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1.28 01:00

재물 담은 배 모양의 섬…4대 시중은행 중 국민은행만 입성

여의도역 2번 출구. (사진=장대청 기자)
여의도역 2번 출구. 뒤로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 사옥이 보인다. (사진=장대청 기자)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여의도 X배 크기의 땅입니다."

흔히 땅의 면적을 비교할 때 쓰는 말이다. 한국사람 대부분이 여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기 때문이다. 

떠도는 말에 따르면 여의도의 어원은 '너나 가져라' 하는 섬이다. 여의도는 너 여(汝)자에 어조사 의(矣)자를 쓴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너의 섬’이다. 원래 여의도는 모래로 만들어진 섬이다. 그렇기에 쓰임이 마땅치 않아 너나 가질 땅이라는 얘기다. 조선 시대에는 국립 목장이 운영됐고 일제강점기에는 비행장이었다. 사람 사는 땅이 아니었다. 

하지만 1970년 서울 개발 이후 여의도는 급격히 성장했다. 현재 이 작은 모래섬은 한국의 핵심이다. 행정부에 비해 갈수록 힘이 커진다는 평가를 듣는 국회의사당은 물론 KBS사옥과 63빌딩, 서울국제금융센터(IFC서울)등이 있다. 이렇듯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방송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특히 증권가들이 모인 여의대로 거리는 한국의 월스트리트라 불리기도 한다. 매일 수없이 많은 돈과 사람이 오고 난다. 또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땅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여의대로에 자리 잡은 기업의 주인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풍수 때문이라는 설이 돈다.

증권가의 성지인 여의도는 역사의 뒤로 물러난 증권회사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많은 증권회사가 흔들렸다. 동서증권과 동남증권은 아예 사라졌다. LG투자증권‧우리증권이 합병한 우리투자증권은 또다시 NH 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쌍용증권은 신한금융투자가 됐다. KB투자증권은 현대증권과 합쳐지며 KB증권으로 변모했고 동양증권도 매각을 거쳐 현재 이름은 유안타증권이다. 창업 이후 사명 변경이나 매각·합병 없이 버텨낸 증권사는 부국, 한양, 신영증권 3곳 뿐이다. 

1990년대 위세를 떨치던 3대 투자신탁인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도 다 사명이 바뀌었다. 한국투자신탁은 동원증권과 합병 후 한국투자증권이 됐다. 대한투자신탁은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돼 하나금융투자로 변했고 국민투자신탁도 한화그룹의 인수를 거쳐 한화투자증권이 됐다. 

IMF 당시 무너진 기아자동차의 본사도 여의도에 있었다. 1998년 12월 현대자동차에 합병된 후 지금은 세계시장으로 뻗어가는 기아차에게도 이곳은 잊고 싶은 장소일 것이다. 여의도는 정말 몇몇 이들의 말처럼 기운이 나쁜 땅일까. 이 작지만 거대한 땅이 가진 이야기를 알아봤다.

◆한국의 돈과 인물들이 모이는 땅이 될 지형… 유통·서비스·관광산업에 유리한 곳

풍수지리학에 따르면 여의도 땅의 모양은 행주형이다. 섬이 흘러가는 배의 모습을 닮았다고들 한다.

행주형의 땅에는 재물과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유통업, 재래시장이나 서비스 및 관광 산업이 유리하다. 물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땅은 풍수지리에서는 좋은 곳으로 통한다. 물은 재물과 사람을 부른다. 더군다나 여의도는 한강이라는 큰물의 기운을 받는다. 한국의 돈과 인물들이 모이는 땅이 될 지형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의도는 강바람을 정통으로 맞는 땅이기도 하다. 풍수는 물과 바람을 의미한다. 물이 감싸고 있는 좋은 땅도 바람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없으면 나쁜 땅이 될 수 있다. 여의도는 주변에 산이 없어 바람에 취약하다. 특히 여의대로의 증권가 앞 거리에는 겨울이면 거센 바람이 분다. 

증권가들이 모여있는 여의대로 길. (사진=장대청 기자)
증권가들이 모여있는 여의대로. (사진=장대청 기자)

소재학 미래예측학 박사는 여의도를 "명예보다는 재물을 주는 땅"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물이 섬을 감싸고 있어 재물과 사람이 많이 모이지만, 땅을 바람에서 지켜줄 산이 멀어 안정적이지는 않다. 돈을 벌기에는 좋지만 지키기는 나쁜 땅이다"라고 평가했다.

◆여의도 증권가 잔혹사…왜 여의도에는 삼성 없을까

그래서일까. 많은 증권가가 여의도에 터를 잡았지만, 삼성증권은 오히려 여의도를 떠났다. 1992년 전신인 한일투자금융을 인수한 이후 곧 회사를 옮겼다. 현재는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에 있다.

