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왕진화 기자
  • 입력 2020.01.20 10:25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으로 '실패 모르는 기업인'이란 평가 받아

롯데호텔서울 전경. (사진제공=롯데지주)
롯데호텔서울 전경. (사진제공=롯데지주)

[뉴스웍스=왕진화 기자] 롯데호텔은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열었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최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췄다. 여기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가 투자됐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 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놓고 대접할 만한 변변한 국제 수준의 호텔도 없었으며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가 부지 확보와 투자재원 조달의 어려움, 낮은 수익률, 운영 노하우의 미숙 등으로 민간투자가 저조한 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호텔업도 기간산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호텔 건설을 지시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한국을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관광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사진제공=롯데지주)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사진제공=롯데지주)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은 투자 회수율이 낮으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등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관광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신 명예회장은 호텔 건설을 지시하면서 화재 등 안전예방에 최우선을 다하기도 했다. 그는 롯데호텔이 준공되고 처음 둘러보는 자리에서 담당직원을 불러 복도의 천장을 깨라고 지시했다. 이제 막 새로 지은 건물을 부수라고 한 것이다.

또한 신 명예회장은 천장에 직접 랜턴을 비춰 보면서 복도와 객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살펴봤다. 불이 났을 경우 방화구획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호텔객실의 담요와 커튼에 대한 불연성 테스트도 직접 지켜보고, 법규에 관계없이 모든 객실에 가스 마스크를 비치토록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야간에도 불시에 복도나 매장 등을 둘러보는데 복도에 약간의 물건이라도 적치되어 있으면 바로 불호령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만일의 경우 대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롯데호텔은 이후 올림픽을 즈음해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개관하고 '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에 일조를 하게 된다. 롯데호텔은 1992년 업계 최초로 2억 달러 관광진흥탑을 수상했고 다른 외국계 체인 호텔들과 달리 외국에 한 푼의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는 국내 호텔체인을 완성했다.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야경. (사진제공=롯데지주)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야경. (사진제공=롯데지주)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세계 최고의 건물이란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좋은 광고 선전이 되지요. 무역센터도 될 수 있고 위락시설도 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그럴 수 있는 자리로서 적합한 곳은 잠실이라고 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관광레저를 21세기 전략산업으로 꼽으며 육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품수출을 통한 외화획득 못지않게 관광레저 산업도 외화획득의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계획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관광산업의 외화가득률은 90%가 넘습니다. 제조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업만 좋은 것이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안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농사짓는 것이나 수출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한 사업입니다.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지난 1984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간부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자 신 명예회장은 "된다"라며,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간부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 명예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신 명예회장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했다. 

이러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소신으로 롯데월드는 성공했고,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또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산업훈장은 그때까지 수출기업이나 제조업종에 집중 수여됐으나, 신격호 명예회장이 관광산업을 국가전략 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진제공=롯데지주)
(사진제공=롯데지주)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했던 이 말은 롯데그룹의 경영특징을 잘 대변해 준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은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애칭을 갖게 했다. 

이처럼 신 명예회장은 롯데가 취약한 부분을 집중 보완하거나 롯데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힘을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신규 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이며, 평소 신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건의하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일축했다. 

신 명예회장의 면모는 잠실의 롯데백화점을 기획하면서 생긴 일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신세계나 미도파 매장의 3배 크기인 넓은 매장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이런 걱정을 하자 신 명예회장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꾸중 아닌 꾸중을 하면서 신 명예회장은 뜬금없이 평창면옥에서 답을 찾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평창면옥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워낙 맛이 있어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먼 거리에서 차를 타고 올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평창면옥은 5000~6000원 가격에 사람들이 꽉 찼다. 점심시간에는 자가용을 타고 와서 한참 기다리다 밥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왜 평창면옥에 와서 밥을 먹을까.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서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이 있는 것이다. 고객이 즐겨 찾게 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이처럼 신 명예회장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고객들이 하는 말에 먼저 귀 기울일 것을 임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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