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01.06 14:20

8~1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 3층

이혜선 작가의 '공간-그리움' (사진제공=한국여류조각가회)
이혜선 작가의 '공간-그리움' (사진제공=한국여류조각가회)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여성이기 때문에 남다른 고민과 어려움이 운명처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뭉쳐보자는 힘도 컸습니다. 또 여성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관심도 많다고 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저희는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무진 애를 써왔습니다"

김정숙 초대 한국여류조각가회장은 지난 1975년 열린 '제2회 한국여류조각가회전' 인사말에서 '여성이기 때문에'를 수없이 되뇌었다. 여성과 조각. 둘의 성공적인 조합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그 예가 드물다. 하물며 1970년대엔 그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이 컸다.

지난 1974년, 김 초대 회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가 주축이 돼 '한국여류조각가회'를 창립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부장적이던 1970년대, 남성이 대부분인 조각계에서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한계를 규정 짓는 여성 조각가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도 팽배했다. 1세대 여성 조각가들은 여성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작가정신을 고취하자는 취지로 뭉쳤다.

창립전은 조각을 전공한 작가 33명의 적극적인 참여로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사실상 화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조각가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매년 열렸다. 

올해는 오는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 3층에서 '2020 여류조각회' 'Sculpture Winter Masterpiess'전이 펼쳐진다. 어느덧 47주년이다. 심영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비롯해 김효숙, 고경숙, 이종애, 신은숙, 이혜선, 이진희, 김희용 등 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중견작가 이혜선은 선화랑 3층 그룹전과 함께 2층에서 개인 초대전 '공간-가치를 담다'도 따로 연다. 이혜선은 개인 초대전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현대 미술의 만남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학 시절, 어머니가 늘 챙기시던 생일날 고봉 밥그릇. 그 밥그릇이 식지 않게 쌌던 보자기. 고향의 하늘과 산과 들. 한국적인 모습과 색감. 생활 속에 녹아있는 습관이나 관습에서 느껴지는 평범함은 어느 순간 가장 가치 있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심영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의 '메트릭스 가든' (사진제공=한국여류조각가회)
심영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의 '메트릭스 가든' (사진제공=한국여류조각가회)

'Sculpture Winter Masterpiess'전은 참가한 조각가들이 각자 명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을 한두 점씩 출품한다. 

심 회장은 '메트릭스 가든'을 선보였다. 미술 장르의 경계를 넘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심 회장은 주로 종교, 우주, 생명, 환경과 같은 큰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작품 구석구석에 자신의 삶을 오롯이 녹여 담아내려 한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고정숙 한국여류조각가회 5대 회장은 우리나라의 유물, 유적에서 받은 영감을 재해석한 '한국의 얼'을 선보였다. 신은숙 한국여류조각가회 11대 회장은 대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간여행자'를 출품한다. 김희용은 자연석에 나선을 새긴 '새기다-氣'를 통해 자연석에 내재된 기운과 생명력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 밖에도 50여 명의 중견·신인 작가들이 자신 있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전시회의 수익은 미혼모를 돕는 데 쓰인다. 한국여류조각가회는 앞서 지난 2011년과 2018년에도 기획전을 열고 미혼모를 도왔었다. 

심 회장은 임기 내 마지막 전시회인 2020 여류조각회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바람이 있다고 했다. 심 회장은 오는 2월 말 제14대 회장에서 물러난다.

그녀는 "후배들에게 바람이 있다. 여류조각회가 글로벌해졌으면 한다"며 "젊은 작가들이 의욕적이고 역동적이게 여류조각회를 이끌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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