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19.12.09 05:10

'그릇'엔 관심 없고 '내용물'만 찾는 소비자 만족시켜야 시장 제패

디즈니가 지난 11월 신규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미국 시장에 내놨다. 글로벌 OTT 시장에서 독주 중인 넷플릭스의 아성을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사진=디즈니 홈페이지)
디즈니가 지난 11월 신규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미국 시장에 내놨다. 글로벌 OTT 시장에서 독주 중인 넷플릭스의 아성을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사진=디즈니 홈페이지)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이동통신 3사의 전장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넘어갔다. 

OTT 서비스란 '오버 더 탑(Over The Top)'의 약자다. 본래 셋톱박스를 통해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플랫폼에 상관없이 온라인으로 영상을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지칭한다. 

그간 이통 3사가 맞붙었던 전장은 유료방송 시장이었다. 확고한 승자였던 KT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 11월 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기 때문이다. 31.1%의 점유율로 KT가 독주하던 유료방송 시장에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천하삼분지계'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14.3%, 11.9%에 불과했지만, 공정위의 M&A 허가로 각각 23.9%, 24.5%로 올라섰다.

8할에 가까운 점유율로 방송시장을 나눠 먹게 된 이통 3사는 OTT로 시선을 향했다. 어느새 몸집을 크게 불린 OTT가 기존 미디어 생태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 덕에 하나의 콘텐츠를 TV, 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로 즐기는 'N 스크린'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예를 들어, 집에서 TV로 보던 영화를 외출하며 스마트폰으로 이어 보는 것은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원하는 콘텐츠를 미리 다운받아 둔다면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은 상황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유선 TV의 필요성과 존재가치가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표적 OTT 서비스 넷플릭스는 이런 환경과 맞물려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유료 가입자 1억 5000만명을 넘겼다.

이러한 성장세에 압박을 느낀 이통 3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참전을 결정했다. '외세'로부터 시장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거인' 넷플릭스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애플 TV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이 속속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국내 OTT 시장은 아직 혼전 양상이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웨이브출범식' 에 참석해 점등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이태현(왼쪽부터) 콘텐츠웨이브 대표,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정훈 SBS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제공=과기정통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웨이브출범식' 에 참석해 점등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이태현(왼쪽부터) 콘텐츠웨이브 대표,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정훈 SBS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제공=과기정통부)

◆ SK텔레콤, 지상파 등에 업다

토종 OTT 중 선두 주자는 지난 9월 선보인 SK텔레콤의 '웨이브'다. 전통적 미디어 시장의 지배자인 지상파 3사와 연합해 출시했다. 콘텐츠가 절실한 SK텔레콤과 직접 수신율이 5% 내외로 떨어지며 플랫폼으로서 '권력'을 잃은 지상파방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천자를 옹립한 조조의 위나라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웨이브는 서비스 시작 한 달여 만에 약 264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넷플릭스(217만명), U+모바일(214만명), 올레tv모바일(151만명) 등이 뒤따랐다. 웨이브의 일평균 사용자 수는 80만명으로, 넷플릭스의 일평균 사용자 수 51만명을 앞질렀다. 

물론 출시 초기 공격적인 프로모션에 기댄 일시적 성과라는 평도 적잖다. 양측의 OTT '옥수수'와 '푹'이 합쳤으니, 사용자가 많은 건 당연한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통 3사를 넘어, 국산 OTT 중 가장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넷플릭스를 제압했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평가가 중론이다. 무엇보다 '독점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특정 기업이 지상파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는 것은 OTT 시장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라고 심사했다. 지상파 콘텐츠 독점을 추진하던 SK텔레콤의 계획은 크게 틀어진 셈이다. 

<사진출처=넷플릭스>
<사진출처=넷플릭스>

◆ LG유플러스, 귀인을 얻다

SK텔레콤이 천자를 옹립한 위나라라면, LG유플러스는 촉나라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품고 비상한 것처럼, LG유플러스도 '귀인' 넷플릭스를 얻었다. 

