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11.29 05:05

"전세계약 끝나고 전세금 못 돌려줄 경우 채무자로 간주되기 때문"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골목길. (사진=남빛하늘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골목길. (사진=남빛하늘 기자)

[뉴스웍스=남빛하늘·박지훈 기자] 월세살이 5년차인 기자는 입사 1주년을 맞이해 전셋집으로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세대출 근거가 될 소득증빙자료 1년치가 쌓인데다 44만원의 월세가 부담되기 때문이었다.

회사(충무로), 이사후보지(강북구 미아동), 중소기업 밀집지역(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은행 영업점은 다른 곳보다 대출한도를 높게 평가해 준다는 속설에 따라 5개 은행(우리·KB국민·IBK기업·NH농협·신한) 15개 영업점을 박지훈 기자(뉴스웍스 은행 담당)와 방문했다. 한도를 가장 높게 쳐주는 영업점을 찾는게 목표였다.

대출받을 상품은 국토교통부 주택기금과가 지원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보증하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이다. HUG는 보증금의 100%(100% 상품)를, 주금공의 경우 80%(80% 상품)를 보증하고 5개 은행이 자금을 내준다. 기자는 대출한도가 1억원 수준(목표 전세가)으로 나오면 보증금 전액을 제공하는 HUG 상품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먼저 △본인발급서류(신분증·주민등록등초본·가족관계증명서·고용보험피보험자격이력내역서·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4대보험가입확인서) △회사발급서류(사업자등록증·주업종코드확인자료·재직증명서·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월별급여명세서)를 준비하고 영업점을 찾아갔다.

◆ "전세보증금 100% 나오는 물건 찾기 힘들 걸요"

중기청년 전세대출은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최대 1억원(금리 연 1.2%)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이론상으로 일반전세대출이나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회초년생' 중소기업 재직 청년에게 최적의 상품이다.

서류 준비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조건에 맞는 물건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강북구 미아동 소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대체로 중기청년 전세대출을 원하지 않는다"며 "80% 상품은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 없어서 간간이 물건이 나오지만 100% 상품은 동의가 필수적이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100% 상품은 서류 제출 등 임대인이 처리할 업무가 많아 귀찮아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제로 네이버 부동산·다방·직방·피터팬의좋은방구하기 등 부동산 앱을 통해 검색한 결과 조건에 맞는 집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중기청년 전세대출이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100%가 되냐"고 물으면 "80%만 된다"거나 "아이고 100% 짜리는 절대 못 찾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대놓고 '중기청년 전세대출 불가'라는 조건을 단 글도 부지기수였다.

◆ 100% 상품 피하는 이유 있어...보증금 상환 안 되면 채무자는 임대인

임대인은 과연 서류 제출 등의 업무가 귀찮아서 100% 상품을 원하지 않을까? 내 전셋집 구하기로 시작한 '대출상품 쇼핑'은 어느덧 이 같은 원인을 밝히는 취재로 바뀌었다.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솔직히 전세로 살다보면 집주인이 계약 끝나고도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경우가 있잖아요"라며 "100% 상품은 이 경우 채무자를 대출자가 아닌 집주인으로 간주하는데, 누가 하고 싶겠어요"라고 귀띔했다. 즉 일반전세대출은 임대인이 계약 종료 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임차인이 채무자가 되는 반면, 100% 상품은 임대인이 채무자가 되는 방식인 것이다.

보통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빼주기 어려운 경우 양자가 만나 대화를 통해 거주 연장에 합의하면 임차인은 은행에서 쉽게 대출을 갱신할 수 있다. 하지만 100% 상품은 임차인이 보증금을 직접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탓에 구두 약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임대인 입장에서 보면 본인에게 '비수'가 될 수 있는 100% 상품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확실하고 또한 논리적이다.

아울러 100% 상품은 임대물건 자체에 하자가 없어야 이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등기부등본상 융자에 따른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거나, 불법증축으로 의심될 소지가 없어야 한다. 주거용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이나 다가구주택도 대출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조금이라도 흠집 잡히지 않을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중소기업 청년이 이용할만한 주택은 대체로 1억 미만인 다가구 원룸, 융자가 조금이라도 없는 빌라밖에 없다. 있더라도 기자보다 나이(만 24세)가 많고 외진 곳에 위치한 구옥일 것이다.

한 오피스텔 중개 전문 관계자는 "자산이 전무한 중소기업 재직 사회초년생을 위한 상품이지만 실제 이용자는 이들이 아니다"라며 "적은 월급에도 자산을 알뜰살뜰 모아놨거나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청년들만 이용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살고 있는 월세 보증금 500만원을 제외하곤 아무 자산이 없는 기자는 결국 100% 상품이 아닌 80%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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