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19.12.17 05:40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시스템이 미흡해 생긴 문제입니다"

지난 9일 국회서 열린 'e스포츠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박준규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대표는 이같이 답변했다. 'e스포츠 카르텔' 문제를 지적한 팬들에게 한 답변이었다.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벌어진 '사고'라는 설명이다. 

해당 토론회는 일명 '카나비 사건'으로 불거진 e스포츠 불공정 계약 관행을 뿌리 뽑고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개최됐다. 

카나비 사건은 카나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서진혁(19) 군이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의 강요·협박에 의해 '노예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그간 쉬쉬하며 덮어왔던 문제가 수면으로 떠 올랐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업계 전반에 뿌리내린 폐단을 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의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곪아온 e스포츠 업계 수뇌부부터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지적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커졌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고, 이미 썩은 물이 다른 물을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더해 불공정 계약 이상으로 논란의 중심이 된 김대호 그리핀 전 감독과 논란 당시 그리핀 소속이던 '도란' 최현준 선수에게 내려진 징계에 대한 해명도 없었다. 

현재 카나비 사건을 폭로한 김 전 감독에게 내려진 징계의 '보복성'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을 넘겨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최현준에게 '고의게임방해'란 명목으로 내려진 징계도 다수의 e스포츠 팬들은 보복성으로 보고 있다. 지난 13일 한 e스포츠 팬은 '최현준 선수 징계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라이엇게임즈코리아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질의응답 시간에 마지못해 '시스템의 문제다. 안타깝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을 뿐이다. 

한국 e스포츠 판은 기형적이다. 규모 자체만 보면 당당히 '프로 스포츠'라고 칭할 만하다. 지난 2018년 기준 시장 규모 1000억원을 넘겼고, 프로게이머 평균 연봉은 전년 대비 80% 증가한 1억 7558만원이다. 같은 기간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선수 평균 연봉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액수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국내 프로스포츠 종사자 중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반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듯이, e스포츠는 규모에 걸맞지 않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중이다. 몸은 다 컸으나, 정신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팬들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청원을 비롯해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리그 스폰서인 우리은행 측에 '후원을 끊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시작할 예정인 '리그 오브 레전드 케스파컵'부터 불매를 시작하자는 목소리도 적잖게 나온다.

e스포츠를 포함한 프로스포츠의 근간은 팬이다. 컴퓨터 게임으로 관계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도 '팬들이 있어서'다. 그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팬들이 없다면 게임은 생산성 없는 오락에 불과하다. 

아, 그리고 한 마디 묻고 싶다. 그 미흡한 '시스템' 만든 분들이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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