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19.12.14 12:31
구자경(왼쪽) LG그룹 2대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 (사진제공=LG그룹)
구자경(왼쪽) LG그룹 2대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 (사진제공=LG그룹)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14일 별세한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으로 전자와 화학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1950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69년 말 고 구인회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이듬해인 1970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이후 25년간 LG그룹을 이끌면서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며, 연평균 50% 이상의 매출신장을 견인했다. 실제 구 명예회장이 취임한 1970년 LG그룹의 매출 260억원에서 1995년 3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회장 재임 당시 구 명예회장은 꾸준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고, 해외 진출을 통해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덕분에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기틀을 닦았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을 강조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과 연구개발뿐이라는 것이 지론이었다. 그가 재임기간 만든 연구소가 70여 개에 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구 명예회장이 지수초등학교 교사였을 때부터 싹텄다고 한다. 미래에는 틀림없이 기술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고, 기술력 양성을 교육 중점목표로 삼았다. 연구소가 없었던 시절 구 회장이 공장을 순방해서 가장 먼저 보고 받는 것이 신제품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현장의 연구진들을 만나 신제품 개발의 진전과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즉각적인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의 이 같은 노력은 연구개발(R&D) 인재를 중시하는 LG 기업문화의 뿌리가 됐다.

퇴임 후에도 구 명예회장의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1995년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해 기초산업 분야 전문인력을 육성했다. 또 LG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섰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5월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아내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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