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9.12.23 23:1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인적자본개발 고도화해야 출산율 올라가고 고령화 문제도 해결 가능”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우리는 아이가 필요하다.”

복지국가 노르웨이 수상이 출산율이 1.72로 내려가자 국민에게 했던 호소다. 세계금융위기가 끝났는데도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아 성장은 물론 복지도 지속할 수 없다며 출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딴판이다. 저출산은 여전히 입으로만 걱정해왔다. 이런 사이에 고령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이 뚝 떨어지고 예산의 1/3을 복지에 투입해도 문제는 더 악화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만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말을 들을까 지난 30년 동안 뒷짐만 지다 보니 인구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출산을 호소하지 못했고, 출산 억제정책이 국민 호응으로 성공했던 자신감도 묻어두고, 엉뚱한 정책으로 시간만 보냈다.

한국은 출산율이 0.88로 떨어져 세계에서 가장 낮았던 홍콩(0.90)보다 아래다. 그러면서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동시에 고령층의 빈곤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고령층의 빈곤율은 45.7%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4배 정도 높아 고령화가 빈곤화로 되는 나라가 되었다. 출산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고, 출산율은 소득이나 여성의 학력이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는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

반면, 고령층의 빈곤은 그렇지 않다. 교육과 노동 등 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도 한국은 고령화를 저출산의 연장선에서 보고 저출산처럼 사회복지 강화로 대응했다. 그러나 OECD(2016) 지적대로 효과는 작고 재정만 악화시켰을 뿐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평균 소득을 전체 인구와 비교하면 한국은 68.8%로 선진국보다 30%포인트, OECD 평균보다는 20%포인트 정도 낮다. 한국은 고령화의 소비감소 충격이 크고 이에 따라 투자축소가 커지며 성장이 그만큼 둔화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행(2017)의 전망대로 고령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경제성장이 크게 차이가 난다. 지금처럼 가면 성장률이 2026~2035년 0.4%로 정지하나, 고령층의 노동생산성이 2016년 수준으로 유지하기만 해도 0.4~0.8% 상승한다고 전망한다.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수준으로 올라가면서 기대되는 성장률 상승치(0.3~0.4%)보다 훨씬 높지만, 고령층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은 아예 찾기도 힘들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관통하는 문제는 일자리다. 선진국 중에서도 출산율이 높은 미국과 스웨덴 등 북부 유럽은 청년층의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낮고 반면, 출산율이 낮은 남부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높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결혼과 출산이 비결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진국은 나이가 들면서 직장의 안정성이 꾸준히 올라가고 반면,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현재 직장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한국은 최대 30%로 OECD 평균(60%)의 절반 정도다. 반면, 6개월 이하 근무하는 사람의 비율은 30-34세에 최저 수준에 도달한 이후 증가하다가 55세를 넘으면 증가 폭이 커지는데, OECD 평균은 정반대로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계속 감소하고 60세를 넘으면 더 빠르게 감소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관행은 저출산과 고령층 빈곤의 주범이다. 직업교육을 받는 청년 비율이 한국은 10% 남짓해 OECD 평균의 1/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청년은 일하는데 필수적인 숙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임금과 고용 관행도 직장생활이 숙련 형성과 거리가 한참 멀게 만든다. 선진국은 임금이 맡은 일에 따라 결정되고 반면, 우리는 입사한 이후 근속기간에 따라 결정되므로 숙련 형성에 관한 관심이 떨어진다. 또 고학력화되면서 첫 직장을 구하는 시간은 늦어지고, 게다가 기대하는 급여 수준은 높아져 취업이 어렵고, 취업한 이후에는 직장 이동이 많다. 일하면서 숙련을 축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점 더 저임금 일자리로 옮겨가게 된다.

취업은 30세 전후, 퇴직은 50세 전후, 은퇴는 70세 전후. 우리나라 평균 직장인의 모습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가계지출의 8% 정도를 사교육비에 들였으나 사회생활은 비정규직으로 출발하고, 이들의 60% 정도만 정규직으로 자리 잡는다. 여성은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아졌으나 취업이 남성보다 어렵고, 취업에 성공해도 출산을 한 이후에 원래 직장은 물론 노동시장 복귀가 어렵다. 정년은 60세지만 공무원 등을 제외하고는 채우지도 못한다. 급여는 호봉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지만, 생산성과 비례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용불안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조기 퇴직하고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서 소득은 절반으로 감소하고 결국에는 노후 생활을 빈곤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철학의 빈곤 그 자체다. 내세운 정책들은 저출산, 고령화, 빈곤화의 악순환을 외면하고 있다. 출산장려나 고령층의 탈(脫)빈곤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고, 양성평등과 복지 평등을 선전하고 있을 뿐이다. 저출산이 가져오는 삶의 생태계 파괴와 이에 따른 미래 세대의 부담이나 나라의 비극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임승차와 공유지의 비극을 키우는 셈이다. 게다가 고령화 문제는 아예 관심밖에 있다. 소득과 생산성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직업훈련을 받고 싶은 고령층의 비율(43%)이 OECD 평균(36%)보다 높고, 신기술 적응 잠재력을 보여주는 인터넷 활용도가 60대도 82.5%(통계청 2018)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구학자들은 21세기 들어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떨어지던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공통점에 주목한다. 기술혁신 등에 따라 인적자본개발이 고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교육은 물론 노동 관련 제도와 정책을 국민 개개인의 숙련개발 욕구에 부응하고, 실현을 뒷받침하도록 환경을 개선해왔다. 또 세계적인 고령화 학자들은 고령화의 충격이 선진국도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른데 주목한다. 고령층이 가진 경험 등을 인적자본으로 보고 고령층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는 성장률의 둔화나 빈곤화 문제가 작았고 반면, 복지확대로 해결한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은 재정위기와 경제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 길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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