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20.01.26 09:00

맛과 향을 깊게 하는 ‘전통 누룩’ 대신 '입국' 들어간 속성주일 뿐

완주군에 있는 술테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날 양조장의 모습 (사진=손진석 기자)
완주군에 있는 술테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날 주조장의 모습 (사진=손진석 기자)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음식과 농사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조리서는 많다. 다만 현재로서 술을 만드는 법(酒方)이 기록된 것은 1450년경 집필된 산가요록에서나 찾을 수 있다. 

전통주의 만드는 방법은 쌀과 누룩, 물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조상들은 쌀을 찌고 누룩과 물을 넣어 버무려 옹기에 담아 발효시켰다. 여기에 각 집에서 만들었던 누룩을 사용했다. 

이런 제조방법은 사실상 사라졌다. 술약(효모, 이스트)을 넣어 술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술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넣어야 하는 술약은 우리 전통의 누룩과는 다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주세법을 도입해 세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전통주의 완성은 ‘누룩’… 입국으로 인해 사라져

1913년경부터 우리 전통주는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집에서 담가먹던 가주도 일제의 밀주 단속으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이 당시 일본 술인 정종은 우리 전통주의 빈자리를 채우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원래 발효주인 우리 술은 모두 속성주로 변하게 된다. 이 속성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술약(이스트)이다.

일제 강점기때 주세를 받기 위해 사용되던 술항아리, 술의 용량과 주조장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손진석 기자)
일제 강점기때 주세를 받기 위해 사용되던 술항아리, 술의 용량과 주조장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손진석 기자)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품질과 맛을 결정하는 것은 효모이다. 우리의 누룩이 바로 효모인데 술을 만들 때 마다 그 맛이 달라져 평준화된 맛을 내기가 어렵고 오래 걸렸다.

일본이 식민지인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세금을 걷으려면 빠른 시간에 많은 술을 만들도록 유도해야했다. 이를 위해 평준화된 맛도 확보해야했다. 일제는 술약과 첨가제를 사용하는 속성주를 만드는 방법을 도입, 우리 전통주를 탄압했다. 당시 우리 전통의 것들을 모두 없애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던만큼 전통주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이로인해 이전까지 존재하던 수백 년 동안의 술에 대한 우리의 역사가 사라졌다. 이 여파로 지금도 우리의 전통주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술은 획일화되면서 전통주의 대량 생산은 불가능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던 전통주도 일제의 참혹한 수탈에 이어 한국전쟁 후의 절대적인 식량난 때문에 1962년 발효된 '양곡관리법'에 의해 술의 주원료인 쌀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전통주 복원과 산업화에 대한 시도가 이뤄졌다.

1982년 전통주 발굴 및 무형문화재 지정을 시작해 김포의 문배주, 충남 당진의 면천두견주, 경북 경주의 경주교동법주 등 3종의 국가무형문화재와 경기·지방무형문화재인 송절주, 국화주, 송로주, 한산소곡주, 이강주, 죽력고, 송화백일주, 해남진양주, 진도홍주, 안동소주 등 32종이 지정됐다. 이와 함께 주류분야 식품명인 25명도 현재 지정되어 있다.

당시 전통방식 그대로 누룩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막걸리 제조하는 방식을 고수하며 명맥을 이어 오던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가 민속주 제1호로 지정받았다. 이후 국가무형문화재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정부의 관리하에 전통 방식으로 우리 술을 제조하고 누룩을 생산하는 양조장을 양성하면서 전통 누룩의 계승과 발전이 이어지게 됐다. 

한국전통주를 연구하는 관계자는 “현재 대량유통되는 막걸리 중에 전통 막걸리는 없다”며 “오직 부산 산성막걸리만 우리 누룩으로 담근 전통 막걸리로 민속주로 지정되어 있을 뿐 우리 누룩으로 빚는 술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는 일제 강점기에 들여온 속성주 제조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양조장에서는 전통주 제조를 어려워한다”고 덧붙였다.

◆100% 전통 누룩만 사용해 제대로 담근 술을 전통주로 불러야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전통주란 ‘중요무형문화재나 식품명인이 빚은 술이나 농업인이나 농업인 단체가 우리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한 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만든 술과 입국을 사용해 만든 술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우리 농산물을 주원료로 빚은 술은 모두 현행 법령상 전통주에 해당된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전통주의 복원보다 농어민들의 경제적 여건 개선에 목적이 있는듯하다고 일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전통주를 제조하는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일부 제품들에는 입국과 술약 그리고 첨가제를 사용해 만든 술에 소량의 전통 누룩을 사용하면서 전통주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그냥 속성주일 뿐”이라면서 “첨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100% 전통 누룩만 사용해 제대로 담근 술에 한해 전통주라는 호칭을 붙여야한다. 이래야만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 자라섬 막걸리 축제에 전시된 복원된 전통주 (사진=손진석 기자)
2018년 자라섬 막걸리 축제에 전시된 복원된 전통주 (사진=손진석 기자)

전통 누룩을 사용하면 맛과 향이 깊고 풍부한 술이 만들어 진다. 예전에 할머니가 빚던 술의 맛과 향이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누룩은 집안 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다 사라진 후 이제 겨우 복원되는 중이다.      

현재 양조장의 개수는 전국에 약 800개 정도가 된다. 각 시·도마다 적어도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양조장마다 각자의 노하우에 따른 원료와 제조방법으로 술을 만들면서 술의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듯 적지않은 양조장이 있는만큼 양조 장인들이 모두 모여 전통 누룩을 만드는 방법의 체계화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우리 전통주도 세계적인 명주에 이름을 올릴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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