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9.12.26 23:35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노동개혁 실패가 고비용-저효율 함정에 빠뜨려…세계화 맞춰 제도 바꿔야 성공 가능”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가 인도 반도체공장을 완공하는 자리에 참석해 축사를 해주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투자한다고 발표할 때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있던 문 대통령은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 좋아했다.

이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양대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과연 박수를 칠 일인가. 우리의 일자리가 해외로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수치며 좋아할 얘기는 아니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가 미국에 투자한다고 하자 백악관으로 초대해 파격적으로 환대했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대기업 회장들을 대거 호텔로 초청해 미국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다른 나라로 나가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난리다.

우리는 어떨까.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망해가는 데도 항의는 고사하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이 기술을 빼간다면서 무역전쟁도 불사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이 한국의 기술과 전문 인력을 빼가도 눈을 감았다.

우리나라의 세계화는 시간이 갈수록 초라해져 왔다. 대기업과 제조업은 수출,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내수라는 도식화된 구분은 지난 30년 사이에 무너졌다. 세계화가 디지털기술을 만나 꽃을 피우자 중소기업과 서비스업도 시장을 해외로 넓혔지만 우리나라는 그대로였다.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는 낙후되었던 부문이 활기를 찾으면서 이익이 경제 전반에 퍼졌다. 미국은 서비스업이 1990년 이후 20년 사이에 수출이 5배 정도 증가해 주력산업이 되었다. 독일은 중소중견기업이 조용하게 급성장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히든 챔피언이 되어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은 디지털 강국과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수출 규모는 커졌으나 세계화는 제조 대기업의 잔치였다.

삼성 등 제조 대기업이 세계화로 날개를 달고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반쪽짜리 세계화에 도취 되었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세계화와 담을 쌓았다. 수출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은 15%, 중소기업은 18% 정도로 선진국 평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조 대기업이 무대를 해외로 옮기고 채용을 줄이자 고용 비중은 서비스업이 75%, 중소기업이 90%에 근접할 정도 급증했다. 결국에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과당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임금은 대기업과 제조업 대비 5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주요 선진국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세계화로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높여 임금이 대기업과 제조업 대비 80% 정도로 올라갔다.

세계화의 대차대조표는 나라마다 달랐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냉전을 대체하는 국제 질서로 세계화를 주도했고, 유럽은 EU(유럽연합)를 만들었다. 경제의 국경을 허물고 상품은 물론 사람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평화가 도래하고 국익도 넓힐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최대 승자는 중국이었다. 개혁개방이라는 제도가 세계화를 만나 중국의 경제력은 급성장했다. 중국이 첨단 기술까지 확보해 군사 대국이 되면서 미국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안보도 위협받게 되었다. 미국은 세계화 덕분에 서비스업 일자리가 급성장했으나 중국으로 유출된 자본과 기술은 부메랑이 되었고, 세계화의 불만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나타났다.

세계화로 각국의 일자리 지도가 바뀌었다. 세계화에 맞게 노동시장 제도를 바꾼 나라는 일자리가 많아졌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실업이 증가했다. 독일은 동부 유럽과 중국 등으로 빠져나간 제조업 일자리를 서비스업으로 채웠다. 이를 위해 제조업 중심의 노동시장 제도를 서비스업에 맞도록 유연화했다. 또 4차산업혁명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여 신발업체 아디다스처럼 해외로 떠났던 기업이 독일로 복귀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스페인은 경직적인 노동시장 제도를 유지하다가 일자리가 유출되어 실업이 무려 30%로 치솟았다. 2010년대 들어와 뒤늦게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하면서 유출은 줄였지만,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정부가 이들의 국내 복귀를 호소하는 지경이 되었다.

반쪽짜리 세계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뿐 아니라 경제와 제도의 불일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화에 맞추어 제도를 바꾼 나라는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경제와 제도의 불일치로 실패했다. 제도가 경직적이면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기존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이익을 공유하기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경제는 세계화를 향했으나 제도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민주화로 정치, 교육, 노사관계 등에 불신이 커져 제도가 경직화되었다. 불신을 해소한다고 규제가 많아지고 규제의 강화는 불신을 더 키우는 악순환에 빠졌다. 학력이 높아지면 노동시장 참여율이 올라가지만 우리나라는 경직적인 노동시장 제도 때문에 세계화로 일자리를 만드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규제의 족쇄는 우리나라를 세계화의 실패국가로 만들고 있다. 공장 시대의 노동법에다 무소불위한 노동조합의 힘은 노동시장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단절시켰다. 민주화로 대기업 및 공공부문 근로자는 노동조합의 보호막에 들어가 기득권을 누렸다. 이들은 세계화에 따른 구조조정의 압력을 거부했고 이에 따른 고용불안문제를 정부가 해결하도록 요구했다. 정부가 노동시장 제도를 유연화하려 했으나 이들의 반발에 막혀 개혁은 좌절되었다. 이들의 기득권으로 피해를 보는 청년 등을 재정지원으로 달랬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에 노동 개혁의 실패는 경제를 고비용-저효율의 함정에 빠뜨리고, 세계화의 이익을 전체 근로자가 공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문 정권 등장 이후 반쪽짜리 세계화는 실패한 세계화로 치닫고 있다. 반쪽짜리 세계화에 대한 불만에 편승해 소득주도성장을 내걸었으나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근로자는 더 어렵게 만들었다. 중소기업은 최저임금인상과 일률적인 주52시간제도로 인해 뿌리가 흔들리고, 서비스업은 외국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시대와 역행하면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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