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3.15 16:18
<글싣는 순서>
①출발점은 신뢰경영
②오너도 등기이사 맡아라
③세대교체 연착륙이 필요하다 
 

#‘스판덱스‧탄소섬유‧폴리케톤’  섬유업계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이라면 낯선 이름들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고부가가치 섬유를 만드는 기업을 갖고 있다. 반도체‧IT(정보통신) 수출 강국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세계를 호령하는 일류소재 기술 보유기업이 있다.  효성이 그렇다.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외환위기로 국내 모든 기업이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계열사 중 4개사를 (주)효성으로 통폐합하고 일부는 매각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고부가가치 ‘스판덱스’였다.
그후 20년.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세계 시장에선 이미 스판덱스 부문 브랜드가치 선두인 ‘크레오라(creora®)’가 탄생했다. 크레오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8000여억원에 달해 그룹 전체 영업익의 40%에 달한다. 효성을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조 회장은 스판덱스가 세계 시장에서 호평받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2004년, “세상에 없던 소재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물론 개발을 위한 투자에는 전폭적인 지원이 따랐다. 이에 2011년 국내기업 최초로 고성능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한다. 2013년에는 폴리케톤을 내놓는다. 폴리케톤은 기존 나일론 등 화학소재 대비 내마모성 등 모든 측면의 물성이 뛰어나 미래 신소재 산업 국책과제로 주목받는 제품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주력 수출업종은 힘들었다. 중국 시장에서 수출 효자였던 철강‧조선‧휴대폰이 잇따라 무너졌다. 반면 효성은 중국에서 사상 최대실적을 거뒀다. 

효성그룹 연도별 실적 

이는 지난해 그룹 전체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효성은 지난해 매출액 12조4585억원, 영업이익 9502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위기 때마다 그룹내 선장의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집행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약 6조원을 투자, 첨단 반도체 공장인 M14를 준공했다. 메모리반도체 부문 ‘글로벌 톱2’진입이 목표다. 이외에도 생명공학 부문을 포함해 추가 긴급 자금 투자도 대기 중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10조원에 달한다. 반도체는 현재 중국‧대만 등 중복 투자가 세계 시장을 혼란에 빠뜨려 ‘공급과잉→가격인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격차를 통한 선두 유지를 돌파구로 제시하지만 알면서 못하는 것이 기술투자라고 업계에선 말한다. 그 만큼 리스크가 큰 투자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8월 사면됐다. 이후 그의 행보는 투자확대와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모아진다.
SK종합화학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2위 화학기업 사빅은 지난해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최종계약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이를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사빅의 모하메드 알마디 부회장과 세계 무대에서 교분을 맺어왔고 계약이전까지 10여차례 중동 방문길에 올랐었다. 
오너는 때로는 직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기도 한다. 지난 2012년 2월 그룹 안팍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이닉스 인수 후 최 회장은 이천 공장을 방문한다. 최 회장의 이날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직원들과 점심식사뿐만 아니라 저녁 술자리까지 참석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하이닉스가 행복할 때까지 직접 뛰겠습니다” 라고. 이듬해인 2013년 하이닉스는 흑자로 돌아 선다. 2014년까지 2년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단행한 평택 반도체 단지 15조6000억원투자, 한화그룹에 계열사 4개사 매각이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성계열사 인수와 서울면세점 사업권 확보,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한라비스테온공조 지분 인수 등 오너의 결정이 빠른 판단과 선택 그리고 실행으로 이어진 예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오너, 등기이사 피하지말고 전면에 나서야
기아자동차에 지난 2006년부터 근무중인 독일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사석에서 만날때마다 한국 기업을 칭찬한다. 주제는 항상 빠른 의사결정 구조다. 슈라이어 사장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근무한적이 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해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식 오너 경영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확장 시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듯 오너 경영이 세습이라는 단어와 함께 비판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장점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 회생한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 2000년대초반 무너졌던 가장 큰 이유는 의사결정의 부재였다. 오너경영의 장점을 극대화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추진력을 발휘해야할 시점이다.

지난 2013년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기업인들에 대한 검찰소환과 국회 국정감사 출석요구는 봇물을 이뤘다. 이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박용만 두산그룹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등기이사 사퇴가 연일 이어졌다. 당시 시민단체를 비롯한 학계에서도 오너의 책임경영 부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쥐꼬리만한 지분을 가지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오너가 법적인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 자리를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특히 오너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상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등기이사 재임은 경영상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기업에서 오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능한 CEO를 말한마디로 갈아치울 수 있는 능력(?)을 오너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너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하고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한책임이 동반되는 등기이사를 맡기는 것이다. 오너가 등기이사마저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SK와 효성은 오는 18일 그룹 총수를 등기이사에 재선임하기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일각에서는 법의 심판과 진행중인 심판이 남았다는 이유로 두 그룹 오너들의 등기이사 임명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기둔화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는 시점에 오너의 책임경영은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법의 심판과 연관지어 오너의 책임경영을 막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곱씹어 봐야한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등기이사 재임 중에 언제든지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사법부의 심판은 사법부의 몫이고 기업의 경영은 오너의 몫인 것이다.

대한민국, 왜 오너경영은 지속되는가
전후(戰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 기업의 뿌리가 ‘오너 경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한 번에 뽑아버리면 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안에 우리는 이미 놓여져 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1960~70년대 정부의 지원속에 정주영‧이병철‧구인회‧조홍제 등 창업주가 탄생한다. 이 후 등장한 김우중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국가적으로 재정‧금융상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특혜가 주어졌다. 이들의 시장 지배력은 커졌고 그룹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들로부터 이어져 온 오너경영이 세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보다는 성공사례가 더 많다는 것도 비판이전에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2세경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미 여러차례 알려진 스웨덴의 2위 금융기관인 SEB은행의 발렌데리 가문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너가 주주로서의 역할만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책임지는 사례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오너경영으로 시작된 기업의 역사가 아직 100년도 채 안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성장과정과 기업 환경을 감안한다면 하루아침에 정부 주도로 혹은 법으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다. 

경제에 연착륙이 중요하듯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데도 연착륙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재계의 오너들은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명예를 지키며 기업을 운영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그것은 책임경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너의 등기이사 재임은 좋은 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기업의 창업주들이 등기이사를 맡아 기업의 경영과 법적인 책임 모든 것을 지면 직원들의 존경심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본부장은 “우리 기업의 문화상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 그리고 위기상황에서 직원 모두가 단결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오너에게 밖에 없다”며 “안정적인 경영환경이 갖춰진다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