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1.16 10:12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 사건 벌어졌는데도 죗값은 말도 안 되게 약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사진= YTN방송 캡처)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사진= YTN방송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16일 공개한 '독자들에게 보내는 안철수의 편지'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약속과 정직, 공정과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억울함, 박탈감과 분노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사람들의 꿈과 미래, 희망, 이 모든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과 같아서 슬픈 현실"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아울러 안 전 대표는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처음 회사를 창업했을 때처럼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다"며 "정직하고 깨끗해도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을 이루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며 "대선 패배 후 내가 여론 조작의 최대 피해자였던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나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그는 "독일의 지한파 지식인 말대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들의 죗값은 말도 안 되게 약했다"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선거를 정직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더럽혀도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도핑에 대해서는 정도와 관계없이 그토록 엄격하게 생각하면서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정치를 하려면, 정치인이라면 흠도 좀 있고 법을 어겨도 당연하다는 게 여전히 일반적인 통념이었다"며 "사람들은 댓글 조작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조작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아래는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공개한 편지의 전문(全文)이다.

- 유럽에서 발견한 나의 꿈

"의사를 그만두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했을 때 내가 품었던 꿈은 하나였다. 정직하고 깨끗해도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기업이나 경영인이라면 흠도 좀 있고 법을 어겨도 당연하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정직하고 깨끗하게 경영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꿈이었다.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처음 회사를 창업했을 때처럼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다. 정직하고 깨끗해도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을 이루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대선 패배 후 내가 여론 조작의 최대 피해자였던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나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일의 지한파 지식인 말대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들의 죗값은 말도 안 되게 약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선거를 정직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더럽혀도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도핑에 대해서는 정도와 관계없이 그토록 엄격하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정치를 하려면, 정치인이라면 흠도 좀 있고 법을 어겨도 당연하다는 게 여전히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사람들은 댓글 조작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조작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억울함, 박탈감과 분노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사람들의 꿈과 미래, 희망, 이 모든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과 같아서 슬픈 현실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약속과 정직, 공정과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도리를 다하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으레 흠도 좀 있고 법을 어겨도 괜찮은 게 아니라, 흠이 있으면 사과하고 법을 어겼으면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 토대를 만들어야만 그 위에 새로운 가치를 쌓아 올릴 수 있다.

공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데 그 어떤 좋은 정책을 실시 한들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에스토니아는 정부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국가의 운영을 더욱 더 투명하게 관리하고자 했다. 미래세대로의 전환이 이뤄진 젊은 리더들의 과감한 혁신 덕분이다.

핀란드도 더없이 눈부신 나라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고 야생의 숲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핀란드는 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다. 하지만 내가 핀란드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국민들의 DNA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공유와 개방의 정신’이었다. 대체 어떻게 핀란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탁월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남다른 철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처럼, 에스토니아나 핀란드처럼 되기 위해 다 같이 바닥부터 다시 세우자고 하면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 아주 멀고 아득해 보인다. 한마디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프랑스에서 국민들의 힘을 목격할 수 있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국회의원 한 명 없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프랑스도 우리처럼 경제 문제, 노동 문제, 불평등 문제 등으로 사회적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기존의 두 거대 정당이 이 문제를 풀 것이라는 희망을 접은 프랑스 국민들은 새로운 미래를 고민했고, 마크롱이 주축이 된 실용적 중도 정당을 선택했다. 실용적 중도 정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폭주하는 이념 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선택을 할 때만이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프랑스 국민들은 생각한 것이다.

30여 년 전 컴퓨터 바이러스 잡는 백신을 만들 때, 하루 종일 의학 연구자로 일하면서도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을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생해서 만든 백신을 무료로 보급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회사를 만들고 교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익적인 마인드는 지금도 변함없는 내 삶의 기준이다. 한 인터뷰에서 “의사로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 잡다가, 컴퓨터 바이러스 잡다가, 지금은 낡은 정치 바이러스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내 팔자가 바이러스 잡는 팔자인 것 같다.

정치를 시작하며 가졌던 소박한 꿈은 여전하다.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내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깨끗하면 인정받는 사회, 거짓말 안 하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살고 떳떳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곳곳에서 우리나라를 위한 가능성과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한다면 그 문제는 풀리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사회는 그 방향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한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미래는 피하고 싶은데도 다가오는 두려움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