지난 2016년 1월 국내 입성한 넷플릭스는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능력은 두말할 것 없이 출중했으나, 국내 인지도가 모자랐다. 때를 만나지 못한 '와룡(臥龍)'이었다. 

이에 넷플릭스는 협력자를 모집했고,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와 협약을 맺었다. 당시 LG유플러스는 IPTV 후발주자로 '세력'이 약했다. LG유플러스는 자사 IPTV에 '플랫폼인플랫폼(PIP)' 방식으로 넷플릭스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했다. PIP는 플랫폼 내에 플랫폼을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효과는 확실했다. 올해 1분기 LG유플러스 IPTV 가입자는 전년(367만 2000명) 대비 13% 증가한 414만 9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넷플릭스 탑재가 IPTV 가입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넷플릭스도 지난 2018년 초 약 40만명 이던 유료 이용자가 올해 10월 200만명을 넘겼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다. 

물론 LG유플러스는 아직 자체 신규 OTT 출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OTT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9월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이 미국 넷플릭스 본사에 방문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28일 열린 KT 신규 모바일 OTT '시즌'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발표를 맡은 김훈배 KT 뉴미디어사업단 단장. (사진=전다윗 기자)
28일 열린 KT 신규 모바일 OTT '시즌'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발표를 맡은 김훈배 KT 뉴미디어사업단 단장. (사진=전다윗 기자)

◆ KT, 바탕은 좋긴 한데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긴 쉽지 않다. 물론 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촉나라를 위주로 썼으나, 정사는 조조의 위나라를 중심으로 서술됐다. 수많은 재평가가 이뤄져 '조조 리더십'을 다룬 책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한 가지 확실한 대목은 오나라는 이러한 논의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장강 등 천혜의 요새를 가졌다고 평가받지만, 그뿐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아닌 주변만 맴돌았다.

KT를 보면 오나라가 떠오른다. KT의 IPTV 점유율은 지난 9월 기준 46.6%로 독보적 위치에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20%대다. 약 800만명에 달하는 IPTV 가입자를 OTT 서비스로 유도할 수 있다면, KT도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아쉽다. KT는 스스로 "이통 3사 중 OTT 꼴찌"라고 자평할 정도로 뒤처져있다. 

지난달 내놓은 신규 OTT 서비스 '시즌'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한 승부수다. KT는 5G와 AI를 활용한 초고화질, 초저지연, 초고음질 서비스로 타 OTT와 차별화를 꾀했다. 시즌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구현모 KT 미디어부문장은 "IPTV와 인공지능TV에 이어 모바일 미디어에서도 국내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기 위해 지난 1년간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약점은 역시 콘텐츠였다. 향후 자체 콘텐츠 투자 규모나 전략 등을 내놓지 않았다. 구체적인 수익 모델도 없었다.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 유치에 힘쓰겠다'는 말뿐이었다. 

◆ '콘텐츠 유목민' 잡아야 중원 패자(霸者) 된다

국내 OTT 시장에 참전한 이통 3사의 결정적인 약점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빈곤으로 요약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한국 콘텐츠산업을 결산하며 '콘텐츠 유목민'이 OTT 소비자의 대세라고 분석했다. 콘텐츠 유목민은 채널이나 방송사에 관심 없고, 선호 기준이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그 자체인 소비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콘텐츠 유목민은 플랫폼을 병행 사용해 원하는 콘텐츠를 즐기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닐슨코리안클릭이 지난 1일 발표한 '세대별 모바일 동영상 앱 이용 행태 분석'에 따르면 모든 연령층이 평균 2개 이상의 동영상 앱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대부터 40대까지 동영상 앱을 하나만 사용하는 비율은 20%를 밑돌았다. 

향후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더 많이 확보하는 OTT 서비스가 '난세'를 제압하고 중원의 패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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