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12.30 04:50

근로 유연성 해결 못하면 대량실업 불가피…회사 정보 공유하고 소통하는 상생적 태도도 중요

르노삼성자동차 QM6(꼴레오스)의 유럽 수출 차량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제공=르노삼성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QM6(꼴레오스)의 유럽 수출 차량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제공=르노삼성자동차)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세계경제포럼은 한국이 향후 10년 이내 직면할 가장 큰 위험으로 대량실업을 꼽았다. 일본‧중국은 지진 등 자연재해였지만 한국은 북한의 위협보다 높은 순위로 대량실업이 위험으로 조사된 유일한 나라였다.

완성차 업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노동 유연성과 인건비이다. 상생을 위한 협력적 노사 관계는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비결이다. 상품 개발·공급과 임금 안정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거의 매년 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 토요타는 최근 50년간 노사분규가 단 1건도 없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올해 12년 만에 파업을 진행했지만 50일 만에 노사가 합의안을 타결하며 협력적 노사관계의 토대를 유지했다.  

◆ 경직된 노사관계와 근로 유연성 부족…경쟁력 잃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미국·일본·영국의 노사관계지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동안 한국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평균 노동손실일수는 4만2327일로 일본 245일, 영국 2만3360일, 미국 6036일 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일본보다 172.4배가 높게 나타난 노동손실일수는 노사갈등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파업·태업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동운동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국내 자동차 노동운동가에게 있어 기업의 생산성이나 경영 현실은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라며 “임단협은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이 있지만 노조는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사실상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주요 자동차생산국을 비교해볼 때 198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만 거의 매년 노사분규가 발생하고 있다. 30여년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사분규로 국내 자동차생산은 2011년 466만대에서 2018년 403만대로 떨어져 올해 말 연간 생산 400만대 이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한 노동관련 전문가는 “노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해 생산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결국은 매출 하락이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국내 자동차 산업의 노동환경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본격화된 것도 주목할만하다. 바로 광주형일자리이다.

26일 광주시와 현대차는 각각 1, 2대 주주로서 26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서 광주형 일자리모델이 적용되는 (주)광주글로벌모터스 자동차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직·간접적 고용효과 창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직면해 있는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아 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동되는 2021년 하반기에 가서야 성패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 완성차공장이 생기는 것은 23년 만이다. 그간 외국에 비해 경직된 노사관계와 근로 유연성의 부족으로 경쟁력을 잃어 공장 가동으로 수익을 낼 수 없기에 투자가 중단됐다. 첫 삽을 뜨는 자리인데도 이날 노동계는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차 출신 이사 선임에 반발하면 노동이사제 도입을 요구 중이다. 과연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이처럼 적대적인 노조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존 완성차업계도 더이상 물량 중심의 성장 전략을 토대로 공격적인 모습을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와 자동화설비 등을 통한 변화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인력 감축이 당연시되는 상황이다.

한국지엠 노조가 부평공장에서 파업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지엠 노조)
한국지엠 노조가 부평공장에서 파업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지엠 노조)

◆ 인건비·노동유연성…노·사관계가 중요

선진국 주요 업체 노·사는 과거 위기를 겪으면서 일자리 확보가 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단기적 이득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협력적 관계로 전환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일본 토요타는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이어진 노·사대립은 노사 모두에게 피해라는 것을 자각해 1962년 고용보장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선언한 ‘노·사선언’을 했다. 회사발전이 고용보장의 기반이라는 점을 노조가 인식해 다른 조건을 양보함으로써 가장 먼저 '친경영' 전략을 취했다.

회사는 엔고 등 여건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생산 연 300만대 이상을 선언함으로써 장기간 파업이 없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서 1962년부터 현재까지 무파업을 지속해 글로벌 생산규모와 품질에서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6일 토요타 노조는 모든 노조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호봉제를 개인 평가에 따라 5단계로 나눠 지급하는 성과급제로 변경하는 안을 받아들였다. 어려워지고 있는 경영환경을 감안,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변화를 먼저 시도한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1990년대와 2000년대 경영위기에서 노조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근로시간계좌제, 일자리 공유 등을 채택해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유연화를 수용했다.

