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1.03 23:0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운동권 세력과 결탁한 노조가 사회적자본 형성 막아…신뢰와 협력이 혁신의 핵심요소”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한국의 전기·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은 모두 일본에 한참 뒤처져 시작했지만 현재의 결과는 판이하다. 삼성과 LG 등 한국의 전기·전자업체는 1990년대 들어와 일본의 벽을 무너뜨렸다. 격차가 벌어지고 급기야 일본의 전기·전자업체가 몰락하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반면, 현대·기아차 등 한국의 자동차업체는 도요타 등 일본의 자동차업체의 벽을 넘지 못했고 오히려 몰락의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의 자동차업체는 일본보다 임금은 10% 높은데 생산성은 10% 낮고, 수익성과 생산성이 모두 뒤져 국내생산의 적자를 해외 생산으로 보충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공장 생산성은 국내공장보다 30~40% 정도 높고, 임금은 해외가 국내보다 30~40% 이상 낮다.

전기·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엇갈린 운명은 노사의 신뢰와 협력에 있었다. 전기·전자산업은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생산성이 높지만, 자동차산업은 반대였다.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안정적이나 한국은 툭하면 파업을 벌였다. 독일이 통일의 후유증으로 경제가 악화해 유럽의 병자 취급받았다가 다시 일어나게 된 비결도 바로 노사의 신뢰와 협력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뢰와 협력은 노사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전기·전자산업 강국으로 등극하게 된 이면에는 세계 최고의 첨단 정보통신 인프라가 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일찍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미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신속하고도 대담하게 정보통신 인프라를 깔 수 있었던 비결도 민관의 신뢰와 협력에 있었다.

신뢰와 협력은 집단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공공재적 가치관이다. 학문적으로는 사회적 자본이라 부르는데 신뢰와 협력이 다른 사람(집단)에 개방적이면 갈등은 줄이고 거래를 촉진하며 혁신을 일으키는 핵심 요소가 된다.

반대로 폐쇄적이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개방적 사회적 자본이 많은 나라는 소득 수준이 높고 소득 불평등은 작다. 북부 유럽이 이런 경우인데 노사협력과 민관협력이 잘되어 기술과 정책의 혁신 능력이 높고, 고용 관행은 유연해 노동력의 이동이 순조롭고, 출산율은 높다. 반면, 사회적 자본이 폐쇄적인 남부 유럽은 반대로 성장률이 낮고 실업률은 높고, 노동시장이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단절되어 소득 불평등이 크고, 출산율은 낮다.

사회적 자본은 제도의 산물이다. 좋은 제도는 좋은 사회적 자본(신뢰와 협력)을 만든다. 경제학자들의 수많은 연구에 의하면 재산권보호와 법치주의는 좋은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일한 만큼 잘 살고, 혈연과 지연, 정파 등에 따라 끼리끼리가 아니라 기회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돌아가 혁신을 촉진한다. 또 민주주의와 신뢰는 선순환의 관계를 보이지만 사람(집단)들의 관계가 폐쇄적이면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가 그렇다. 사회적 자본의 대가인 시카고대학의 콜만 교수는 ‘인적자본 형성에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논문(1988)에서 한국 민주화를 주도한 좌파 운동권 세력이 학연·지연·교회로 엮여 폐쇄적이라고 했는데, 예상대로 이들은 편을 지어 반대편을 공격하고 사회불신을 키웠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 세력은 정치판을 주도했고, 노동계는 이들과 연계되어 정치세력으로 컸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시위와 파업 등을 벌이면서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내부 결속력은 키웠다. 이뿐 아니라 정책의 결정 무대도 이들에게 기울어짐에 따라 정부의 정책은 편향화되었다. 경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재산권을 위협하고 반재벌 논리로 대기업을 누르면서 노조의 힘은 키워줬다. 반면, 정부의 권위는 떨어져 각종 개혁이 지체되거나 실패했다. 정책이 노동계와 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집단에 휘둘리면서 정부의 정책 협상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집단은 소외되고 정책 협상에서 배제되면서 경제는 물론 사회도 경직화·양극화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의 삶의 질(well-being) 지표를 보면 한국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고, 사회적 유대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에 있다. 정책의 불공정성에 대한 일반 국민 인식도 OECD 평균보다 높고 청년층은 더 높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일자리가 청년층은 줄고, 고령층은 일하는 사람이 많아도 저임금·고용불안으로 빈곤층 비율이 매우 높다. 노동계의 비정규직 금지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비정규직 보호법이 도입되면서 노조가 장악한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비정규직이 감소했으나 중소기업은 늘었고, 30~40대는 줄었으나 청년층과 고령층은 늘었다.

이런 모순은 중소기업문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가 늘었으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신을 키워 거래가 축소되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 커졌다.

세계적 학자들은 한국이 고성장한 비결 중의 하나로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과 정보교환을, 빈곤한 나라의 근본 원인으로 재산권 침해와 법치주의 부재를 꼽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 신뢰와 협력이라는 비공식적인 제도의 중요성을 망각했다. 법 만능주의에 빠져 규제 만들기에 몰두해 남미와 남부 유럽에서 보듯이, 경제성장과 소득분배의 후퇴뿐 아니라 민주주의 결핍에 처했다. 법이라는 공식적인 제도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1993)인 노스교수의 설명대로, 신뢰의 부족에다 정보의 불완전성과 지각의 왜곡이 겹쳐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못하는 나쁜 제도라고 해도 개혁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 개혁이 좌절하고 포퓰리즘은 득세했다.

운동권 출신이 장악한 문재인 정권의 집권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재산권 침해와 법치주의 위협이 공공연하고,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사람중심경제 등 그럴싸한 용어로 국민을 현혹하며, 잘못된 통계로 실정을 호도하고, 노사와 민관의 신뢰와 협력을 저해하는 자의적인 행정이 판치면서 나라의 운명은 기울어져 가고 있다. 2020년이 밝았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이겨내는 한 해를 만들어 희망의 불씨를 살리자. /글=김태기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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