 글자는 일반적인 물가, 또는 하천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곳의 의미다. 아울러 우리 식의 ‘나루’라는 의미도 있다. 배가 드나드는 물가의 작은 항구를 포구(浦口)라고 한다. 마포(麻浦), 삼천포(三千浦) 등 우리 지명에도 많이 등장하는 개념의 글자다. 포(浦)라는 글자가 등장했으니, 언뜻 추포(秋浦)라는 곳에서 읊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가 떠오른다. 과거의 지식인에게는 너무나 유명했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는 구절이 여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추포의 노래(秋浦歌)’라는 제목의 시다. 여기에서의 이 구절,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은 여러 의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데, 그 길이가 ‘삼천장’이라는 것. 장(丈)은 당나라 당시의 길이 단위인데, 어림잡아 약 3m다. 그러니까 백발의 길이가 3㎞에 이른다는 표현인데, 시인은 과장을 섞어 세월이 흘러 어느덧 늙었음을 한탄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 한국인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이 사람 또 ‘백발삼천장’이야”라고 핀잔하는 경우다. 백발이 성성한 것까지는 좋은데, 몇 ㎞라고 ‘뻥’을 치니 문제라는 지적이다. 턱없는 과장, 허풍스러움을 비꼴 때 쓰는 말이다. 백발에 관한 이백의 이런 재미와 과장이 섞여 들어간 표현, 1300여 년 전 가을의 쓸쓸한 포구를 뜻하는 秋浦(추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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