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1.13 12:00

임종헌 전 차장과 공모 등 유해용 변호사의 모든 혐의에 무죄 선고
'무리한 수사' 비판…검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혐의 입증에 어려움 예상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유해용(오른쪽)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직 시절 사건 검토보고서를 무단 반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54·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 중 처음 나온 1심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청와대 등 제3자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를 했고, 이를 외부에 누설해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훼손했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유 변호사는 최후진술을 통해 "검찰이 기소한 범죄 혐의사실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고 억울하고 결백하다"며 "재판부의 공정하고 자비로운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던 2016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임 전 차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개입한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소송 상황을 유 변호사를 통해 알아본 후, 이 내용을 청와대에 누설한 것으로 파악했다.

또 유 변호사는 상고심 소송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퇴임 후 개인적으로 가져 나가고, 대법원 재직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에 수임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유 변호사 측의 '공소장 일본주의', '과잉 별건 표적 수사', '피의사실 공표' 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각 혐의에 대해 인정할 증거나 범죄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 전 연구관(유해용)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서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사법부 외부 인사에게 제공했다는 것과 관련해 두 사람이 공모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안 등을 유출한 혐의에 대해서도 "파일을 유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설령 유 전 연구관이 해당 파일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한 것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한 사건 역시 대법원 재직 시절 직무상 실질적·직접적으로 취급한 사건이라 볼 수 없다며 변호사법 위반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뒤 유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 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도록 하겠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에 대한 이번 선고는 지난 2017년 3월 6일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후 약 2년 만에 나온 첫 판결이다.

법원이 임 전 차장 등과의 공모 혐의까지 포함한 유 변호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의 관련 수사가 부실했거나 무리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사건 관련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 사건은 50차 넘는 공판이 진행됐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둔 상황이라 내달 말까지 재판이 연기됐다.

또 사법농단 관련 핵심 인물인 임종헌(61·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해 6월 낸 재판부 기피 신청이 대법원까지 가서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재판부가 유 변호사의 직권남용 혐의 등에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 전 차장 등 다른 연루자들에 대한 검찰의 혐의 입증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다음 달 14일에는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판사에 대한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다. 임 전 수석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해 청와대 입장이 반영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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