독일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사·정이 임금 20% 삭감과 근로시간을 20% 확대한 ‘Auto5000’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국내 일자리를 늘리면서 세계 1위로 발전했다.

더욱이 사민당 슈뢰더정부는 2002년 파견근로 허용, 실업수당 축소, 저임금·단기근로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는 하르츠법을 제정하여 근로 유연화를 지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외생산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도 국내 생산규모를 유지하면서 일자리도 보존할 수 있었다.

미국 GM은 2009년 구조 조정 시 노조는 고용안정을 위해 이중임금제, 파업금지, 노동유연성 강화에 동의하고, 임금동결 및 성과형 임금제를 수용했다. 이후 생산이 2009년 119만대 수준에서 2015년 214만대로 증가했다. 노사는 4년 단위 단체교섭과 프로핏 쉐어링(Profit Sharing, 초과이익 공유제)를 채택해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GM은 노조의 양보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했고, 미국 내 생산량이 2000년 이전 연간 400~500만대 규모에서 2009년 100만대 수준까지 하락했다가 2015년 이후 214만대로 회복했다.

스페인은 한때 근로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당시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로 인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높은 실업률을 야기했다. 르노 스페인 공장은 주변국인 루마니아와 터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르노 본사에 물량 배정을 요구하며 파업 및 시위를 벌려 극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르노공장은 2000년대 폐쇄위기에 처하자 노조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실질임금 삭감, 근로시간 탄력적 운영을 제안하고 회사는 신차를 투입해 생산이 2012년 29만대에서 2016년 58만대로 회복했다. 국민당 라호이 총리는 해고 절차 간소화와 근로유연화 등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2000년 이후 주요 자동차 생산국의 노사분규 비교 (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2000년 이후 주요 자동차 생산국의 노사분규 비교 (자료 제공=한국자동차산업협회)

◆ 노동 관련 법·제도, 주요 자동차생산국과 유사한 수준 개정 필요

김준규 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국내 완성차 업계 노조는 임금교섭 주기 1년, 단체교섭 주기 2년의 기간을 정상적인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매년 노조 집행부의 투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교섭 주기를 4~5년으로 늘려 운영하면 노사분규가 매년 벌어질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산업에서 국내 일자리를 유지·확대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져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복지혜택 등 단기적 이익에 매몰된 대립적 갈등적 노사관계를 청산해야 하며, 노동 관련 법·제도를 주요 자동차생산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개정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산업특성을 감안한 3~4년 단위의 중장기 임금협약을 통해 생산성 범위 내에서 인상 수준을 책정해 인건비 변동 리스크를 축소하는 노력도 뒤따라야한다.

선진국의 파업요건은 폭스바겐 3/4, GM 2/3 이상 찬성해야 하는 등 쟁의행위 절차가 엄격하고, 파업시 대체 근로가 허용되어 파업발생이 거의 없다. 3~4년의 교섭주기와 노조 대표 임기도 4년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도 1년에서 2년 단위로 이어지던 노사 교섭을 4~5년의 신차 개발 기간 등을 고려해 중장기 교섭주기로 전환하고, 교섭대상 및 범위의 명확화로 경영권 침해 등 위법한 단체협약 발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 GM의 경우는 4년 단위 단체협상과 협약기간 만료 이전에 차기 협상을 마무리함으로서 중장기 경영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더불어 쟁위 행위 절차의 엄격성 확보도 필요하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이 파업찬성률 상향조정이 시급하다. 노조의 파업권에 대응한 조치로서 사용자에 대체 근로 활용을 허용해 전면 조업중단에 따른 최소한의 방어수단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노조에게 회사의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사측의  상생적 태도도 필요하다. 협력적 노사관계는 일방적인 한쪽의 태도 변화로는 이루기 어렵다. 4차산업혁명 시기를 맞아 노사 양측은 지속가능한 노동환경과 경영환경을 만드는데 더욱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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