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20.01.20 09:00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지난 13일 치러진 첫 민선 경북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하영(67·백송그룹 회장) 신임 회장은 ‘체육인이 주인 되는 세상’이란 담대한 슬로건을 앞세워 경북체육의 새 수장이 됐다.

‘체육인이 주인 되는 세상’이란 슬로건은 이번 선거의 의미를 꿰뚫는 압축미가 통렬하다. 김 회장은 체육인의 자존심을 고취시키고, 체육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잘 담아낸 이 구호로 선거인의 표심을 잡는데 성공했다. 김 회장은 161표를 얻어 윤광수(120표)·윤진필(97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동안 자치단체장이 당연직 체육회장을 맡던 관행은 민선 체육회장 시대의 개막으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관(官)에서 민(民)으로, 체육회장의 리더십이 전환되면서 김 회장의 바람대로 체육인이 체육을 주도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나아가 체육인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의미도 있다.

체육뿐만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 되겠다는 김 회장의 당찬 선언은 성취 여부를 떠나 체육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김 회장이 치열한 3파전에서 승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체육인들의 자존감을 높인 ‘희망적 메시지’가 표심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됐음은 분명하다.

선거 막바지 경쟁 후보자가 꺼내든 ‘도지사 마케팅’은 지사와의 친밀도를 과시하는 데는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이번 선거가 가진 의미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번 선거는 체육과 정치의 분리, 체육의 자율성과 독립성 강화란 취지로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처음 치러졌다. 정치권과의 분리, 즉 독립성이 키워드인데 친밀도에 방점을 찍어, 결과적으로 문제를 잘못 푼 셈이 됐다.

이번 선거에 나선 3명의 후보 중 2명이 앞뒤로 체육회 상임부회장을 지낸 인물이어서 전·현직 도지사의 ‘대리전’이란 말이 그럴싸하게 나돌았다.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현 이철우 도지사와 함께 1년여 체육회를 이끌어온 윤광수 후보가 우세할 것이란 관전평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인들은 ‘체육인을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김 회장의 지고(至高)한 비전에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도지사가 체육회장을 당연하게 맡던 시절엔, 경북체육회는 도청의 예하 조직으로 인식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에서 예산 배정과 기관 평가, 사무처장 인선 등 거의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체육회 이사들도 체육회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해왔다. 체육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어도 바른 소리, 쓴 소리를 하는 이사들은 극소수였다. 회의석상에서 체육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 인사가 얼마 뒤 이사직을 그만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김 회장에게 표가 쏠리면서 그간 오랜 기간 축적된 체육인들의 내재적 불만이 이번 민선회장 선거에 투영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체육회의 주인인 체육인들이 행정관청 주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경시돼 왔다는 시각에 기초한 것이다. 특히 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통합 이후 고착화되고 있는 체육회 조직의 불협화음과 갈지자 행정도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선거인들의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말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가 이제 끝났다. 김하영 회장의 행보에 체육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 회장은 3년 임기가 시작된 지난 16일부터 체육회에 상근하면서 업무를 꼼꼼히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체육회 이사진 개편과 조직 정비, 직원 업무 분장 등 내부 쇄신 방안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월 대의원총회를 시작으로 이사진 구성 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민선 체육회장 시대를 열게 된다.

김 회장 책상 위에는 오는 10월 전국체육대회(구미) 성공 개최, 체육인의 숙원인 체육회관 건립까지 산적한 현안이 수두룩하다. 체육예산을 쥐고 있는 도지사와의 입지 설정, 이번에 함께 선출된 23개 시·군체육회장과의 협력 유지 등 스스로 헤쳐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선거과정에서 첨예화된 체육인들의 대립과 갈등을 풀어내야하는 균형의 리더십, 화합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김 회장의 취임 후 첫 대외 일정이 경북체육인들의 화합과 상생에 맞춰진 점은 다행스럽다. 20일 오전 10시 경주 토함산에서 경북체육회 100년사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민선시대 출범을 맞아 체육인의 화합을 염원하는 성화 채화 행사를 갖는다. 김 회장은 채화된 성화를 화합의 불로 의미를 부여해 참석한 시·군체육회장들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어 영천호국원으로 이동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참배하는 것으로 첫 공식일정을 소화한다. 민선회장의 의미 있는 첫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하영 회장은 자신이 내건 슬로건처럼 ‘체육인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것이 단박에 성취될 수 있는 가벼운 목표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막중하고, 지난한 지향임이 분명하다.

쉬운 길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다. 험로이기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쪼록 새로 출범한 ‘김하영호(號)’가 경북체육, 나아가 대한민국 체육을 비상(飛上)하게 하는 방향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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