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설·움㊦] '뜻밖에 공기업 합격' 5년 차 공시생 "버티면 기회 오더라"
[공시생 설·움㊦] '뜻밖에 공기업 합격' 5년 차 공시생 "버티면 기회 오더라"
  • 전다윗 기자
  • 승인 2020.01.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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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다 노량진서 먹던 '햄버거'…올해는 '갈비찜' 먹으러 '귀향'
"그만두고 싶은데 위로 들으면 오히려 포기하고 싶은 충동 치밀어"
강의를 듣고 있는 공무원 준비생들. (사진=해커스 공무원 페이스북)
강의를 듣고 있는 공무원 준비생들. (사진=해커스 공무원 페이스북)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올해 서른 살이 된 이성용 씨(가명)는 드디어 설 연휴를 대전 고향집에서 보낼 생각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처음 시작한 25세부터 설이나 추석마다 서울 노량진에서 보냈으니, 햇수로 5년 만의 명절 귀향이다.

당초 목표로 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지원했던 공기업에 덜컥 붙었다. '공기업도 지원해보라'는 친구의 조언이 계기였다. 마침 모든 시험 일정이 끝난 그는 짧은 기간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공부에 매진했다. 지원했던 두 기업 중 한 곳에서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결국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으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입사예정자와 예비 입사예정자까지 입사를 줄줄이 포기하며 최종 합격하게 됐다. 주위에서 억세게 운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성용 씨의 회사 선배는 "입사하고 처음 보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씨는 그간의 고생을 한번에 보상받은 느낌을 받았다. 출구전략이자 플랜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지난해까지 설날 당일마다 햄버거를 먹었던 이 씨는 "올해는 집에서 만든 갈비찜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설날 당일에는 노량진의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는다. 메뉴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대체로 고시식당서 끼니를 해결하던 이성용이지만, 설에는 주로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그는 합격 후 달라진 점으로 '여유로움'을 꼽았다. 기쁨보다 홀가분함이 크다고 했다. 이 씨는 "이렇게 자유롭고 여유로웠던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남들보다 취업을 늦게 한 편이다. 그래서 마냥 자랑스럽진 않지만, 친척과 가족들 앞에 이제는 당당히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첫 월급을 받은 이 씨는 5만원짜리 넉 장을 뽑아 흰 봉투에 담아뒀다. 외가·친가 어른들에게 드릴 용돈이다. 그는 "용돈까지 준비하니 잃었던 설날을 다시 찾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성용이 공무원 시험공부 할 때 사용한 책들. 그는 "원래 훨씬 많았는데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 취업하자마자 구석에 박아뒀다"고 말했다. (사진=전다윗 기자)
이성용이 공무원 시험공부 할 때 사용한 책들. 그는 "원래 훨씬 많았는데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 취업하자마자 구석에 박아뒀다"고 말했다. (사진=전다윗 기자)

◆명절에 집 찾지 않는 이유… '위로받고 싶지 않아서'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9년 5월 기준 청년층(15~29세) 공시생 규모는 21만 9000명이다. 전체 취업준비생의 30%에 달한다.

청년 취업준비생 10명 중 3명이 도전하는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지난 2019년도 국가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 경쟁률은 평균 46.4대 1, 9급은 39.2대 1로 집계됐다. 2015~2017년 임용된 국가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합격자의 평균 학습 기간은 2년 2개월이었다.

이 씨도 7급과 9급을 동시에 준비했다. 일년에 몇 번 없는 시험 기회를 한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공시생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한다.

이 씨는 공시생이 명절에 집을 찾지 않는 이유로 '위로받고 싶지 않아서'를 꼽았다. 그는 "시험공부 한다고 하면 다들 '힘내', '나도 너 같은 시기 있었어', '좀 있으면 합격할 거야'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솔직히 듣기 괴롭다. 시험 준비가 오래될수록 그만두고 싶어진다. 자괴감도 든다. 일종의 매몰비용인 셈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막연히 희망적인 조언을 듣고 나면 그대로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고 회고했다.

20만명이 넘는 전국 공시생이 결코 남 같지 않다는 이 씨는 "같이 공무원 공부를 하던 친구들에게 늘 '기회는 온다'고 귀띔한다. 나는 공무원 면접시험을 보지도 못했다. 필기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쩌다 보니 하나 얻어걸렸다. 공무원이 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꿋꿋이 버티고 기다리며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결국 길이 열리리라 생각한다. 내가 산증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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