여의도에 있던 삼성자산운용도 2011년 사옥을 이전했다. 따로 본사 이전의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경영진이 여의도의 풍수를 의식했을 거라는 의견이 나돈다. 삼성의 60여 개에 달하는 계열사 중 현재 여의도에 본사를 둔 곳은 없다. 삼성증권 여의도점과 삼성생명 여의도점 등 몇 개의 지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의도를 떠난 회사는 삼성만이 아니다. 대신증권은 2016년 여의도에서 명동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대신증권을 상징하던 황소상도 함께 옮겨갔다. 메리츠자산운용도 종로구 북촌으로 자리를 이전했다. 

미래에셋대우가 옮겨간 수하동 센터원빌딩은 명당 자리로 소문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동전을 만들던 주전소가 있었다. 전국 각지 상품이 모여 거래되는 시전도 발달했던 장소였다. 재물의 기운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2015년 미래에셋이 KDB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하자 명당의 기운 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외 여의도에서 자리를 옮기거나 사옥을 판 곳이 적지않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이 위치한 수하동 센터원빌딩. (사진제공=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대우증권이 위치한 수하동 센터원빌딩. (사진=미래에셋대우)

반면 KB금융그룹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무실을 여의도로 모았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옆에 KB금융투자타워를 건설하고 KB생명보험, KB투자증권, KB자산운용까지 불러 KB금융타운을 형성했다. 분리운영에 따른 임차비용 등 손실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4대 시중은행 중 여의도에 둥지를 튼 곳은 국민은행뿐이다. 이에비해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모두 서울 중구에 본점을 두고 있다. 

KB국민은행 외에 여의도에 본점을 둔 은행은 한국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이다. 두개의 국책은행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뒤 최근들어 힘을 많이 잃었다.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이 한국의 중앙은행으로서 위세를 여전히 떨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런 이유에서 은행은 여의도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터라는 풍문도 떠돈다. 여의도시대를 개막한 KB의 미래가 장차 어떻게 될지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낮게 웅크린 지형이라 혼자 우뚝 서 있으면 살 맞기 쉬워

땅만큼 중요한 것은 건물이다. 여의도에 가면 아찔하게 높은 건물들이 많다.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 사옥은 금융감독원 옆 의사당대로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1994년 당시 하나금융투자의 전신이었던 대한투자신탁은 라이벌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을 의식해 본사 건물을 당초 계획보다 더 높이 지었다. 그래서 현재 하나금융투자 본사는 23층, 한국투자증권 본사는 20층이다. 하나투자의 사옥이 조금 더 높은 이유다. NH투자증권도 신축중인 고층 건물로 갈 예정이다. 현재 여의대로에 있는 사옥을 매각한 NH투자증권은 지난 15일 53층 규모인 파크원 타워2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높고 큰 건물은 풍수지리학에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소재학 박사는 "여의도는 전체적으로 낮게 웅크린 지형이다. 이런 곳에서 혼자 우뚝 서 있으면 그만큼 살기를 받기 좋다. 여의도의 건물은 크게 번영해도 그만큼 쉽게 역현상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란히 서 있는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증권. (사진=장대청 기자)
나란히 서 있는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증권. (사진=장대청 기자)

이 때문일까. 여의도의 랜드마크인 63빌딩을 지은 신동아그룹은 1999년 최순영 전 회장이 구속된 후 해체 수순을 밟았다. 63빌딩은 결국 한화생명에 넘어갔다.

2012년 완공된 고층 건물 IFC 서울에도 흉흉한 얘기가 돈다. 입주하는 회사마다 악재가 덮쳤다는 것이다. 호주계 맥쿼리투신운용은 IFC 입주 이후 2014년 채권파킹 거래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과태료 부과와 영업정지 제재를 당하고 거액을 배상해야했다. 마이에셋운용은 입주 후 성과 부진과 인력 이탈로 한국토지신탁에 매각됐다. 일본계 스팍스자산운용도 입주 뒤에 꾸준히 손실만 입다가 종각 종로타워로 이전했다.

금융사뿐 아니라 가습기살균제로 큰 타격을 입은 옥시,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부실감사 여파를 맞은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도 IFC에 입주해 있었다. 물론 회사 자체의 경영 실패가 더 큰 문제였겠지만 이런 사례가 겹치다보니 이처럼 회자됐을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든 땅, 여의도

'오늘의 운세'와 같은 사주팔자 결과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사랑 운과 재물 운이다. 사랑과 돈만큼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없어서일까. 여의도 증권가의 땅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이처럼 많은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풍수와 사주가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소재학 박사는 "풍수와 사주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라며 "같은 사주로 태어났다고 같은 삶을 살지 않고 같은 땅에서 살아도 다른 운명을 맞는다. 풍수는 결정론이 아니라 방향을 짐작해보는 것일 뿐이다. 결국에는 사람 하기 나름이다"라고 강조했다.  

해 지는 여의도의 전경. (사진제공=픽사베이)
해 지는 여의도 전경. (사진=픽사베이)

기자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여의도에서 환승한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보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을까 싶어진다.

여의도는 이처럼 매일 아침과 저녁, 길을 오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땅이다. 풍수전문가들이 강조하듯 그 어떤 땅의 기운도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힘이 세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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