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9.12.30 23:35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일자리 창출 이끌어…잘못된 혁신시스템 전면 개편해야”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납에서 은을 추출하는 신기술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힘으로 일본은 훗날 조선을 침략했고 임진왜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조선은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도자기 기술이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은 도자기로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했다. 여기서 비축된 국력으로 일본은 훗날 조선을 병합했다. 조선의 멸망 원인은 기술이 중요한지 모르고 기술을 개발한 사람을 가렴주구로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잠자던 조선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재산권 보호는 당연했고 과학기술 입국을 천명했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초 빈곤 국가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온 성공의 비결은 기술 혁신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데 있었다. 원자력이라는 획기적인 첨단 기술부터 공장의 생산성 및 품질 향상 운동 등 점진적인 현장 기술에까지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정부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연구기관을 만들고 대학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며 질을 높였다. 그 전통으로 우리나라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GDP 대비)와 고등교육 진학률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덕분에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에서 최상위권에 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 혁신에 대한 의지는 흔들려왔다.

정부는 관료주의에 빠지고, 국민은 직업교육·훈련을 외면하고, 근로자는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멀리했다. 민주화 이후 환경단체, 노동조합 등은 정치세력화되어 신기술에 대해 불안감을 조장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에 빠져 처음에는 원전을 반대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돌려먹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잘못된 정보인 줄도 모르고 탈 원전정책에 목메고 있다. 피땀 흘려 개발한 한국의 원전기술이 중국 등으로 넘어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딱 알맞다. 또 디지털기술이 일자리의 절반을 없앤다는 엉터리 예언이 유독 한국에서 판을 치면서 혁신의 기풍을 스스로 죽이고 있다.

기술 혁신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며,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끈다. EU와 OECD 국가의 경우 경제성장과 기술 혁신의 상관관계는 0.78, 노동생산성과 기술 혁신의 상관관계는 0.58로 매우 높다. 기술 혁신이 왕성한 선진국은 자본과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기술 혁신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늘어 1/2을 넘었다. 또 새로운 일자리가 넘치면서 실업률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이러기에 미국은 물론이고 주요 국가는 ‘기술안보’를 내세우며 자국의 첨단 기술을 보호하고 유출을 방지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물론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가 많으나 성과가 낮아 ‘혁신의 역설’에 시달린다. 생산성이 올라가지 못해 미국의 절반에 머무르고, 기술 혁신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도 마찬가지로 1/4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또 대부분 근로자는 60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50세 전후에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힌 청년의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늘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되었다. 정부의 연구개발사업은 관료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단기성과와 실적주의가 판치며, 중복투자와 유사투자가 넘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노조에 지배되어 연구자보다 직원을 우선한다.

민간의 연구개발도 마찬가지다. 제조 대기업은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으나 현장은 물론 연구소도 노조의 힘에 눌려 있다.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은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은 정부가 주도하고, 제조 대기업을 염두에 두며, 첨단 기술개발에 치중하기에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이 공백에 빠져있다. 게다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가 제조업보다 무려 4배나 많아 민간 자본이 투입되기 어렵다. 그 결과 서비스기업의 혁신 활동은 전체 평균의 1/3이다. 민간의 연구개발투자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은 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로 최하위권이며, 미국과 영국에 비하면 각각 1/4과 1/7 정도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정부의 기술혁신지원정책에 힘입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정부의 연구개발지원비 중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한국이 52%로 독일(32%), 미국(11%)보다 훨씬 높다. 또 기업 전체의 연구개발비 중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이 24%로 미국(15%), 독일(11%)보다도 높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 성과는 매우 낮아 생산성은 대기업의 1/3로 격차가 벌어졌다. 대학입시 중심 교육 때문에 중소기업은 연구개발 하는데 필요한 기술·숙련 인력, 기술의 사업화에 필요한 경영 역량과 마케팅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또 중소기업이 우수인력을 유인할 보상시스템도 낙후되어있다.

근로자의 90% 정도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중소기업의 3/4이 서비스업이다. 기술혁신지원정책의 성과가 국민에게 직접 돌아가려면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기술 혁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교육제도도 대폭 개혁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와 민간, 기업과 대학,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도 조정해야 한다. 대기업은 스스로에 맡기고, 정부는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혁신을 지원하도록 주력해야 한다. 제조업·대기업과 서비스업·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은 특징이 다르고, 산학연협력과 개방혁신이 중소기업에 유리하고, 획기적인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벤처 중소기업은 소수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제조업·대기업의 기술 혁신은 연구실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반면, 서비스업·중소기업은 현장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서비스업·중소기업에 제조업·대기업의 지원기준을 적용하면 기술혁신지원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중소기업은 고객과 소통, 산학연협력, 일하면서 숙련을 키우는 현장 학습, 교육과 훈련, 종업원 인적자본의 무형자산으로 인정, 기술 혁신의 성과에 대한 공유 등이 중요하다. 미국의 중소기업이 급성장하고,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이 히든 챔피언이 되었던 비결도 여기에서 나왔다. 의식도 제도마저도 고장 난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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