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1.08 18:09

'비서실장 아주 만족', 'VIP께도 간접적으로 보고' 등 지시·보고 문건 공개
기무사 2개 부대 불법 사찰 동원…35차례 대면보고 및 627건 사찰 관련 보고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유가족의 개인정보와 민감정보를 사찰하고 관련 내용을 청와대와 국방부에 지속적으로 보고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8일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70여 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특조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로 특조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찰을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은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보다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조위는 대검찰청 산하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에 이르면 내일 중 수사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은 앞서 '기무사 의혹 군 특별수사단'과 검찰 수사로 일부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특조위는 군 특별수사단과 검찰이 기무사 관계자 6명에게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기면서 사찰의 실제 피해자인 유가족 피해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며 사찰을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은 청와대 관계자 등을 수사하지 않아 추가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직후 기무사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전방위적 불법사찰에 나섰다.

당시 기무사 지휘부는 610(진도)부대와 310(안산)부대에게 유족들의 휴대전화와 통장 사본, 인터넷 물품구매내역, 인터넷 포털 활동 내역 등 각종 개인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잔류한 유가족의 야간 음주 실태, 무리한 요구사항 등 주로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이용될 정보들도 수집됐다. 부대원들은 신분을 가장해 첩보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게 지난 2014년 4월 18일부터 9월 3일까지 총 35차례의 대면보고 받았다. 또한 610부대와 310부대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0월까지 총 627건의 사찰 관련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조위는 이날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기무사의 보고를 직접 받은 정황이 담긴 여러 건의 문건을 공개했다. 

특조위가 공개한 기무사 보고 문건을 보면 2014년 5월 10일 세월호 동향을 보고하자 "김기춘 비서실장께서 아주 만족해하신 듯함"이라며 "'비서실장께서 구체적인 유가족 보상 방안이 있는지 궁금해하셨다'면서 확인 후 조치 지시"라고 적혀있다. 아울러 2014년 5월 23일 장관보고 문건에서는 김관진 전 장관이 '기무사 보고서가 아주 잘 됐다며 크게 칭찬을 한 뒤 격려금을 하사했다'고 언급됐다. 같은 해 6월 14일 김 전 안보실장이 유병언 건에 대해 "기무사만큼 중앙집권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은 없음. 최고의 부대임'이라고 호평한 내용도 공개됐다.

같은 해 6월 25일 청와대 문서에는 세월호 관련 주요 현안으로 '유가족 요구사항 선별적 수용 필요', '최근 사이버상 여론 변화 추이' 등도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등에게 서면으로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기무사 팀장을 직접 만나서 추가설명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유가족 사찰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특조위는 당시 문서에는 '기무사에서 수시로 비서실장에게 정보보고를 제공 중이다. VIP(박 전 대통령)께도 간접적으로 보고'라고 적혀 있다고 알렸다. 

8월 29일 이재수 전 사령관이 청와대에 보고한 보고서에는 '안보실장이 세월호 관련 보고해 줘서 고맙다면서 상세 내용으로 재보고 요청', '2장으로 보완하여 9월 3일 청와대 서면보고' 등이 적혀있었다. 

특조위는 부대별 보고, 청와대 및 국방부장관 보고, 사령부 지시 이메일 등을 참고해 조사한 뒤 이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박병우 세월호진상규명국장은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문건이나 녹취록은 현재 확보하지 못해서 직접 지시 단정은 어려우나 대면보고를 받은 점은 문건에 나와 있다"며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이 기무사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전했다.

박 국장은 "35차례 대면보고를 받고 크게 칭찬하고 격려금을 주는 행위가 단순히 보고만 받은 행위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기무사 정보보고는 중앙에서 어떤 정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제언도 포함됐기 때문에 단순한 정보보고로 보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의 비판 없이 기무사의 보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청와대 비서실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뿐만 아니라 기무사 실무진들에 대한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며 당시 기무사 지휘부 및 현장 활동관 66명을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이 중 6명은 이미 지난 2018년 기소됐다.

특조위는 "진도를 담당하는 610부대와 안산의 310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분위기와 소란행위 등 특이 언동, 사생활,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지시가 위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신분을 위장하거나 정보원을 활용하는 등 방식으로 사찰과 보고를 지속했다"고 말했다.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특조위 발표 직후 "유족 사찰 혐의에 대해 수사를 요청한 것은 환영"이라며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유가족을 공격한 이들을 국가폭력 행사 혐의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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