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20.01.24 00:00

경찰공무원 시험까지 D-70…"설 연휴에도 문 연 독서실 찾아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정훈 씨가 국사 과목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정훈 씨가 국사 과목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은 유독 추석보다 설이 싫다. 매년 시험을 100일도 남기지 않은 채로 맞이하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정훈(가명·30세)씨는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경찰이 되길 원했고 오는 4월 4일 경찰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다. 나이에서 짐작하듯 첫 시험이나 두 번째 도전이 아니다. 

공시생으로서 설 연휴도 여러 번 맞이했다. 이젠 명절이라면 넌더리가 난 그와의 인터뷰하면서 공시생의 설움을 들었다.

―작년 설은 어떻게 보냈나.

"이른 아침 공부를 위해 집을 나섰지만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근처 도서관과 독서실은 설 연휴 모두 문을 닫아 무인독서실로 향했다. 장수생인 탓에 부모님께서도 집에서 설을 함께 보내자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추석과 달리 설날에는 부모님께 절을 올려야 하지만 이마저도 생략하게 됐다."

―경찰공무원 준비생들은 보통 설을 어떻게 보내나.

"경찰공무원 시험뿐만 아니라 9급 국가 일반행정직 시험(3월 28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설 연휴는 빠르면 1월 중순, 늦으면 2월 중순에 있기 마련인데 매년 시험이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있다. 학원이나 인터넷강의(인강) 강사는 D-100일(12월 중순경)부터 긴장감을 조성하고 특강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시험생들이 설날에 쉴 엄두를 내지 않는다. 생애 첫 시험인 경우는 다르겠지만(웃음)."

―첫 시험 당시가 기억나는가.

"1, 2년차에는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오는 친척들도 맞이했다. 지금은 여러 해 합격하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친척들을 보지 않게 됐다. 3년차쯤 되면 눈치 보이고 스스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 불안한가. 하루쯤은 쉴 수 있지 않나.

"요즘 시험 보려는 친구들의 학력을 보면 절대 명절에 쉴 수 없다. 도서관에 가면 경쟁자들의 출신 학교를 파악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시험을 보는 이들이 앉은 의자에는 ‘연세대’, ‘건국대’라고 쓰여져 있는 과잠(학과 점퍼)이 걸려 있다. 이른바 인서울 친구들도 경찰공무원, 9급공무원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명절에 쉴 수 있겠나."

―쉬지 않고 공부하면서도 명절 분위기를 느끼나.

"언론매체에서 명절이라고 뉴스가 나와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도서관이나 독서실은 문을 열지 않거나 단축 운영한다. 최근 1~2년 사이 무인독서실이 생겨서 망정이지, 그 전에는 공부할 곳을 수소문해야했다. 특히 식당문이 모조리 닫은 걸 보면 명절임을 가장 뼈저리게 느낀다. 점심과 저녁식사는 편의점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끼니를 때우고 있다보면 한복을 입은 꼬마들이 부모님이나 형제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온다."

―경찰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어떠한가.

"지난해 봄에 치러진 시험(2019년 1회차)은 1707명을 뽑는데, 5만2244명이 지원했다. 무려 30.6대 1의 경쟁률이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의 경우 15대 1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2배 가량 더 높은 셈이다."

―왜 경찰공무원 시험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나.

"박근혜 정부부터 현재 문재인 정부가 전투경찰제 폐지, 청년실업률 해소 목적으로 경찰공무원 수를 늘려오고 있다.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의 살인적인 경쟁률(작년 기준 41대 1)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공찰공무원 시험까지 응시하다보니 경쟁률이 비슷해졌다. 지난해와 올해보다 채용규모가 컸던 재작년쯤 합격해야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연이은 낙방, 고독한 공부로 세상과 동떨어졌다고 느끼나.

"아니다. 오히려 직장인보다 더 세상 소식에 민감할 것이다. 공부시간에는 수험서와 강의에 집중하다가 식사할 때 잠깐 휴대폰을 보는데 이때 뉴스, 커뮤니티를 통해 이슈를 흡수한다. 총리가 추천한 책이 공무원면접시험에서도 출제될 정도이니 세상과 동떨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번 설 기준으로 딱 70일. 남은 기간 어떻게 준비를.

"시험 기간이 100일 이상 남았을 때는 시험 내용이 변하지 않는 영어, 한국사 위주로 하게 되는 반면 지금은 판례, 올해부터 새롭게 변하는 법률과 관련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합격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별다른 게 있을까 싶다. 오랜 기간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 없고 무엇보다 돈도 없다. 물론 시험에 합격하면 은행이 어떻게 아는지 마통(마이너스통장)을 뚫어준다고 연락한다더라. 몇 년간 입었던 옷이나 새로 바꾸는 수준에서 몸을 사리며 지낼 것 같다. 새로운 도전과 시작이다. 중앙경찰학교(충북 충주)에서 4개월 교육을 받고, 근무지에서 4개월 실습한다. 합격 후 입교까지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있는데, 학교 분위기는 어떠한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일 거라고 짐작해본다."

―이번 시험을 응시하면서 어떤 다짐을.

"지난날 되돌아보면 설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었을 때 가장 서글펐다. 올해 4월로 예정된 경찰공무원 1회차 시험에 꼭 합격하겠다. 이번 설은 어쩔 수 없어도 올해 추석, 내년 설에도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기는 싫다."

사실 기자도 3년간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도전했던 적이 있어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과거 생각이 많이 났다. 시험에 탈락한 후에는 친척이 부모님을 통해 안부를 물었을 때가 죽기보다 싫었다. 세 번째로 떨어진 뒤에는 물심양면 지원해주셨던 부모님께 죄송했고 무엇보다 당시 6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될까봐 두려웠다.

결국 임용시험을 포기하고 취업해 1년 뒤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시험은 그저 하나의 도전 과제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고 갈 곳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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