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11.22 18:55

일본 정부도 동시 발표 "수출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로 했다"
靑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야 모든 문제 해결"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반대에 밀린 나머지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결국 단행되지 못했다. 

청와대는 협정 효력상실 시점인 23일 0시를 불과 6시간 남기고 '조건부 연기'를 선언했다. 지소미아 종결이후 벌어질지 모를 엄청난 후폭풍과 국민들의 불안감 확산을 막기위해 일본에 대외적으로 양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일본 정부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에 항의하고 철회를 압박하는 카드로 지소미아를 활용했지만 끝내 종료를 고집할 경우 정권 차원에서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유근 1차장은 22일 오후 6시 브리핑을 갖고 "최근 양국간의 현안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일간 수출관리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상대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도 정지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당초 청와대는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막판에 내부 논의를 거쳐 조건부로 종료 시한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이에앞서 일본 NHK는 이날 오후 4시 55분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치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비록 '일본 측이 수출제한 조치 해제 등 스스로 문제를 풀 시간을 주는 차원에서 종료가 아닌 조건부 유예를 선택했다'는 식의 입장을 보였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또한, 지소미아 종료 방침이 알려진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와 여러 경로를 통해 물밑 협상을 벌여왔으나 일본 정부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스스로 명분을 만들면서 '출구전략'을 마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관측은 이날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소미아의 조건부 연기'를 발표한 이후의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 엿보인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의 연관성에 대해 "일본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화는 해 가겠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와 별도의 문제라는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의 언급은 우리나라와 협상의 길은 열어두되, 한일 간의 경색된 무역 문제는 지소미아 문제로 대표되는 군사적인 현안과는 별개라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한일 간의 협상 내용 중 중요부분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간단히 말해, 지난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포함해야 하고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철회돼야만 지소미아를 연장하고 WTO 제소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제 그런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이런 상태가 상당 기간 계속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설명한 지난 7월 1일 상황으로 복귀하기 위한 '유예기간'에 대해 2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초청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그러니까 일본으로서도 약간 자기네들이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원인 제공자로서 자기네 주장이 일방적으로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 자기네들이 한국의 수출 관리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한 만큼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사를 해서 우리 주장대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원상으로 돌려놓겠다는 얘기"라며 "그리고 시한을 이제 그냥 한 것은 아니고 올 12월 31일로 해서 약 40일 정도 못을 박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일관계가 경색되기 전의 관계로 되돌려 놓은 시한을 올해 12월 말일로 정해놨다는 게 조성렬 연구위원의 해석인 것이다.

또한, 일본 경제산업성이 이날 오후 6시에 한국과 동시에 발표한 내용에는 "(일본의)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례가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수출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로 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장차 한일 간의 외교적 불씨로 잠재돼 있다가 일정 시점에 다시 문제점으로 불거질 소지도 있어 보인다.

청와대의 설명과는 다소 다르게 미국의 압박과 일본의 생떼 속에 한국이 지소미아 효력 정지를 강행하지 못한만큼 향후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없더라도 지소미아 종료라는 결정을 다시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대두된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워 진행 중인 단식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료 철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효력 정지'를 얻어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패배로 이어지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도 '절반의 승리'를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여권에서 애초에 주장한 '원안'대로 지소미아를 예정대로 종료시키지는 못했으나,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데다 일본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실마리는 잡은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규제 문제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세계무역기구 무대에서 일본과 당분간 싸우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사태 정상화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7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다. 일본 정부와의 접촉에서 우리 정부의 양보에 상응하는 일본측 조치를 얻어낼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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