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1.06 23:0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공정기준 자의적 해석하면 혁신 막고 경제 생태계 교란…포퓰리즘 도구로 사용하면 안돼“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삼성에 기댄 한국 경제

정부가 삼성 때리기에 여념 없는 가운데 작년 수출은 10% 이상 감소했으나 삼성의 작년 해외 매출은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문재인 정권이 공정경제를 내세우며 삼성을 적폐로 몰아 고위임원들은 줄줄이 처벌받았고 삼성의 비노조경영 전통도 무너졌다. 하지만 투자나 성장 격감 등의 뉴스가 나오면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행보라며 삼성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삼성은 대규모 투자나 고용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만 그런 게 아니라 정권의 눈에 벗어나 떨고 있는 대기업은 다 그랬다. 공정경제가 대기업의 손발을 묶으면서 그냥 계획으로 끝나고, 한국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기댈 곳도 사라질 것이다.

◆중소기업을 경제의 짐으로 만든 한국

문 정권은 대기업은 갑, 중소기업은 을이라며, 중소기업보호를 공정경제라 선전했다. 갑을관계라고 갈등을 부추겨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을 받기 더 어렵게 되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대기업과 똑같이 적용해 중소기업이 무너지도록 만들었다. 노동뿐 아니라 환경 등 대기업이나 감당할 수 있는 규제를 중소기업에 그대로 적용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는 게임으로 내몰고는 선심으로 불만을 무마하려고 했다. 임대료, 수수료, 통신료를 내리고, 일자리안정자금까지 재정지원을 확대했으나 중소기업은 갈수록 저생산성의 덫에 깊이 빠져갔다.

◆모순에 빠진 공정경제

중소기업 보호한다며 정책자금 살포하는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커졌다. 중소기업정책자금예산은 금년도에도 20% 올라 사상 최대인 4조6000억 원. 한국개발연구원이 분석한 중소기업정책금융의 효과(2016)를 보면 생존율은 5% 남짓 높이고, 부가가치는 5% 가까이 떨어뜨렸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문제는 자금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출 이자율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한국이 가장 작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대출 보증은 한국이 GDP의 4% 이상, 일본을 제외하면 최고로 많다. 은행의 기업대출 중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한국은 70% 이상, 미국·영국 등은 20% 정도다. 또 중소기업대출에서 정부의 신용보증 비중도 한국이 15%, 미국·영국 등은 5%에 지나지 않는다.

공정경제에 대한 착각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대기업 때리기·중소기업보호는 고물가와 세금 낭비뿐 아니라 일자리 문제도 악화했다. 한국은행의 최근 자료(2019)를 보면 서울의 물가수준은 조사대상 337개 도시 중에서 26번째로 최상위권이다. 반면, 대기업 고임금 일자리는 줄고 중소기업 저임금 일자리는 많아 한국은 임금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에서 20위로 중하위권이다. 이뿐 아니라 경쟁력을 상실한 대기업에, 조선·자동차부터 은행에 이르기까지, 예사로 공적자금을 지원해 그 규모는 1997년 11월부터 작년 9월까지 규모가 168조7000억원, 그중에서 70% 정도만 회수해 52조원을 날렸다.

◆공정은 주관적이다

공정은 중요하나 그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경제생태계를 교란할 여지가 크다. 이래서 대부분 나라는 반독점법이나 경쟁 촉진법으로 공정을 달성한다. 공정을 법치주의 틀 안에 두고, 그 기준은 기업이 독점이나 경쟁 억제로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는데 둔다. 중소기업이라고 정부가 특혜를 주지 않기에 독일의 중소기업은 강소기업, 미국의 중소기업은 혁신기업으로 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보호에 치우쳐 우수 중소기업마저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히고, 좀비기업까지 즐비해 이중 피해를 보도록 만들었다.

◆공정경제는 경제의 시스템 문제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한 일본이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이유를 보면 분명해진다. 일본은 한국 빼고 중소기업지원정책이 가장 많다. 그러나 중소기업 생산성이 낮아 중소기업지원금융은 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져 금융시스템도 불안해지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화와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하도급 관계에 빠져 해외로 뻗어 나갈 기회를 놓쳤다. 주된 이유는 중소기업이 독립적 전문기업으로 되는데 필요한 인재양성시스템과 기술 및 시장정보시스템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공정경제의 미몽이 일본보다 깊다. 그러나 이것을 빼면 유리한 조건이 많다. 우리나라는 교육과 연구개발에 대한 열의가 높고 정부의 투자가 많아 일본은 물론 OECD에서 최상위권이다. 중소기업이 가진 유연성의 장점이 중요해지고 국내 기반이라는 약점은 보완하기 쉬워졌지만 대·중소기업협력을 수평적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시스템 개선은 외면했다. 정부의 지원정책을 개혁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산학연협력을 구축하면 중소기업은 수직적 관계에서 탈피하고 저생산성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산학연협력을 촉진하도록 교육과 연구개발의 자율성을 높인 게 미국·독일 중소기업이 강해질 수 있는 요인이고, 경제생태계도 공정한 비결이다.

◆공정경제 공정하지 못하면 국민에 부담

공정하지 못한 공정경제는 비정상적인 기업 생태계를 만들 뿐 아니라 혁신을 가로막고 소지자의 이익을 무시하며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 대기업은 해외로 떠나고 남아있는 중소기업은 갈수록 영세화되면서 인적자원을 놀리게 된다. 물가수준도 높아 국민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세금은 낭비된다. 자원투입의 비효율성과 저생산성 문제는 문 정권 이전부터 누적된 것이지만 적어도 공정경제라고 큰소리치려면 그 의미는 알고 있어야 했다. 공정경제가 국민을 현혹하고 선거에 이용하는 포퓰리즘 도구라는 점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는다. /글=김태기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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