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01.04 04:00

신입사원이 발언하고 그룹 총수가 경청하는 '파격' 신년회 돋보여

그룹 총수 관련 이미지. (사진출처=pxhere)
그룹 총수 관련 이미지. (사진출처=pxhere)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새해가 되면 많은 재계 총수들이 관례처럼 신년사를 낭독했다. 엄숙한 분위기의 대강당에서 시무식을 진행하며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다소 형식적이고 의례적이었던 시무식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는 일방적으로 신년사를 읽어 내려가던 과거 형식에서 벗어나, 구성원 간 대담이나 동영상 메시지 전달로 대체하는 등 파격적인 형태가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신입사원이 발언하고 이를 그룹 총수가 경청하는 모습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과감한 혁신이자 관행 파괴로 풀이된다.

이같은 변화는 구성원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더이상 구태의연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독특한 기업 문화를 추구하려는 데 있다.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보는 LG의 온라인 신년사

LG그룹은 기존 한정된 공간에서 임직원들이 모여 하던 오프라인 시무식 형태를 모바일과 PC 등 디지털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신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간 LG는 1987년 LG트윈타워 준공 이후 31년간 여의도에서, 지난해 초에는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700여명이 모여 새해 모임을 진행했었다.

이같은 변화는 소탈하고 실용주의적인 구광모 LG 대표의 경영방식과 맥을 같이 한다. 신년사 영상을 통해 임직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를 비롯한 LG구성원 전체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구 대표의 영상메시지는 글로벌 구성원을 위해 영어 자막과 중국어 자막을 각각 넣은 영상 버전도 전송됐다. 전 세계 임직원들은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신년사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지난 2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직원들이 구광모 LG 대표의 디지털 신년 영상 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LG)
지난 2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직원들이 구광모 LG 대표의 디지털 신년 영상 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LG)

◆구광모 LG 대표, 소탈하고 실용주의적 경영 추구

구광모 LG 대표는 젊은 그룹 총수로서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실례로 LG전자는 지난 2016년부터 '팀장 없는 날'을 운영하며 자율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조직 책임자가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리더가 돼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조직 책임자는 재충전 기회를 가져 휴가에서 복귀한 뒤 업무 집중도와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팀장 없는 날'의 긍정적인 효과로 인해 '리더 없는 날'도 생겼다. 지난해 7월부터는 참여 대상자가 팀장에서 임원을 포함한 조직 책임자 전체로 확대됐다.

구광모 LG 대표의 디지털 신년 영상 메시지 스틸 컷. (사진제공=LG)
구광모 LG 대표의 디지털 신년 영상 메시지 스틸 컷. (사진제공=LG)

또한 LG전자는 지난 2018년 9월부터 자율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임직원은 딱딱한 정장 차림에서 벗어나 청바지, 운동화 등 보다 간편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근무하고 있다. 자유로운 복장은 기존의 격식에서 벗어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돼 유연하고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고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을 '회의 없는 월요일'로 정해 직원들이 월요일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에 출근하지 않도록 했다.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하고 주말에는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LG관계자는 "구 대표의 올해 신년사는 고객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 등 기존 관행을 넘어서야 함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SK의 '파격' 신년회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별도 신년사 없이 일반 시민과 고객, 구성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는 파격적 방식의 신년회를 여는 것으로 새해 경영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이해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하면 구성원의 행복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주요 경영진들은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20년 신년회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제언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 '2020 행복경영'을 주제로 한 SK 구성원 간 대담도 진행됐다.

특히 올해는 대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입사원이 최 회장을 대신해 토론을 정리하고 2020년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신년회를 마무리지었다.

그간 그룹 총수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신입사원에게 한 해 비전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왔던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제는 반대로 신입사원이 발언하고, 그룹 총수가 청취하는 것을 보면 실로 파격적인 변화다.

SK 관계자는 "이번 신년회는 최 회장이 '행복토크' 등을 통해 강조해온 행복경영에 대해 구성원들이 느낀 소회와 고민을 공유하고 실행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20년 SK 그룹 신년회에서 구성원 대표들이 행복을 주제로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20년 SK 그룹 신년회에서 구성원 대표들이 행복을 주제로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구성원 행복'을 경영의 핵심 화두로 세운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구성원의 행복을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명시한다. 이같은 철학은 지난해 실시된 '행복토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19일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 초 다짐한 구성원과의 행복토크 100회를 완주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신년회에서 "구성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우리와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이 더 커질 방안을 논의하는 행복토크를 연내 100회 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행복토크는 격식을 파괴한 진행방식과 최 회장의 진솔한 답변 등으로 숱한 화제를 모았다. '복면가왕' 형식을 빌린 패널 토론이나 '보이는 라디오' 방식의 공개방송 토론 등으로 다채롭게 열렸다. 음식점, 주점 등에서 하는 '번개 모임' 형식의 야외 토크도 4차례 열렸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의 행복토크 시작과 함께 그룹 경영의 핵심 화두로 세운 행복경영이 빈말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99차 행복토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99차 행복토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SK는 그룹 경영철학과 실행원리를 집대성한 'SKMS(SK Management System)'에 경영의 궁극적 목적을 구성원의 행복으로 명시하는 것을 뼈대로 한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구성원들이 역량개발을 행복 증진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기획한 그룹 교육 플랫폼 'SK 유니버시티(가칭)'가 올해 초 출범한다.

행복토크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 "회사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엔 물음표였지만 느낌표로 바뀌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정에서도 우리 가정의 구성원이자 CEO로서 행복토크를 해보려 한다" 등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시무식은 총수 또는 최고위급 경영인의 마인드를 보여주는 다양하면서도 파격적인 형태를 띤 것이 특징"이라며 "앞으로 기존의 틀에 박힌 형태를 탈피해 해당 기업만의 독특한 문화를 추구하는 시무식이 보다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년사 키워드㊦] 편에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