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19.12.31 12:04
이주열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총재 (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오늘은 2020년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먼저 지난 한 해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신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의 악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우리 경제를 견인해 왔던 반도체 수출도 큰 폭으로 감소하였습니다. 대외 불확실성 요인의 전개양상에 따라 금융·외환시장이 수시로 높은 변동성을 보였으며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움츠러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우리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2% 내외의 성장에 그쳤습니다. 물가상승률은 수요 면에서의 상승압력이 약화된 가운데 공급측 요인과 정부 복지정책 강화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0%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경기회복을 뒷받침하고 물가둔화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7월과 10월 두 차례 인하하여 연 1.25%로 운용하였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올해에는 세계교역 부진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반도체 경기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보여 국내경제는 완만하나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대외적으로는 그간 글로벌 저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해 온 구조적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보호무역주의 지속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하방위험 요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계층 간 양극화 등이 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습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약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수출중심의 성장에 의존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올해 우리나라가 가장 주력해야 할 과제는 단기적으로 성장세 회복을 도모하면서도 혁신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진전을 고려할 때 양적 투입 확대와 같은 종래의 방식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민간이 창의적 혁신역량을 발휘하여 투자 확대,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율 증진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혁신기반 경제로 나아가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린다면 성장잠재력 확충은 지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이제 우리 한국은행이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주요 업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통화정책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가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운용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올해 국내경제의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하회하고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압력이 약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완화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화정책 완화정도의 조정 여부는 대외 리스크 요인의 전개와 국내 거시경제 흐름 및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통화정책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경제흐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금융·경제 상황 판단지표 확충, IT기술 활용 등을 통해 경제전망의 정도(精度)를 제고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은 경제활동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경제상황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경제 분석 및 전망에 있어 경제주체들의 행태, 그리고 주요 경제변수 간의 관계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정책 커뮤니케이션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저금리·저물가 상황 하에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 목표 간 상충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정책결정을 경제주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판단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을 하회하고 있는 만큼 물가 상황을 면밀히 분석·점검하고 이를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정책여건 변화에 대응한 중장기 과제 연구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최근 주요국에서는 통화정책체계를 재고찰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주요국 중앙은행의 논의 과정을 참고하면서 정책운영체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결정구조와 정책여건 변화를 살펴보면서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에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 점검하고 효율적 운영 방안을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금리정책 여력 축소에 대비하여 중장기적 시계에서 국내 금융·경제 여건에 적합한 금리 이외 통화정책 수단의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금융안정에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금융·외환시장의 불안 발생 가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에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금융시스템의 리스크 점검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금리에 따른 수익추구 행위가 부동산이나 위험자산으로의 자금쏠림으로 이어져 금융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가계와 기업의 신용위험 증대 가능성과 금융기관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디지털기술 발전으로 지급결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급결제의 중추기관으로서 관련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개선하고 기술발전 속도에 맞추어 감시체계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급결제 혁신 기술에 대한 연구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관련하여 연구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국제기구에서의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향후 지급결제의 근간이 될 차세대 한은금융망 구축사업도 금년 중 차질없이 완수해야 하겠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최근 금융·경제 여건 변화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복잡하며 그 전개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시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은행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환경의 변화에 철저히 준비하고 올바로 대응해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정책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선제적이고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연성과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론과 관행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열린 자세로 외부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당면 과제에 대해 현실적합성 있는 대안을 적극 제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한국은행 ‘비전 2030’에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전략이 담겨야 하겠습니다. 다음 10년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내용도 이전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환경변화를 내다보고 이에 맞추어 중앙은행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에 앞서 조직과 인사 운용체계, 업무방식을 중앙은행의 새로운 미래상에 부합하도록 재설계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함께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위기도 지혜롭게 극복해온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경제가 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임직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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