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10 15:05
경복궁의 장안당 모습이다. 건물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곳에 붙는 이름이 당(堂)이다. 그 건물처럼 의젓하고 멋진 모습을 두고 우리는 '당당(堂堂)'이라는 낱말을 만들었다.

행정구역으로는 군포시에 속한다. 우물이 많아 그 물을 기를 때 옷깃을 적셔서 지어졌다는 금정(衿井)이라는 동네 이름처럼 이곳에도 우물 정(井)이라는 글자가 따랐다. 앞의 당(堂)이라는 글자는 사전적으로는 ‘집 안의 큰 건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이 글자는 그런 집 안의 큰 건물 외에 신당(神堂)의 의미로도 발전했다.

그 神堂(신당)은 옛 시골의 마을에서 신에게 제사 등을 올렸던 곳의 일반적인 명칭이다. 원래 큰 건물을 짓는 경우보다는 거대한 나무, 또는 오래 된 나무를 중심으로 들어섰다. 그곳 나무 아래 등에 짓는 집을 보통 神堂(신당)이라고 불렀다. 그 마을의 정신적 고향으로 여겨질 정도로 마을에서는 구심체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올리는 제사가 당제(堂祭)다.

아울러 굿을 수행해 신으로부터 힘을 비는 무당 등이 활동했던 곳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집, 당골 등의 이름이 붙으면 그런 종교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이르기도 했다. 우리가 지나는 이 堂井(당정)이라는 동네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 이름을 짓지 않았는가 싶다.

어쨌거나 군포시의 홈페이지를 보면 당정동은 원래 과천군 남면의 한 지역으로 있었으며, ‘신당’ 밑에 우물이 있어 ‘당우물’, 또는 ‘당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특히 경부선 철로가 당정동 근처를 지나는 곳에 물이 잘 나오는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이 당제를 지낼 때 이곳의 물을 떠다가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자연스레 당우물로 불렸고, 나중에는 완전한 한자 이름인 당정리(堂井里)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堂(당)이라는 글자의 원래 모습에 주목하자. 이 堂(당)은 ‘시청(市廳)’ 편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커다란 집의 여러 건축물 중의 하나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그런 점에서 堂(당)과 ‘시청’의 廳(청)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다른 두 글자다. 여러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궁궐, 또는 양반 사대부 집의 가장 공개적이면서 사람이 많이 모여 함께 어떤 행사 등을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

한자(漢字)를 생성한 뒤 그를 줄곧 집요하게 연역하며 이용했던 중국에서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집을 지을 때는 우선 네모에 번듯함을 추구했던 자취가 역력하다. 대개 남북으로 난 축선을 따라 동서남북의 방위에 맞춰 집을 짓는데, 그 가운데 가장 공개적인 장소이며 전체 건물의 중앙에 놓이는 집채가 바로 堂(당)이다. 굳이 말하자면, 주택 전체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적장자(嫡長子)를 중심으로 펼치는 종법(宗法)의 그물망을 제대로 구현한 옛 중국의 주택은 반드시 이런 구조를 지닌다. 가운데 있는 정방(正房)이 곧 이 堂(당)이라는 건축물에 들어서며, 이곳에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거주한다. 나머지는 제가 지닌 집안의 신분과 위계(位階)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생활한다.

문헌에 따르면 한(漢)나라 이전에는 이곳을 ‘堂(당)’이라 적었고, 그 이후에는 ‘전(殿)’이라 표기했다고 한다. 그와는 상관없이 이 건물은 당옥(堂屋) 또는 정옥(正屋) 등의 이름으로 남아 여전히 ‘전체 주택의 본채’ ‘무리의 핵심’이라는 의미를 전했다. 우리 한옥에서 대청(大廳)이라고 부르는 그 廳(청)이 堂(당)과 같다고 보면 좋다.

우리말에 ‘당당하다’라는 표현은 예서 나왔다. 전체 주택의 핵심으로 가장 번듯하고 그럴듯하게 짓는 건물, 게서 우러나오는 ‘우뚝함’ ‘자랑스러움’ ‘번듯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앞에 바를 정(正)이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쓰면 바로 ‘정정당당(正正堂堂)’이다.

변 사또가 옥에 있던 춘향이를 끌어다가 매질하던 곳이 바로 동헌(東軒)이다. 조선시대 일반 관청의 본채 건물이 들어 있던 곳을 말한다. 이 동헌의 헌(軒)은 원래 앞이 높고 뒤가 낮은 수레를 뜻하는 글자였다가, 나중에는 처마 등이 높은 건물을 형용하는 말로 정착했다. 그 모습이 우뚝하고 높아 모든 집채의 으뜸이라, 우리는 그 글자를 빌려 ‘헌헌장부(軒軒丈夫)’라는 말을 만들었다. 모습이 장대하고 듬직한 사내를 형용하는 말이다.

집의 모양새를 보며 堂堂(당당)함과 軒軒(헌헌)함을 새겼던 동양의 옛사람들은 사실 그 집의 외형에만 눈길을 두지 않았으리라. 집의 생김새를 보면서 그를 마음속으로 닮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堂堂(당당)하며 軒軒(헌헌)한 멋진 사람으로 누굴 꼽을 수 있을까. 나는 집채의 어떤 모습을 닮은 사람일까. 나는 堂堂(당당)과 軒軒(헌헌)함에서 얼마나 가깝고 먼 사람일까. 당집 우물 앞을 지나면서 품어볼 생각들이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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